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온다 해도 힘 못 쓰겠네..책 출간 보류·영화 상영도 '신중'

김경학·이유진·김지혜 기자 2019. 7. 2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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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일본 불매운동’ 문화 콘텐츠로 번질까…관련 업계 긴장

다음달 개봉을 앞뒀지만 상영관 잡기에 애를 먹고 있는 일본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의 포스터(왼쪽 사진), 그룹 엑소의 팬들이 벌이고 있는 일본 공연 반대 캠페인 문구(가운데), 10주년 리커버판 출시가 연기된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표지.

출판, 신작·리커버판 제작 미루고 방송, 예능 촬영지 목록서 제외 가요 팬들, 일본 콘서트 반대 나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책으로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이 문화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콘텐츠’ 불매운동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관련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책 출간을 앞둔 출판사는 일정을 미뤘고, 일본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는 상영관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콘서트를 앞둔 그룹 엑소는 한국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도서출판 마음산책은 최근 교정 중이던 일본 유명 작가의 음식 에세이 작업을 중단하고, 오랜 번역과 표지 작업까지 끝낸 쓰노 가이타로의 <독서와 일본인> 출간을 무기한 연기했다. <독서와 일본인>은 ‘독서 민족’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의 독서 역사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들여다보는 문화인류학서였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는 출간이 코앞이던 소설가 구보 미스미의 신작 제작을 보류했고,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리커버판 출시를 미뤘다. 도서출판 비채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호평을 받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과 작가 초청을 계획했으나 모두 연기를 고려 중이다. 한국은 일본 책을 가장 많이 번역, 출판하는 나라 중 하나다. 반일감정이 계속 격화되면 판매량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정치와 별개로 문화적인 교류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공감대는 여전하지만 여론과 시기가 좋지 않은 만큼 출판인들은 출간 일정을 다시 조정하느라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달 7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정치적 영화가 아니지만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제66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2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이 영화 관계자는 “다양성 영화라 원래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되지 않지만 이번에는 더욱더 힘들다”며 “극장에서 ‘지금 상황에서 일본 영화를 걸기에는 너무 리스크(위험도)가 크다’고 하니 더 요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오는 10월3일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들도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새 집행부를 출범시킨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 콘텐츠 어워즈’를 만들어 시상할 예정이다. 아시아 콘텐츠 어워즈는 한 해 동안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었던 아시아 영상 콘텐츠에 주어진다. 수상자는 한·중·일 3국이 주요 대상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 콘텐츠·게스트 초청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방송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방송사나 제작사는 아예 해외 촬영지 목록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있다. 특히 여행 예능이 가장 민감하다. KBS 2TV <배틀트립>과 tvN <더 짠내투어> 제작진은 “예정된 방영분도 없고 당분간 대상지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는 “최근 케이블 예능에서 일본 현지 촬영을 계획했다 무산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가요계에서는 역으로 한국 가수의 일본 공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룹 엑소가 지난 22일 올해 하반기 일본 콘서트 계획을 공지하자 팬들은 반발했다. 오는 12월20~21일 공연이 열리는 미야기현의 콘서트장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장소와 근접해 아티스트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일본 콘서트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엑소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SM_EXO_미야기콘_취소해’ 등 해시태그를 앞세워 일본 콘서트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는 일본인 연주자의 공연 도중 관객석에서 혐오발언이 나왔다. 예술의전당에 따르면 이날 열린 <아디오스 피아졸라, 라이브 탱고> 공연에서 관객 한 명이 일본인 연주자에게 일본인을 낮춰 부르는 단어를 외친 뒤 공연장을 나갔다. 해당 연주자가 미리 한국어로 준비해 온 곡 설명을 더듬더듬 관객들에게 전하던 상황이었다. 잠시 웅성였던 관객들은 이내 연주자들에게 더 큰 호응과 박수를 보냈다. 극장 관계자는 “지극히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는데 관객들이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면서 마무리됐다”면서 “일행이 그 관객과 함께 바로 공연장을 빠져나가 별도의 조치가 이뤄질 시간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경학·이유진·김지혜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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