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20% 깨지고 계파 갈등..5개월만에 균열 생긴 황교안호

김준영 2019. 7.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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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승리로 닻을 올린 황교안호(號)가 취항 5개월 만에 곳곳에서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경제·외교안보 곳곳에서 경고등이 켰는데도 국정 운영 기조를 고수하는 여당발 폭풍우에 더해, 선원들 간의 다툼도 점입가경이다. 배를 움직일 동력인 지지율은 정체 중이다. 키를 잡은 선장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6일 오후 대전 서구문화원에서 열린 대전시당 당원 교육에 참석, 특강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취임 초만 하더라도 ‘정치 신인’ 황교안 대표에 대한 기대에 힘입어 한국당은 모처럼 순항을 거듭했다. 리더십 첫 가늠자였던 4·3 보궐선거에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연대에 맞서 아깝게 패배(전체적으론 1승 1패)할 정도로 선전했다.
지난 3월 29일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경남 고성군 새 고성새마을금고회화지점 앞에서 정점식 후보와 함께 유세차량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치했을 땐, 의원·보좌진·당직자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섰다. ‘국회 선진화 법안’ 시행 이후 의사 진행을 막을 경우 처벌 수위가 높아졌는데 그랬다. 웰빙정당이 야성(野性)을 되찾았다는 말이 나왔다.

패스트트랙 지정 후엔, 황교안 대표가 19일간 전국 지방을 순회하면서 “거짓말 정부” “독재자” “김정은 대변인” 등 강력한 비판을 쏟아냈다. 한동안 구심점을 잃었던 보수 진영이 황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이즈음 한국갤럽이 발표(5월 둘째 주)한 한국당 지지율은 25%를 기록,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달여 후인 지난 26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9%로 내려앉았다. 이는 정확히 전당대회 직전 발표된 2월 3주차 한국당 지지율과 같은 수치다. 그 사이 원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품격이 있나=표면적으로 지난 2월 ‘5·18 망언’부터 시작한 의원들의 잦은 막말 논란이 중도층이 한국당을 떠나게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와중 ‘5·18 망언’ 당사자인 김순례 최고위원이 ‘당원권 3개월 정지’ 시효를 마치고 지난 25일 최고위에 복귀해 “한국당이 5·18 망언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이해식 민주당 대변인)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회 국토위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당과 박순자 의원이 ‘중징계 처분’ vs ‘처분 불복’으로 맞서는 모습도 품격있는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 또 박맹우 사무총장이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와 최근 회동한 것을 두곤, 한국당이 우리공화당에 의원을 빌려주기로 거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렀다. 선거 연대론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박 총장이 “홍 공동대표와 만난 적 없다”고 부인하다 4시간 만에 “만나긴 만났다”고 번복해 의혹 증폭을 자처했다.

◆도로 친박당 됐나=고질적인 계파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지난달 말 박맹우(친박계) 사무총장 임명을 시작으로 이달 초 불거진 김세연(비박계) 여의도연구원장 퇴출 시도 논란, 김재원(친박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내정, 유기준(친박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 내정까지 친박이 당을 장악하려 한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나온다. 대표만 황 대표로 얼굴이 달라졌을 뿐, 당 지도부는 친박 일색이다. 탄핵 이전과 달라진 게 뭐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황교안 대표는 “우리 당에는 계파가 없어졌다”고 반박하지만, 당내 불신은 높기만 하다. 한 비박계 의원은 “우리 당이 문재인 정부에 하는 비판이 ‘코드 인사’ 아닌가. 근데 지금 한국당이 문 정부와 뭐가 다른가”라고 했다.

다만 당 일각에선 예결위원장의 경우 김재원 의원과 경쟁했던 황영철 의원이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고 3심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참작해야 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이 나왔는데 3심에서 뒤집힌 적은 거의 없다”며 “판사 출신인 나 원내대표가 이 점을 고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통은 한다는데 수용은 하나=이런 과정에 한국당의 지금 모습은 배지를 달고 싶은 사람들의 무리가 됐다. 자신들이 왜 배지를 달아야 하는지, 왜 사람들이 표를 줘야 하는지 대의가 사라진 채다. 이런 무리를 정치학에선 '도당(徒黨)'이라고 부른다. 이를 의미 있는 결사체로 바꾸는 게 리더십이다. 그 요체는 냉정한 현실 인식과 결단, 그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다.

황 대표가 대표가 되기 전 그를 아는 인사들은 “황 대표는 친박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총리를 했지만 친박적 세계관을 가진 것도, 인적 네트워크 속에 있는 것도 아니란 의미다. 한국당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는 얘기다.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도 황 대표의 대표 출마를 비난한 적이 있다.

황 대표는 그러나 어느덧 친박계의 장막 안에 놓였다. 한때 사무총장에 비박계 인물을 내정했다는 얘기가 들렸으나 막상 발표된 건 친박계(박맹우)였다. 인사는 리더십의 세기를 측정하는 척도다. 다수의 의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황 대표의 등장 이후 친박계의 당내 헤게모니가 더 커졌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공적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른바 대안이다. 황 대표는 이 점에서도 부진하다는 평가다. 여당의 국정운영 방향과 방식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급증하고 있는데 한국당도 새로운 얘기를 못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들이 청와대 회동을 했을 당시를 두고 뒷말이 나온다. 당시 한 참석자는 “회동 발표문 조율할 때 황 대표가 가장 적극적으로 입장 개진을 할 것으로 봤는데, 의외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며 “대통령과 공식 회의 석상에서 처음 만난 자리인 만큼, 야당 지도자로서 강한 면모를 보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놀랐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대여 투쟁에만 몰입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5일 한국당이 서울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 ‘KBS 수신료 거부를 위한 전 국민 서명운동 출정식’을 열었을 때 황 대표가 단상에 올라 연설한 것을 두고 한 수도권 의원은 “KBS가 일장기에 우리 당 로고를 합성한 건, 한국당을 공격한 거지 국민을 공격한 게 아니다. 과방위 차원에서 하면 될 일을 굳이 당 대표까지 나서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당내 활력도 떨어진 상태다. 한국당 관계자들은 공히 “황 대표가 수시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통‘은’ 많이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여러 우려와 나름의 해법을 듣지만, 좀처럼 반영이 안 된다는 얘기다. 대화 과정에선 “황교안 대표가 싫은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도 많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황 대표에게 쓴 말을 하려 했더니, 표정이 굳더라. 그래서 포기했다”고 했다. 심지어 주요 당직자만 모이는 비공개 6인 참모진 회의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하는 한 참모는 “황 대표가 비판을 안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분위기상, 본인이 먼저 ‘비판해달라’고 판을 깔아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 좀 아쉽다”고 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기본적으로 관료는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것엔 능하지만, 새 환경에선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정치에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나라가 국제 외교에 고립되고 있는데, 제1 보수야당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 손해다”라고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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