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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동의 타임머신]15년만 日화이트리스트 제외..2004년 '한·일 FTA' 논란

양희동 입력 2019.07.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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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2001년 국제수출통제 가입, 2003년 캐치올 도입
日 백색국가 2004년 포함..특혜 아닌 당연한 수순
당시 정부 한·일 FTA 추진..여권 나서 강력 반대
소재·부품 보호가 당시 반대 논리..'잃어버린 15년'
우리나라의 FTA 발효국 현황. 2000년대 초부터 FTA를 추진했던 일본과는 지금도 협정을 맺지 않았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한국이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총 15개 국입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 중 일본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의 무역 규모를 감안 할 때 미국과 중국, EU 등과 모두 맺은 FTA를 일본과는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5년 전인 2004년으로 되돌려보면 일본과의 FTA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절차 간소화 대상국) 제외와도 상당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해는 일본이 처음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 시킨 해입니다.

◇2004년 日 화이트리스트 포함…혜택 아닌 국제수출통제·캐치올 가입 따른 수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캐나다, 체코, 덴마크, 핀란드, 그리스, 헝가리,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총 27개국입니다. 한국을 빼면 나머지 26개국이 모두 유럽과 북·남미 등 서구권 국가들입니다.

이들 국가는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호주그룹(AG) 등 ‘4대 국제수출통제’ 체제에 가입하고, ‘캐치올(Catch-All)’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우방국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캐치올은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 수출 당국이 해당 물자의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입니다. 한국은 2001년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 가입을 마쳤고, 2003년엔 캐치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2004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 시킨 것도 이런 제도를 성실히 이행한 우방국에 대한 자연스런 조치로 풀이됩니다. 당시 관련 부처 자료나 언론 보도 등 어디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켰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양국 간 관계에선 당연한 조치로 특별한 이슈가 아니었다는 방증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본이 당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한 것은 특별한 혜택이라기보다는 관련 국제수출통제체제 및 캐치올 제도를 성실히 이행한 우방국이라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일 FTA 반대 논리 ‘소재·부품 산업 피해’…15년 뒤 또다시 ‘소재·부품 국산화’

노무현 정부 2년차 였던 2004년은 화이트리스트가 아닌 FTA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특히 한·일 FTA 체결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칠레와 첫 FTA를 맺은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체결을 목표로 일본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양국 간의 분위기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 FTA는 야권은 물론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나 진보 진영에서도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선 한·일 FTA가 대일 무역적자를 심화시키는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란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최철국 열린우리당 의원은 “양국 간 FTA를 추진할 경우 일본 제품 수입가만 인하되고 한국제품의 수출가 인하 효과는 거의 없다”며 “정부는 한·일 FTA가 체결되면 장기적으로 일본기업의 부품산업 이전, 기술이전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만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양국 간 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또 김교흥 열린우리당 의원도 “FTA로 인한 국내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없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협정을 체결한다면 제2의 일본 종속화가 우려된다”며 지적했습니다. 같은당 선병렬 의원도 “양국 간 FTA가 체결되면 국내 자동차업계 일자리 2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며 “관세 인하나 기술 이전 효과없이 산업 공동화만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당시 언론 기고를 통해 “일본과의 FTA는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많다. 우리나라는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기술 수준이 일본보다 20~30년 뒤져 있는 상대적 후진국”이라며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과의 양자 간 FTA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런 협정은 사실 진정한 자유무역으로 가는 길도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4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포함시킬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한·일 FTA를 반대하던 주요 논리였던 국내 부품·소재 산업 타격 및 공동화, 기술 종속화 등의 문제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이들 소재·부품을 무역 전쟁의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2004년 한·일 FTA 관련 인터뷰에서 “삼성이 1~2개 품목에서 일본 수준을 따라왔지만 기초 기술이나 상품력에선 한 수 아래”라며 “삼성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수입을 하는 회사라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기업만이 만들수 있는 고유 기술력이 없다면 그 명성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부품·소재 산업의 피해를 우려해 노무현 정부 당시 여권이 직접 나서 반대했던 한·일 FTA는 지금까지 맺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기정 사실화된 지금, 또다시 우리에겐 ‘소재·부품 국산화’가 가장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15년’의 시간을 또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양희동 (easts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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