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전제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

윤설영 입력 2019. 7. 26. 00:33 수정 2019. 7. 2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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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영 도쿄특파원
마치 끝모르고 달리는 ‘불의 전차’ 같았다. 7월 1일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대한 방식이 실로 그랬다.

지난 12일 도쿄에서 열렸던 한·일 수출당국간 실무회의는 갈등의 도화선이었다. 넥타이조차 매지 않은 일본 당국자의 모습, 화이트보드에 써 붙인 ‘실무적 설명회’라는 글자에선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上からの目線)’이 느껴졌다.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와는 180도 다른 회의 장면을 보고 한국 내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냉정하게 대응하자’던 사람들도 ‘불매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일본 TV에서 ‘한·일 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이때 즈음부터였다.

18일 고노 다로 외상은 남관표 주일대사를 부른 자리에서 대화 도중 말을 끊었다. 취재단이 있는 앞에서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외상의 담화문은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고 했지만,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나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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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감정의 날을 세웠다. 청와대는 “정부 입장을 부정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거나 “애국이냐 이적이냐”라는 발언으로 일본을 외교의 대상이 아닌 싸워야 할 상대로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둔다”는 더 센 발언에 가려졌다. 일본에선 ‘경고 발언’만이 메시지로 전달됐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내가 더 세다”고 으르렁댄 지난 한 달 동안 “차분하게 대화로 풀자”는 목소리는 설 곳이 없었다.

이젠 감정적 대립은 끝내고 ‘쿨 다운’에 들어갈 차례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청와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다행이다. 청와대가 외교부에 대책 마련을 재촉했다고 한다.

일본 측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더라도,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와 피고 기업의 만남까지 막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은 두 정상이 만나서 풀어야 한다. 북·미처럼 한·일도 ‘톱 다운’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 당장 한국이나 일본 한쪽에서 만나기는 여건이 좋지 않다.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외교일정이 중국에서 열릴 차례인 한·중·일 정상회담이다. 그때는 두 정상이 ‘전제조건 없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베 총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고 했듯 말이다.

윤설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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