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누명 쓴 경찰관의 지난 7년

류인하 기자 입력 2019. 7. 28. 09:14 수정 2019. 7. 28. 19:4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난동 취객 제압하다 가해자로 몰려… 항소심에서 결백 입증 무죄 판결

평온하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누군가가 뒤집어씌운 누명은 6년 9개월간의 법정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한 경찰관의 생존기다.

2008년 2월 17일 새벽 2시. 무전기에서 “신고번호 XXXX. 택시 관련 시비”라는 출동지시가 떨어졌다. 서울 송파경찰서의 한 지구대에서 야간근무 중이던 김종구 경위는 선배인 최강술 주임과 함께 렌터카 업체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택시기사가 서 있었다. “기사님이 신고하셨습니까?” 기사는 아니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오던 승객이 택시에 붙은 자격증과 자신의 얼굴이 다르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강제로 택시에 붙어 있는 자격증을 뜯어가 버린 것이었다. 택시기사는 “자격증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신고자는 택시 승객인 렌터카 사장 윤모씨였다. 김 경위는 윤씨의 렌터카 사무실로 올라가 “112 신고한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돌아온 것은 윤씨의 욕설이었다. 최 주임과 김 경위는 택시기사와 윤씨를 중재해보려고 했다. 술에 취한 윤씨가 갑자기 옷을 벗었다. 속옷만 입은 채 그는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 길이 27㎝짜리 부엌칼을 들고 나왔다.

“경찰관 개XX들, 오늘 죽여 버린다!” 윤씨는 최 주임을 향해 한 차례 칼을 휘둘렀다. 종업원이 뒤따라 나와 윤씨를 말리고 칼을 빼앗았다. 김 경위는 지원요청을 했다. 윤씨는 긴급체포됐다. 지구대 경찰에게는 날마다 벌어지는 일상 중 한 장면이었다.

김종구 경위가 7월 24일 충남 경찰인재개발원 강의동 앞 정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직권남용 감금 등 4가지 죄로 기소당해

그러나 이 사건은 김 경위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검찰은 오히려 김 경위를 직권남용 감금,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등 4가지 죄명으로 기소했다. 칼을 휘둘러 경찰을 위협한 당사자는 따로 있었지만 검찰은 렌터카 사장 윤씨에 대해 증거불충분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칼을 휘둘러 경찰을 위협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렌터카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는 총 6대였다. 그 중 한 대를 제외하고 5대는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현장도 고스란히 녹화돼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CCTV를 보고도 윤씨가 경찰관을 칼로 위협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경위는 사건 발생 석 달 만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 처음은 참고인 신분이었다. 서울 동부지검 담당검사가 그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그러나 “이 사건이 특수공무집행방해가 되는 사건이냐”였다. 한마디로 ‘깜’이 되지 않는 사건을 경찰이 억지로 밀어붙인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 김 경위는 조사 내내 “원리원칙대로 했다”고 말했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김 경위는 당시를 회상하며 “담당검사가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선량한 시민을 구속시키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김 경위가 당시 사건 관계인이자 목격자인 택시기사에게 자필 진술서 작성을 요청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택시기사에게 거짓 진술서 작성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건계장과 검사는 “택시기사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 현장을 보지 못했는데 김종구씨가 불러주는대로 진술서를 썼다고 이미 불고 갔다”고 했다.

김 경위의 기억은 달랐다. 택시기사는 분명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검사는 조사 내내 카센터 사장이 검찰에 제출한 CCTV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영상이 아닌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진술해야만 했다.

지난 7월 24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만난 김종구 경위는 기자에게 열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열 명의 경찰이 있다면 네 명은 ‘그래도 검사가 무고한 사람을 기소했겠어’라고 하고, 여섯 명만이 나의 결백을 믿어줬습니다.” 한 경찰 간부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그에게 “지금이라도 카센터 사장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빌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위로를 겸한 농담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은 김 경위에게 상처로 남았다.

2008년 2월 17일 새벽 2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렌터카 내 CCTV 화면. 상하의를 탈의한 사장 윤모씨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찍혀 있다.

기대 벗어난 법원 판결에 항소 결심

김 경위의 일상에 불어닥친 불행은 가족도 덮쳤다. “당시 아내가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5개월이었나, 6개월이었는데 아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모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이 순댓국을 먹으면 다시 젖이 분다는 말에 매일 식당에 가서 아내와 순댓국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다 창 밖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래서 사람이 죽을 수도,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했었습니다.”

설령 잘못된 기소라도 법원만큼은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4단독 판사는 그러나 김 경위와 최 주임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택시기사는 1심 재판 증인심문에서 명확한 진술을 하지 못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이 전부였다. 택시기사는 분명 현장에 있었고, 당시 상황을 목격했다. 김 경위에게 필요한 것은 택시기사의 정확한 진술이었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객관적 진술이 있어야만 했다.

김 경위는 항소를 택했다. 벌금 200만원은 경찰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처벌이다. 거기서 멈출 수 있었지만 그는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 변호사를 새로 선임했다. 변호사는 “택시기사가 CCTV 영상 전체를 보게 한 다음 증인심문을 하는 전략을 짜자”고 했다. 김 경위는 그러나 이미 택시기사를 믿을 수 없었다. 택시기사는 그가 거짓으로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는 누명을 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4일. 처음 그들이 현장에 출동한 날로부터 1년 9개월이 지나 있었다. 항소심 공판 첫날 택시기사가 증인으로 불려왔다. 먼저 CCTV 영상 검증을 했다. 전체 5분도 채 되지 않는 분량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택시기사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판사님 저는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살기를 느껴 도망쳐 나왔습니다. 렌터카 사장이 경찰관들에게 욕을 하고, 칼로 위협하는 것을 똑똑히 제가 본 후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도망쳐 나왔습니다!”

CCTV 영상 속에는 택시기사가 있었다. 렌터카 사장이 옷을 벗고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순간 사무실 밖으로 나갔지만 밖에서 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2대의 CCTV에 택시기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가 봐도 택시기사는 현장의 목격자였다. 결과는 전부 무죄였다. 검찰이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2010년 9월 30일 상고기각 판결을 내렸다. 무려 2년 7개월 만의 무죄 확정판결이었다.

김 경위는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렌터카 사장과 검사, 사건계장은 2년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김 경위는 그들의 잘못을 밝히고 싶었다. 아내는 말렸다. “어떻게 당신만 생각해. 여기서 다 잘못되면 어떡해”라며 원망했다. 김 경위는 기자에게 “만약 제가 거기서 멈춘다면 그들은 버젓이 또 다른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경찰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번에는 김 경위가 고소인이 됐다. 피의자는 렌터카 사장과 사건계장 나모씨였다. 검사는 고소할 수 없었다. 검사가 부당하게 기소를 했더라도 이를 처벌할 법률규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사건계장이 렌터카 사장으로부터 향응과 접대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렌터카 사장과 평소 친분이 있던 사건계장이 이른바 ‘사건 바꿔치기(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꾸는 것)’를 한 것이었다. 설령 사건계장이 조작을 했더라도 담당검사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검사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 이후 부장으로 승진, 여전히 현직에 있다.

국가와 사건 상대방 상대로 배상 받아내

법원은 렌터카 사장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뇌물공여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 징역 8월을 선고했다(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80시간으로 감형됐다). 또 사건계장의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20만원을 선고했다. 사건계장은 이 고소가 시작되기 직전 명예퇴직을 한 상태였다. 퇴직금은 확정판결로 환수됐다. 공무원이 재직 중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기지급된 퇴직급여의 절반을 반환하고, 또 향후 지급받을 연금이 있다면 그 금액 역시 절반으로 감액되는 것이 공무원연금법 규정이다.

김 경위는 국가와 담당검사, 렌터카 사장을 상대로 국가배상 민사소송도 함께 냈다. 1심은 국가의 책임만 인정, 500만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검사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 경위와 최 주임이 누명을 쓴 점은 인정되지만 검사가 사건계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잘못된 공소제기를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검사의 잘못된 공소제기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것은 렌터카 사장에게도 250만원의 배상책임을 지운 것뿐이었다. 이 판결은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몇 달 뒤, 김 경위는 사건계장이 사망했다는 부고를 전달받았다.)

6년 9개월간 진행된 모든 소송이 마무리됐다. 지난 소송 기간 동안 변호사 선임에만 3800만원이 들었다. 6명의 변호사가 선임됐다. 소송비용은 대출빚과 경찰공무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건네준 돈으로 충당했다.

“한 번은 제주도에 있는 여자 선배 경찰이 제 계좌로 50만원을 보냈길래 ‘5만원을 보내려다 잘못 보내셨구나’ 싶어 연락처를 수소문해 ‘45만원을 돌려드리겠다’고 하니 50만원 입금한 게 맞으니 재판 잘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제 사연을 접하고 그 큰 돈을 덥석 보내주셨습니다. 경찰 내 단체인 ‘폴네티앙’ 등에서도 소송비용을 지원해줬습니다. 지금도 감사한 기억입니다.”

이 일은 김 경위의 삶을 바꿔놓았다. 평범한 일상을 뿌리째 흔들어놓았고, 그의 꿈을 바꿔놓았다. 김 경위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석사학위를 땄고, 최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지금은 충주경찰서 소속 범죄예방진단경찰관(CPO)으로 근무하며 틈틈이 강의도 나가고 있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 37세의 젊은 경찰관은 이제 48세 중년이 됐다. 마지막 소송을 끝으로 4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7년의 일들을 정리해 조만간 책으로 낼 계획이다. 제목은 ‘덫-디케의 칼(刀)’로 정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