볼턴 방한 날, 의도된 도발..러·중 군용기 7시간 KADIZ 넘나들어

정희완 기자 2019. 7. 2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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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 ‘인도·태평양 전략’ 견제…러 “중국과 지역 내 첫 비행훈련”
ㆍ한·미 훈련 앞두고 압박…한·미·일 3각 공조 흔들기 노림수

외교부로 불려온 러 대사대리·중 대사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 편대가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고,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왼쪽 사진)와 추궈훙 주한 중국 대사(오른쪽)가 서울 종로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4대가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다. 와중에 러시아 군용기 1대는 한국 영공을 침범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공조를 과시하면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방한에 맞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KADIZ는 타국 군용항공기 식별을 위해 공중에 설정한 임의의 선으로, 군용기가 진입할 때는 사전에 비행 정보를 통보하는 것이 국제관례로 여겨진다.

■ 긴박했던 7분

사건은 이날 오전 6시44분쯤 중국 H-6 폭격기 2대가 이어도 북서쪽에서 KADIZ로 진입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폭격기 2대는 이날 오전 7시14분쯤 이어도 동쪽으로 KADIZ를 이탈한 뒤,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안쪽을 비행했다. 이어 이날 오전 7시49분쯤 울릉도 남쪽 약 76노티컬마일(140㎞) 부근에서 KADIZ로 재진입한 뒤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지나 이탈했다.

중국 군용기가 KADIZ에 진입한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폭격기와 연합비행으로 KADIZ에 진입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 폭격기들이 오전 8시33분쯤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서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와 합류했고 7분 뒤 울릉도 북쪽 약 76노티컬마일 근방에서 KADIZ로 들어온 것이다. 중국 군용기는 9시4분쯤 울릉도 남쪽에서 KADIZ를 벗어났다. 중·러 폭격기가 KADIZ를 침범한 시간대에 포항 동쪽 80노티컬마일(148㎞), 제주 남쪽 35노티컬마일(64㎞) 해상에 중국 호위함 각 1척이 식별됐다.

특히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두 차례 걸쳐 7분 동안 한국 영공을 침범하면서 상황은 더 긴박해졌다. A-50은 오전 9시9분부터 3분 동안 독도 영공을 5노티컬마일(9.26㎞) 침범한 뒤, 9시33분부터 4분 동안 다시 3.5노티컬마일(6.4㎞) 침범했다. 이에 공군 F-15K와 KF-16 전투기가 출격했고, KF-16은 1차 침범 때 A-50을 향해 미사일 회피용 플레어 10여발과 기총 80여발을, 2차 침범 때는 플레어 10발과 기총 280여발을 경고사격했다.

상황은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러시아 폭격기 2대가 이날 오후 1시11분 KADIZ에 재진입해 북상한 뒤 오후 1시38분 최종적으로 벗어나면서 모든 상황이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도발은 6시간54분 만에 종료된 것이다. 중·러 군용기가 KADIZ에 머문 시간은 중국 1시간25분, 러시아 1시간33분 등이다.

■ 인도·태평양 전략 견제하나

군 당국은 중·러 군용기의 비행 의도를 정밀 분석 중이다. 우선 볼턴 보좌관이 이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점을 고려한 ‘무력시위’일 가능성이 있다. 중·러가 군사적 공조를 과시하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공조를 흔들려는 노림수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일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3각 공조가 느슨해진 틈을 노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중·러 폭격기가 KADIZ 내에서 연합비행을 한 것은 처음으로 양국 간 밀월관계를 드러낸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이들 군용기가 동해에서 이어도 남쪽으로 비행한 점으로 미뤄 남중국해까지 양국 간 작전지역을 확장하려는 의도적 비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처음으로 중국 공군과 장거리 연합 초계비행 훈련을 한 것”이라며 “이 훈련은 제3국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지 말라는 경고 의미인 것 같다”고 했다.

또 다음달 5일부터 2주가량 예정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이란 견제를 위해 호르무즈해협에서 연합전력을 구성해 대처하는 것에 반대하는 중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미국을 압박한 행동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기 훈련은 아니다. 약속된 훈련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군사적 공조를 과시하고, 장거리 항공작전 수행능력을 점검하려는 목적인 것 같다”고 했다. 또 “추적, 감시비행, 차단기동, 경고사격, 군사적 조치 중 경고사격까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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