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통합은커녕 新친일 공세..외환(外患)이 내우(內憂) 될라

입력 2019. 7. 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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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오거돈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 누리마루에서 시도지사 간담회 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처럼 일본 선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에 관심을 뒀던 이유는 첫째, 평화헌법 개정 가능성 여부를 점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이번 선거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이 우리에게 가하는 경제보복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의원 선거는 아베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일본은 ‘1.5당제(黨制)’라는 말이 상징하듯, 본래부터 자민당 강세가 상당한 국가다. 그렇기에 한일관계와는 무관하게 아베의 압승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단, 이번 선거에서 아베가 74% 이상 의석을 휩쓸었다면 개헌선을 확보했을 텐데 실패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시나리오가 나온다.

우선 아베가 계속 개헌을 추진하는 경우다. 그는 선거 유세에서도 수없이 헌법 개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참의원과 중의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지지를 획득해야 하고 이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일본 국민 대부분은 헌법 개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베가 평화헌법 개정을 진정으로 원할 경우 이 부분은 상당한 걸림돌이 될 터다. 이 때문에 아베는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경제보복의 명분으로 이상한 소설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여론을 인위적으로 형성하고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경제보복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다. 강도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일본 내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아베가 명분을 살리는 범위 내에서만 헌법 개정을 외치다 슬그머니 포기하는 경우다. 이 역시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베로서도 이번 선거를 완승이라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완승을 하지 못해 여론 향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론은 헌법 개정에 무관심하니 괜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정치적 입지에 해롭다 생각할 수 있다. 이때는 경제보복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정리될 수 있다.

그런데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높다. 아베가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확신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경제보복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과연 대비를 잘하고 있는가. 정부 여당이 반일과 극일을 적극적으로 외치고는 있지만, 이런 목소리 속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세밀한 ‘조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정부나 여당 메시지가 주로 국내를 향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2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가전·전자·반도체·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왔다”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외교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단기적 대책과 장기적 대책을 구분해서 접근한다. 단기적 대책 수립을 통해 당장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동시에 장기적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당면한 외교적 시련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둘 중 하나에만 치중하면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단기적 대책만 추진하고 장기적 대책은 손 놓고 있으면, 지금 겪는 외교적 시련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장기적 대책만을 논하고 단기적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당장에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 당연히 정부는 장기적 대책과 단기적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단기적 대책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WTO에 가서 일본의 경제보복 부당성을 강조하고, 미국을 향해서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WTO에서 일본 경제보복의 부당성을 증명하고 국제사회 도움을 받기 위해, 그리고 미국이 중재 역할에 나서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 여건은 일본의 경제보복을 ‘역사와 민족 문제’가 아닌 ‘경제 문제’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여당 메시지를 보면, 지금 한일 간 갈등을 자꾸 역사 문제로 만드는 것 같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동학혁명과 관련된 ‘죽창가’를 언급하더니, 이제는 ‘애국과 이적(利敵)’이라는 이분법을 주장한다. ‘친일파’에 대한 개념 정의까지 내린다. 조국 민정수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한일전에서 자유한국당이 백태클 행위를 반복하는 데 대해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심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친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추경을 통과시키기만 하면 일본을 당장 무릎 꿇릴 수 있나? 현 정부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면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가 되고, 추경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거나 조건을 달아도 친일파가 된다. 한마디로 외교, 정치,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 정권을 비판하거나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경우는 모두 친일파로 분류될 지경이다.

이런 정부 여당 주장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지금 정부나 여당 메시지의 상당 부분이 일본이나 국제사회가 아닌 국내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시지가 국내를 향하면 한일 간 갈등은 국내 정치 문제로 위상이 격하된다.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단결해야 하는데 친일과 이적이라는 단어를 동원함으로써 국민을 오히려 분열시키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국민의 단결된 힘을 원한다면, 설령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을 달래가며 함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째, 고위 공직자나 여당의 ‘친일파’ 규정 관련 발언이 외국에 알려지면 상당수 국가가 지금의 한일 갈등을 역사적·민족적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갈등의 해법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른 국가가 한일 간 갈등이 경제 문제라고 이해하면 자신들 이익도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며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거나 중재에 나서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갈등이 역사적 혹은 민족적 문제라고 생각하면 개입하기를 꺼려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태가 전개되면 아무리 WTO에 가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역설해도 다른 나라 동조를 이끌어내기 힘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에 대한 강경한 주장을 편 이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른 것으로 봐서는, 강경 발언이 국민 여론을 잘 대변하고 그래서 옳은 주장이라는 논지를 편다. 일본과의 갈등이 노골화된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리얼미터가 7월 15~19일 전국 성인 250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 ±2%포인트)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보다 4%포인트 오른 51.8%를 기록했다. 8개월 만에 최고치다.

한일 갈등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과의 갈등으로 위기 상황이 초래되면 국민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9·11 테러 당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그리고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모두 지지율 80%를 웃돌았다.

문제는 이런 지지율 폭등 현상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갈등이나 위기 양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거나, 단기간 갈등을 겪다 궁극적인 승리를 맛보면 대통령 지지도가 계속 상승하겠지만, 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면 지지율은 폭락한다. 그런 경우 국가적 위기가 정권 위기로 전이되기 십상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지나친 감정적 호소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데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다. 비판적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친일로 몰기보다는 일단 역지사지를 통한 국민 통합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앞에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우리공화당 지지율이 민주평화당보다 앞선 2.4%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그만큼 지금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극단적 반발 지수’가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가 극단적으로 양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외환이 내우로 번질까 걱정되는 시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9호 (2019.07.31~2019.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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