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 남극에 찬 바닷물 뿌려 빙하 살찌우기..'열 받은 지구' 식힐까

이정호 기자 입력 2019. 7. 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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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독일 연구진, 녹는 양만큼 다시 얼려 해수면 상승을 막는 방법 제안
ㆍ기후공학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근본 처방 동력 해친다는 주장도

2016년 항공 촬영된 남극 서부 지역의 게츠 빙붕. 빙붕의 가장자리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선명히 관찰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기한 없이 철길을 질주하는 기차 안, 좁고 답답하지만 그 내부는 여느 기차와는 다르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공부하는 학교, 먹을 작물까지 자라는 일종의 생태계가 기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건 무려 17년으로, 이런 독특한 공간이 만들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기차 밖은 영하 수십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로 인해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다. 혹독한 추위가 닥친 이유가 뭘까.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자 인간 스스로 대기권 내에 가득 뿌린 특수물질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를 일정 수준에서 진정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특수물질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기온을 떨어뜨리면서 빙하기가 찾아온 것이다. 201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스토리다.

흥미로운 건 지구온난화에 대응해 인간이 인위적으로 기후를 조절한다는 개념이 그저 상상 속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기후공학(climate engineering) 또는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라고 부르는 분야가 최근 과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후공학은 말 그대로 기후를 인위적인 조절 대상으로 본다는 게 핵심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공상에 가까운 영역이었지만 온난화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면서 일부 과학계의 시각이 달라졌다. 높아지는 지구 기온과 이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막겠다는 게 목표다.

기후공학은 크게 두 가지 전략으로 나뉜다. 하나는 대기권에 이왕 퍼진 이산화탄소를 잡아들이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하에 집어넣는 과학적인 시도가 많은데 이런 방향의 연구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세계 연구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뜨거워진 한여름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통풍구를 뚫어 인위적으로 시원한 공기를 집어넣는 식의 대처법이다.

주목되는 건 기후공학의 두 번째 전략이다. 지구로 흡수되는 햇볕 자체를 줄여 온도를 낮추는 데 집중하는 것인데, 핵심은 지표나 바다를 지금보다 더 밝게 만드는 데 있다. 실제로 하얀색 눈은 날아드는 햇볕의 90%를 우주로 튕겨낸다. 하지만 검푸른 바다는 반대로 90% 이상을 흡수한다. 한여름에 검은색보다 흰색 옷을 입어야 덜 더운 현상을 지구 단위에서 실천하는 방법이다. 바다에 인위적으로 흰색 거품을 뿌리거나 사막을 하얀 천이나 패널로 덮고 하늘에 특정 화학 성분의 알갱이를 뿌려 구름을 더 하얗게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일부 과학계에서 제시된다. 아예 지구 궤도에 태양광 반사용 거울을 다량으로 띄우자는 제안도 있다. 뜨거워진 비닐하우스를 뒤늦게 식히는 게 아니라 아예 바깥에 차광막을 씌워 햇볕이 내부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는 식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독일 연구진이 또 다른 개념의 기후공학 프로젝트를 제안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주 영국 유력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를 통해 지구온난화로 녹고 있는 남극에 인간의 힘으로 차가운 바닷물을 뿌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목표 지역은 남극 서부이다. 여기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가장 빠르게 녹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해수면 상승의 ‘공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아이디어는 매우 거대하다. 무려 1만2000개의 풍력 터빈에서 발생시킨 에너지로 펌프를 돌려 바닷물을 남극 서부 지역에 눈처럼 흩뿌리자는 제안이다. 필요한 바닷물의 양은 10년간 무려 7400㎦다. 지구 전체의 물이 14억㎦이니 언뜻 많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도 인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규모 해양 프로젝트이다. 연구진은 돈이 막대하게 들 테지만 뉴욕과 같은 해안 도시 하나를 잃는 것보다 적은 비용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연구진의 계획대로 남극 서부에 인위적으로 뿌린 바닷물을 얼려서 쌓으면 대륙빙하가 두꺼워지고, 이 때문에 빙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빙붕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일이 적어진다. 앤더스 레버만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교수는 “과학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선택 사항을 알릴 의무가 있다”며 “인류는 전례 없는 위험을 막기 위해 전례 없는 노력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후공학이 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을 위한 동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후공학이 있는데 굳이 이산화탄소를 줄일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어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현재도 태양광처럼 이산화탄소를 뿜지 않는 신재생에너지가 있지만 많은 국가가 운영 확대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공학으로 지구 온도를 낮췄지만 특정 지역에 가뭄이나 홍수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의 작동 원리가 워낙 복잡해 온갖 변수를 제대로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후공학이 정말 인류가 명운을 걸어야 할 급박한 프로젝트가 될지는 수십년 내 지구온난화 추이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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