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권 바뀌자 달라진 태도?'..시간제 공무원 '근무시간 확대' 논란

안태호 입력 2019.07.27. 15:33 수정 2019.07.2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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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관에서 낸 보도자료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해. 거짓말은 절대 안 해. 거짓말을 했다간 나중에 크게 문제될 수 있으니까. 대신 불리하거나 감추고 싶은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슬쩍 끼워 넣는 방식을 사용하곤 하지.”

몇 달 전 정부기관에 처음 출입하게 된 제게 존경하는 선배 한분이 해주신 말씀입니다. 정부기관이 낸 보도자료를 생각 없이 옮겨적기만 하면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실 수십 명의 기자가 동일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를 작성합니다. 대부분 유사한 내용 즉 정부기관이 강조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가 나가지만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앞으로 끄집어내어 날카롭게 지적하는 기사를 보면서 뒤늦게 무릎을 치기도 합니다. 홍보용 보도자료가 순식간에 비판 기사로 탈바꿈하는 것이죠.

■인사혁신처의 보도자료...35시간까지 자유롭게 선택?

인사혁신처가 지난 6월 11일 낸 보도자료의 첫 페이지입니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주 최대 35시간씩 일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자료 제목과 예시,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이 인사혁신처가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 출처=인사혁신처 보도자료 캡처
국가공무원의 인사제도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인사혁신처가 지난 6월 11일 낸 보도자료입니다.

인사혁신처가 뽑은 제목은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근무시간 선택범위 넓어진다’입니다. 바로 아래엔 친절한 예시가 들어가 있습니다.

“A씨는 자녀 양육 및 자아실현을 위해 ○○○○부의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양육과 업무를 함께 하고 있었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양육 부담이 줄어든 A씨는 근무시간을 주 35시간으로 확대해 줄 것을 신청·승인되었고, 업무에 매진하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독자분들은 위 예시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보도자료 본문의 첫 문장을 보시죠.

‘육아 등의 이유로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정해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근무시간 선택범위가 확대된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기존에 주 20시간(±5시간)까지 가능했던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근무시간 선택범위주 15~35시간까지 확대된다’고도 돼있습니다.

인사혁신처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특별히 굵은 글씨로도 표시를 해두었죠.

보도자료 2페이지에 나와 있는 ‘공무원 임용령 주요 개정 내용 요약’ 표에도 주 35시간이 강조돼 있습니다.

동 보도자료 2페이지에 정리된 주요 개정 내용 요약 표. / 출처=인사혁신처 보도자료 캡쳐
저도 당시 ‘시간선택제 공무원, 최대 주 35시간까지 근무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기사 본문의 첫 문장도 ‘육아 등의 이유로 하루 중 원하는 시간을 정해 일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이 택할 수 있는 최대 근무시간이 기존 25시간에서 35시간으로 확대된다’고 적었습니다.

■일자리 나눔 위해 도입된 '질 나쁜 일자리'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처음 도입됐습니다. 육아와 같은 이유로 공직 도전이 어려운 경력단절여성 등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습니다. 2018년 말 기준 1539명이 중앙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공무원, 즉 전일제 공무원은 주 40시간을 일하게 돼있습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주 20시간을 일합니다. 1명이 할 일(40시간)을 두 명이 나눠서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하루 오전·오후를 나눠 출근하기도하고 날짜를 달리해 나오기도 합니다. '월·화·수(오전)-수(오후)·목·금' 혹은 '월·수·금(오전)-화·목·금(오후)' 같은 식입니다.

제도 도입 당시 약간의 유연성을 둔다는 차원에서 5시간을 덜 일하거나 더 일할 수 있게 열어두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낮은 임금과 과도한 업무로 인한 초과 근무, 기관 내 2등 신분이라는 낙인 등으로 ‘질 나쁜 일자리’만 양산됐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입니다. 시간‘선택’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기관에서 일방적으로 근무시간을 정하는 등의 사례들도 많았습니다.

인사혁신처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최대 35시간을 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것이지요.

■'작은글씨'와 단 '두 음절'로 표현된 '정원' 문제

다시 6월 11일자 보도자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A씨의 예시와 앞부분에 강조한 부분만을 보면 마치 시간선택제공무원들이 자유롭게 35시간 근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도자료 가장 아래쪽을 보면 작은 글씨로 ‘공무원이 신청할 경우 인사권자는 기관의 인력 사정 등을 고려해 승인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습니다. A씨의 예시에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문장에 ‘승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기사 서두에 적었던 선배의 조언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사례입니다. 기관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예시와 설명을 통해 풍부하게 제공하고 부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은 축소되어 들어갔습니다. 홍보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저도 당시 담당자에게 추가 설명을 듣고 기사에 ‘근무시간 확대를 신청하면 인력·업무량·정원 등을 고려해 인사권자가 승인하게 된다’고 보도자료에 적힌 내용보다는 조금 더 구체화해서 적긴했지만 이것이 현장에서 어떤식으로 적용되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알고보니 A씨의 예시 중 단 두 글자로 적혀있는 ‘승인’이 갖는 의미가 만만찮았습니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선 ‘정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우리가 '티오(TO) 좀 남았나요?‘ 할 때 그 정원입니다.

먼저 공무원 사회에서 ‘정원’이 갖는 의미를 설명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공무원의 정원은 행정부의 방만한 확대를 막기 위해 굉장히 엄격히 관리합니다. 정원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데 모든 정부기관이 새로운 업무에 투입될 조직을 신설하거나 기존 조직의 목적을 바꾸려면 행안부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법 없이 죄 없다는 ‘죄형 법정주의’를 빗대 ‘법정 정원주의’라고도 표현하더군요.

■40시간 전일제는 1명, 20시간 시간제는 0.5명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별표2에 정리돼있는 행정안전부의 정원. 전일제 공무원은 1명으로 표현되는 반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소수점으로 표현된다. 행정안전부의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정원 2.0을 활용해 20시간(0.5명)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채용한다면 총 4명의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을 뽑을 수 있다. / 출처=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별표2 캡처
앞서 전일제 공무원은 주 40시간을 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분들은 당연히 정원 ‘1명’으로 표시됩니다. 주 20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몇 명으로 표시될까요. ‘0.5명’입니다. 15시간은 0.375명, 25시간 0.625명입니다.

바뀐 규정대로 주 20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이 15시간을 늘려 35시간을 일하려면 정원 0.375명이 더 필요한 것이죠.

물론 육아휴직, 병가 등으로 모든 정부기관에는 ‘결원’이 존재합니다. 결원을 이용해 시간을 확대할 수 있죠.

행정안전부도 올 2월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결원뿐만 아니라 전일제 공무원의 결원을 사용해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근무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결원이 없는 조직, 부서도 있고 결원이 있다고 해도 인사부서에서 시간 확대에 소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장입니다.

정성혜 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본부장은 “전일제 결원을 이용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시간확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담당자들이 수두룩하다. 알아도 소수점 정원 관리가 난처하다는 식으로 나오는 곳도 많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인사혁신처가 35시간 확대 법안만 만들어놓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VIP 지시사항..시간제 확대에는 적극 나섰던 인사혁신처

이들이 인사혁신처에 느끼는 서운한 감정, 그리고 서운함을 넘어선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정권이 바뀌고 나서 달라진 태도 때문입니다.

2014년 처음 도입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개혁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고용율 70% 로드맵 달성의 주요 정책 수단이었습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를 위해 인사혁신처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였습니다.

인사혁신처가 2016년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를 위해 각 중앙정부기관에 송부한 공문의 첫 페이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강조한 VIP 발언이 상세히 담겨있다. 각 기관에 '자체 시간선택제 확대 계획'을 수립하고 인사혁신처로 통보해 달라는 요구도 담겨있다. / 제공=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본부
2016년 인사혁신처가 작성한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 지침 시행 협조’ 공문을 보면 VIP 발언들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 내 시간선택제 활성화 대책이 결실을 맺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며 “동 지침에 따라 ‘자체 시간선택제 확대 계획’을 수립하여 ‘16. 1. 29(금)까지 인사혁신처(인사정책과) 로 통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굵은 글씨가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청와대에서 직접 살피는 내용이니 적극 추진해달라는 겁니다. 추진 계획도 세워서 보내면 본인들이 들여다보겠다는 것이죠.

공문에 첨부된 확대 지침을 들여다보면 각 부처가 참고할 세부추진사항은 물론이고 △시간선택제 우수사례경진대회 △시간선택제 공무원 수기 공모전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간선택제 공무원 채용 확대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하지만 2019년의 인사혁신처는 ‘35시간 까지 확대가 가능한 근거를 만든 것이다. 타 정부기관 사정에 따라 하는 것이므로 인사혁신처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답답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를 위해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던 인사혁신처가 왜 현 정부 하의 근무시간 확대에는 소극적인지 말입니다.

법이 개정된 만큼 개정된 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생색내기 법안 개정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옵니다.

2016년 인사혁신처가 각 부처에 보냈던 확대 지침 협조 공문 만큼은 아니어도 각 부처에 근무시간 확대를 원하는 공무원의 수요조사만 요청했더라도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노조 측 입장입니다.

인사혁신처가 큰 조직은 아니지만 다른 부처에 입김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다수 공무원들의 인식입니다. 한 부처에서 오랫동안 인사조직 업무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고위공무원 인사에 인사혁신처가 관여하기 때문에 인사혁신처 의견을 무시하긴 어렵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공무원 사회의 일원인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이같은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것이죠.

지난 6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제369회 행정안전위원회 임시회에 참석한 인사혁신처의 수장 황서종 처장은 “인사혁신처가 (근무시간 확대에) 아예 손을 놓고 있다”는 정인화 의원(민주평화당)의 지적에 “만약에 부처 차원에서 그런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저희가 한 번 별도로 인사담당자들을 불러서라도 그런 부분들이 현장 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해 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인사혁신처가 2016년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를 위해 각 중앙정부기관에 송부한 공문의 두번째 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당시 황서종 전 인사혁신처 차장이 전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제공=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본부
앞서 소개해드렸던 인사혁신처의 2016년 협조 공문의 최종 전결권자는 당시 황서종 전 인사혁신처 차장입니다. 맞습니다. 지금의 인사혁신처의 수장인 황서종 처장입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 시행에 적극 나섰던 황서종 처장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시간 확대를 두고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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