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 교육부 국정 교과서에 "윤동주는 재외동포 시인"

장세정 2019. 7. 29. 00: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등6학년 도덕 책에 실려 논란
중국은 "조선족 애국시인" 억지
중국 논리에 이용될 가능성 경계
'재외동포 시인'에 학계 이견 많아
윤동주 연구를 지금보다 더 해야
"윤동주를 통해 우리도 하나되길"
중국은 윤동주 시인 생가에 2012년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는 화강암 비석을 세웠다. 장세정 기자
중국은 윤동주 시인 생가 앞에 시인의 얼굴과 '서시'를 한국어와 중국어로 새긴 시비를 세웠다. 장세정 기자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1위' 윤동주. 그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재외동포 시인'인가. 대한민국 교육부가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재외동포 시인 윤동주'로 기술하기 시작해 논란이다. 몇 년 전부터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억지와 궤변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재외동포 시인 윤동주'로 규정하는 것도 아직은 낯설고 불편하다.
윤동주(왼쪽)시인의 원고를 보관했다가 1948년 유고시집을 발간해준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 [사진 윤형주]
교육부가 발간한 국정 교과서(초등6 도덕 58쪽)에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외동포의 법적 개념은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재외동포에는 재외국민과 한국계 외국인이 포함되는데 시인 윤동주를 단순히 재외동포로 분류한 국정 교과서가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北間島, 두만강 북쪽의 만주 땅, 지금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일대)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졌다. 일제는 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독립운동) 혐의로 시인을 체포한 뒤 생체실험용 주사까지 맞히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윤동주 시인 생가에는 일본이 윤동주 시인을 상대로 감옥에서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을 묘사해 놓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진 윤동주의 유해를 찾아 북간도에서 장례식을 하고 있는 유족들. [사진 윤형주]
28년이라는 짧은 생애 중에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약 20년, 평양과 서울을 합쳐 4년여, 그리고 일본에서 4년을 살았다. 하지만 윤동주의 뿌리는 명백히 한반도였다. 증조부(윤재옥)는 식솔을 이끌고 1886년 고향(함경도 청진부 포항정 76번지, 지금의 함경북도 종성)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불과 50여km 떨어진 북간도로 이주했다. '윤동주 100년 포럼'이 2017년 출간한 『미술관에서 만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용정 광명중학과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 학적부, 일본 교토 재판소 판결문은 윤동주가 조선인(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절대 문건"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여동생 윤혜원씨는 생전에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잡혀가 일본 감옥에서 죽은) 오빠는 한국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85년 무렵 뒤늦게 윤동주의 위상과 중요성을 인식한 중국은 '윤동주=중국인' 공작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급기야 2012년 8월 윤동주 생가 앞에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거대한 화강암 비석과 중국어로 번역한 시비를 못박기 하듯 세웠다. 세월이 가면 윤동주가 중국어로 시를 쓴 중국인 시인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윤동주는 줄곧 한글로만 시를 발표했다.
홍정선 인하대 명예교수('문학과 지성사' 전 대표)는 "52년 9월 조선족 자치구(55년 12월 자치주로 격하)가 만들어지면서 '중국 거주 외국인'이었던 조선인은 '중국인 조선족'이 됐다. 하지만 윤동주는 조선족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살았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 단정하는 표현을 교과서에 싣는 과정에서 충분한 고증을 거쳤을까.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교육부에 '재외동포 시인 윤동주' 표현 삽입을 제안했고 교육부가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이 독립기념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시인 윤동주를 소재로 2016년 영화 '동주'를 만든 이준익 감독과 배우 강하늘(윤동주 역). [중앙포토]
중국 옌볜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묘비석에 '시인윤동주지묘'라고 한자로 씌어 있다. [인터넷 캡처]
윤동주 시인의 동생 윤일주 전 성균관대 교수의 부탁을 받고 중국에서 윤 시인의 묘소를 1985년에 발견해 학계에 처음 알린 한국문학 연구가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 [인터넷 캡처]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수긍하기 어렵다. 재단 관계자는 "국문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윤동주의 국적을 둘러싸고 견해가 다른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일방적으로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으로 몰아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우리는 국어 시간에 윤동주를 동포시인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KBS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획-윤동주 콘서트, 별 헤는 밤' 녹화(KBS 1TV 8월 15일 오후 6시 방송 예정)가 있었다. 이날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폴란드에서 태어난 쇼팽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숨진 뒤 파리에 묻혔지만, 쇼팽을 통해 전 세계 폴란드인들이 하나가 됐다. 우리도 윤동주를 통해 하나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동주 콘서트-별 헤는 밤'을 녹화한 18일 KBS홀에는 교육계, 문화계 인사 등이 초청됐다. 장세정 기자
일제는 1909년 '간도밀약'을 통해 대한제국령이던 간도를 청나라에 넘겼다. 윤동주의 증조부는 1886년 두만강을 건너 고향(함경북도 종성)에서 약 50km 떨어진 북간도 용정현으로 이주했다. [인터넷 캡처]
일제는 1909년 9월 4일 대한제국령이던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는 간도협약(밀약)을 체결했다. 학계의 한 인사는 "윤동주를 재외동포로 분류하는 것은 위험하다. 윤동주가 태어난 간도를 우리 땅이 아니라고 버리는 셈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 중국 논리에 이용당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윤동주의 정체성에 대해 윤동주 시인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 한국 해비타트 이사장은 "앞으로 더 깊은 연구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시인 윤동주의 일생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한민족이 겪은 아픈 역사의 단면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판이 다시 요동친다. '그들'이 또다시 한반도를 넘본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든 시인을 지켜내는 일이든 감정보다는 철저한 대비와 연구가 먼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강제징용 판결을 계기로 부당한 '수출 보복'을 가하자 한국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만난 두 정상.[AP=연합뉴스]
'중국몽'과 '강군몽'을 외치며 한국의 사드 배치에 부당한 보복을 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 방문 기간에 '혼밥 홀대'를 받았다는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장세정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