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을 세월호 기억공간으로.. "아이들이 97년 소띠예요"

황용운 2019. 7. 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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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을 다시 묶다 ②] 어머니 한 분이 통곡하며 한 말

[오마이뉴스 황용운 기자]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에 2015년 4월 16일 기억공간 re:born 이 시작됐다. 사회적 기억이 개인적 의미로 다시(re) 태어나는(born) 사유공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동안 기억공간에서 누구를 만났고 어떤 질문을 했는지 돌아본다. 서로 다른 국가폭력으로 삶을 빼앗긴 사람들과 지웠고 지우려는 한맺힌 존재들의 공통된 질문을 함께 모색한다... 기자말

"잊지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성동경찰서에서 갇혀 있던 2일 동안 생각은 복잡했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정리는 심플해졌다. 다니던 '아름다운 가게'를 12월말로 퇴사하고 아이들을 기억할 '공간' 을 만든다 이것이었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었다. 공간을 만든다면 그 공간을 어디에 만들면 좋을까? 세월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은 두려움의 순간을 감내해야 했던 진도 팽목항? 단원고가 있는 안산? 분노한 시민이 몰려나오는 광화문? 세월호가 출발했던 인천항? 세월호가 도착하기로 했던 제주?

내 생각은 제주에서 멈췄다. 제주는 세월호가 향하던 최종 목적지였고 배에 탄 사람들에겐 새로운 삶의 터전이기도 했고, 아이들에게는 들뜬 수학여행지였으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레는 커플 여행의 목적지라는 등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닿아 있는 곳이다. 생각은 존재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한번 마음에 들자 나는 제주에 이미 이러저러한 '공간'을 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꼭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하는가?'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면 누가 찾아올 것이며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할까?'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얘기를 나눌 것인가?'

머릿속에 떠다니는 현실적인 질문과 키워드를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정리하며 제주에 만들 공간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잊지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 표현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나는 '잊지않겠다' 는 수동적인 표현보다 '기억하겠다' 는 적극적인 표현을 생각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는 수동적인 표현보다 '행동하겠다' 는 실제적 움직임을 생각했다.

'기억하면 행동으로 나오는가?'

'기억'과 '행동'을 고민하다가 그 두 가지 사이 무엇인가 연결되는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기억한다고 곧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니 뭔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울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지(아는것)에서 지각(깨달음)이 될 때에 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말장난일까? 그래서 내 피부에 기억이 '앗 뜨거워'하며 실체적으로 닿아야 비로소 자발적 행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기억공간 어때?"

공간을 알아보기 위해 아름다운 가게를 퇴사하기 전 제주를 오가던 중 한번은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고민을 나눈 적이 있다. 제주 이주 흐름과 중국 관광객 폭증으로 치솟는 부동산, 조금 더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저울질 하는 현지 주인들.

아름다운 가게 퇴직금과 함께 동참해 주시는 시민들의 마음을 안고 시작하려는 공간이라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공간을 찾는 내내 적지 않은 임대료와 당시 1년도 지나지 않은 뜨거운 사회적 이슈(?)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기억공간'을 집주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이중고(?)를 감당해야 했다.

"기억공간에 '리본' 을 붙이면 어떨까?"

어느 날인가 지인과 공간과 제주 부동산 시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나누던 중 지인이 문득 던진 질문으로 기억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노란 '리본'이 '리본', 다시(re) 태어나다(born) 의 뜻으로서의 리본, 뭔가 중의적인 의미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 

세월호 참사 이후 운이 좋게도 살아남은 자들이 사회적 기억에 머물지 않고 개인적 의미로 다시(re) 태어나는(born) 사유 공간.

기억공간을 설명하는 이 글에 내가 생각했던 고민이 다 들어가 있다. 세월호참사로 촉발된 질문이 공간을 만들게 했고 그 공간은 나는 상관없었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기억을 불러내고 질문한다.

그 사회적 기억은 다른 이름의 '세월호 참사들'이다. 만들어진 간첩, 5.18, 4.3, 2.28, 4.19, 스텔라데이지호, 효순이미선이 등 수많은 사회적 기억이 시간이 흐르며 잊힌 만큼 잘 정리됐을 거라 방치했던 이면의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 그 기억과 대면하고 대화하고 그 당시의 나를 만나는 공간. 다시 태어나는 공간 re:born

"선흘2리 세계자연유산 마을 알아요?"
 
 2015년 4월 16일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 선흘에 기억공간 re:born 이 시작됐다. re:born 은 ‘다시태어나다’ 와 ‘노란리본’의 중의적 의미로 사회적 기억이 개인적의미로 다시(re) 태어나는(born) 사유공간이다.
ⓒ 사진: 정영찬
 선흘2리에서 공간을 빌려 도서관을 준비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공사를 맡기지 않고 친구와 쉬엄쉬엄 고치면서 문화공간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도서관 하나만 쓰기에는 공간도 넓고하니 기억공간을 같이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여차저차 몇 군데 장소 알아보고 얘기되던 곳이 안 되기도 하고 마땅한 곳이 없던 차 약속한 기억공간 시작 일(20150416)은 다가오고 있었다. 도서관과 기억공간의 만남은 그렇게 성사되어 공간이 시작됐다.

공간을 빌려준 주인 할머니는 마을 토박이셨고. 제주가기 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얘기가 제주 가면 혈연, 지연, 학연의 관계가 남달리 돈독하여 '괸당' 이란 문화가 있고 서울에서 내려온 '육지것' 은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던터라 어떻게 잘 정착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먼저 할머니부터 마을 주민들에게 기억공간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세월호 참사를 설명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도 설득할 수 없는데 누구를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름 2가지 원칙을 세웠다.

1. 마을에서 누구를 만나든 인사 잘하자.
2. 청년회에 가입해서 활동하자.

주인 할머니가 도서관으로 빌려준 공간은 소 여물통, 배변물이 흘러가는 배수구, 여물통에 물을 대는 수도꼭지 등이 남아 있었다. 그랬다. 이 공간은 소가 밥 먹고 생활하던 우사였던 것이다. 기억공간이 시작된 그 곳. 공간을 찾아 헤매다 우연찮게 인연이 된 공간으로 인식했던 그 곳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셨고 어머님 한 분이 통곡하시며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우리 아이들이 97년 소띠예요."

기억공간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 가야 할까?

공사를 진행하며 기억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작업하는 모습과 함께 도와주시는 분들 이야기, 선흘2리 마을 이야기, SNS 메시지를 통해 함께 돕고 싶다고 연락 온 이야기, 편지를 보내주신 이야기 등 기억공간은 내가 물리적 토대를 시작했을 뿐 이곳이 내 것이 당연히 아닐 뿐더러 함께 만들어 갈 시민들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고 그 확장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기억공간은 실제 운영할 주체가 필요한데 그 주체를 '기억지기' 라 불렀다. 기억을 지키는 사람 기억지기. 기억지기의 생각은 아름다운 가게 경험에 기인하는데 아름다운 가게는 '활동천사' 라 불리는 자원활동가가 실제 운영한다. 기억공간도 기억지기가 실제 운영한다.

제주에 있는 포털사이트 카페, 블로그를 찾아 '기억지기 모집 홍보안'을 마구마구 뿌렸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제주에 왔고 이런 일을 함께하자는 '기억지기 홍보안' 을 올리고 동참을 호소했다. 함께하는 것만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힘임을 알기에 함께하는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다. 그것이 기억지기가 만드는 기억공간 리본의 시작이었다.

2015년 4월 16일 선흘2리 기억공간 re: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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