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윤석열의 '러브 콜'에 조국은 '마이 웨이'

박재현 입력 2019. 7. 29. 00:03 수정 2019. 7. 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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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 공안·노동사건 언급 없어
현 정부 향한 '코드 맞추기' 비판
조국, 인사 때 윤 총장 지지 안해
법무-총장 체제 불안한 동거 예상

집권층 비리 수사 가능할까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지난 26일 취임 인사를 하기 위해 김명수 대법원장 사무실을 찾았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은 외견상 최고의 실세 총장이다. 역대 검찰총장과 비교할 때 그에게 ‘잔소리’를 할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조원 신임 민정수석은 검찰 업무에 대해 세세히 알지 못한다. 차기 법무장관행이 유력시되는 조국 전 민정수석도 윤 총장(79학번)보다 3년이나 후배인 데다 현장 경험이 없어 크게 간섭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 정부 때 검사 출신의 김기춘 비서실장·우병우 민정수석의 견제와 통제 속에 검찰을 이끌어야 했던 검찰총장과 비교할 때 운신의 폭이 훨씬 자유로운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처럼 ‘우리 윤 총장’의 입장에선 소신껏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토양과 지분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검과 중앙지검 검사들도 “정권의 지지를 받는 윤 총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각종 검찰개혁 요구로 침체된 조직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란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윤 총장도 취임사를 통해 이 정부와의 연대감을 표시했다.

그가 취임사 앞구절에 언급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부터 살펴보자. 기억력이 좋은 법조인들은 금방 문 대통령을 떠올렸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을 내리자 문 대통령은 ‘헌법 1조’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오늘 우리는 헌법 제1조의 숭고하고 준엄한 가치를 확인했다”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조항을 인용했다. 당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있던 윤 총장도 수사의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헌법 1조를 인용하곤 했다.

윤 총장은 또 문무일 전임 총장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이들을 상대로 한 범죄에 우선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강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들에게 군림하거나 횡포를 가하는 갑질을 바로 잡아달라”는 문 대통령의 주문에 화답한 것이다.

과거 검찰총장들이 취임사에서 빠지지 않고 다짐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공안사범과 노동계의 집단적 행동에 대한 강력한 대응 방침이 윤 총장의 취임사에서 빠진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대신 그는 우리 헌법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두 축으로 설정한 뒤 공정한 경쟁질서를 방해하는 ‘적대세력’에 대한 수사를 강조했다. 그의 취임사가 코드 맞추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과 법조 관계자들은 “윤 총장의 ‘러브 콜’에 조국 전 수석이 응답하면 적폐청산을 위한 ‘석국열차’가 진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두 사람은 “우리 둘은 정말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해 조 전 수석은 ‘마이웨이’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석국열차가 노선을 이탈할 가능성도 충분히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윤 총장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검찰 간부 인사를 둘러싼 물밑 갈등을 추적해보자. 윤 총장이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그를 잘 아는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아슬아슬했다. 큰일 날 뻔했다”고 입을 열었다. “문 대통령이 계속해 밀지 않았으면 윤 총장이 후보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당시 조 수석은 윤 총장이 아닌 대학 때부터 친분이 있던 봉욱 대검 차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검찰 사정에 밝은 사람들의 전언이다. “양면적 칼날을 가진 윤 총장이 우리 정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원칙대로 강직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있을 정도”라고 했던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 당시 여권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봉 전 차장이 인사 발표 직후 가장 먼저 사의를 표명한 것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주말 있었던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 때까지 민정수석직을 유지했던 조 전 수석은 자신의 권한을 굽히지 않았다. 당장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윤 총장과 조 전 수석은 이견을 보였다. 신임 검사장급 승진 범위를 놓고도 의견이 달랐다고 한다. 윤 총장의 동기들이 대거 요직에 포진해 ‘집단지도체제’로 검찰이 운영되게 됐다는 보도는 뒤집어 생각하면 타협에 따른 무색무취한 인사가 됐다는 얘기다.

검찰의 운영도 두루뭉술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조 전 수석 등 이 정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선 추호도 양보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손혜원 부동산 투기 의혹, 이석기 전 의원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을 수사했던 보수 성향의 검사들에게 사실상 사퇴를 유도한 것은 “우리의 뜻대로 검찰을 운영하겠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조 전 수석이 자리에 물러나면서 “촛불 명예혁명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법과 원칙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해왔다”고 말한 대목도 그렇다.

그럼,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비리가 있으면 엄정하게 해달라”는 주문은 효력을 발휘할까.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의 정치 및 선거 개입, 불법 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 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검찰총장들이 ‘거악(巨惡)과의 전쟁’ ‘고위층 부정부패 엄단’ 등의 용어를 쓴 것과는 언어의 온도가 다르다. 윤 총장이 지금까지 주로 해 왔던 기업체 비리에 상당한 수사력이 모아질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의 저돌적인 수사 성향을 고려할 때 집권층을 향해 의도적으로 수사망을 던질 개연성도 향후 관전 포인트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조국 전 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올 경우 파열음을 낼 공산이 다분하다. 노무현 정부 때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놓고 천정배 법무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이 충돌했던 사례가 있었다. 인사와 예산에 대한 독립적 권한이 없이는 정치적 중립과 독립은 요원한 일이다. 한두 달 뒤 조 법무부장관과 윤 총장의 ‘불안한 동거’가 가시화될 경우 석국열차의 일등 기관사는 누가 맡게 될까. 여전히 촛불정신을 주장하는 이 정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해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 취임사마다 국민 위한 검찰개혁 다짐했지만…

「 역대 검찰총장들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을 위한 검찰 개혁을 빠짐없이 약속했다. 윤석열 총장은 “헌법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며, 국민의 사정을 살피고, 국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문무일 전임 총장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을 만들기 위해 합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김수남·김진태 총장도 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지적하며 ‘국민을 위한 바른 검찰’과 ‘바른 검찰, 당당한 검찰, 겸허한 검찰’이 될 것을 약속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상대 총장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검찰이 되기 위해 검찰 내부의 적과 싸우겠다”고 했다. 김준규 총장은 “따뜻하고, 섬기고, 열린 마음으로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한다”면서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검찰론을 주장했다.

검찰 창설 71주년을 맞고, 43명의 검찰총장이 배출됐지만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하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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