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日 대 親日이란 이분법이 민주공화정의 적

이한수 기자 2019. 7.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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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 펴낸 채진원 교수

"반일 대 친일, 애국 대 매국, 민주 대 반(反)민주 같은 이분법 프레임은 우리 헌법이 규정한 민주공화정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언행이다. 경쟁자인 동시에 협력자라는 '중첩된 정체성'을 갖는 것으로 서로를 대할 때 진정한 민주공화정을 이룰 수 있다."

채진원 교수는 "보수와 진보가 극단화되면서 적개심이 커지는 정치적 양극화 현상은 민주공화국의 규범이 무너지는 징표"라며 "중간 지대를 활성화하는 중도 수렴의 공화정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중견 정치학자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시기를 여전히 일제강점기로 보고 독립운동가처럼 말하는 것은 지금을 6·25전쟁 시기라 보고 반공주의 운동가처럼 행동하는 것만큼 시대착오적"이라면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반일 아니면 친일이고, 애국 아니면 이적(利敵)이라고 한 것은 21세기 탈냉전·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퇴행적인 언행"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내달 1일 출간하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푸른길)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낡은 패러다임에 기초해 분열적이고 당파적인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치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논리에 갇혀 극단화하면서 민주공화국의 규범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다.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뜻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공화주의 단계로는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채 교수는 진단했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이념이라면 공화주의는 함께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하는 노선이다. 채 교수는 "공화주의는 개인에 방점을 두는 '각자도생(各自圖生)'도 아니고, 전체를 중시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도 아니다"라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살려서 공공성을 활짝 여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선동에 따라 쉽게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2300년 전 경고한 현상이다. 채 교수는 "민주화 이후 선거 같은 제도는 정착했지만 마음의 습속(習俗)은 여전히 퇴행적인 냉전시대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 의견은 진보·보수적 시각이 점점 좁혀지고 있는 현상을 보이는 데 반해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이는 지지층을 결집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지배하고 전횡을 일삼는 일까지 때로는 용인한다. 우리 편은 정의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그 사이에 끼어든다. 공화주의는 다수의 전횡을 막고 포퓰리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표자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법의 지배에 따라 권력을 분립하도록 한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는 "일본이 정치·역사 문제를 경제로 보복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방식을 "애국 대 매국이라는 프레임으로 짜는 것은 공화주의를 파괴하는 적(敵)"이라고 했다. "어떤 애국이냐"고 되물었다. 채 교수는 "'민족주의 애국'과 '공화주의 애국'은 구별된다"면서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감을 선동해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가 '민족주의 애국'이라면 '공화주의 애국'은 동등한 시민이 연대하여 민족·종교·인종 같은 차별이 없는 보편적인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일본 젊은이들이 BTS(방탄소년단)에 열광하면 이를 일본 입장에서 볼 때 '매국'이라 할 수 있나"라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협상 전략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채 교수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와 포퓰리즘은 공화주의의 적이다.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 마음속에서 상대를 적대화하고 악마화하면 정말 적이 만들어진다"면서 "생각이 다르면 악이고, 나는 정의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공화정은 설 땅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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