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담긴 판결문' 엮어 책 펴낸 박주영 울산지법 부장판사

2019. 7. 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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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피해자를 성폭행한 것은 영혼의 살해와 다름없다.'

올해 4월 울산지법에서 선고된 의붓딸 성폭행 사건 판결문에서 판사는 상당한 분량의 '양형 이유'를 통해 아버지 범행이 얼마나 참담하고 개탄스러운지 설명했다.

박 판사가 형사 판결문 말미에 적었던 양형 이유를 엮은 책 '어떤 양형 이유'가 최근 발간됐다.

책에는 양형 이유가 인용된 판결문에 해당하는 사건들, 그 사건들을 처리했던 판사의 번민과 고뇌가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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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발간..주요 사건 판결문 소재로 판사 번민과 통찰 담아
평소 판결문에 피고인에게 전할 말이나 사회 메시지 담아
책 '어떤 양형 이유' 발간한 박주영 울산지법 부장판사. [울산지법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어린 피해자를 성폭행한 것은 영혼의 살해와 다름없다.'

올해 4월 울산지법에서 선고된 의붓딸 성폭행 사건 판결문에서 판사는 상당한 분량의 '양형 이유'를 통해 아버지 범행이 얼마나 참담하고 개탄스러운지 설명했다.

사견이나 감정을 숨긴 채 전형적이고 기계적인 문체에 알 수 없는 용어까지 첨가해 늘어놓기 마련인 보통의 판결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목이었다.

박주영(50·사법연수원 28기) 부장판사가 이처럼 '인간미 담긴 판결문'을 쓴다는 사실은 법원 안팎의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의 경력이 더해질수록 읽어볼 만한 판결문도 늘었고, 출판사는 그런 소재를 놓치지 않았다.

박 판사가 형사 판결문 말미에 적었던 양형 이유를 엮은 책 '어떤 양형 이유'가 최근 발간됐다.

양형 이유에서 판사가 이런 형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그나마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판사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점을 간략히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 판사는 피고인에게 특별히 전할 말이나 사회에 메시지를 남기고 싶을 때, 양형 이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가령 한 가정폭력 사건 판결문의 양형 이유에 그는 이렇게 썼다.

가정의 문제일지언정 공권력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불개입 풍조는 극복돼야 한다. (중략)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는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책에는 양형 이유가 인용된 판결문에 해당하는 사건들, 그 사건들을 처리했던 판사의 번민과 고뇌가 함께 담겨 있다.

가정폭력, 성범죄, 산재 사고 등 극영화보다 더 비극적인 다양한 사고를 접하면 참담하고 숙연한 감정을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속에서 인류애와 인간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념, 전혀 다른 다양한 사건들을 관통하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내는 통찰 등은 여느 인문 서적 못지않다.

엄청난 양의 글(판결문)을 생산하는 글쟁이답게 철학자나 고전뿐 아니라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부터 라라랜드 등 근작의 영화까지 끌어와 글에 녹여낸 솜씨 또한 수준급이다.

'어떤 양형 이유' 표지.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책이 소재가 형사사건 판결문인 만큼 그 분위기가 밝을 수는 없다.

법대에 앉은 무력한 판사가 느끼는 자괴감도 곳곳에서 읽힌다.

산재 사고로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건을 소개한 부분에서 박 판사는 이렇게 썼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함부로 위로해선 안 된다. (중략) 과로사나 산재 사망사고 재판을 하다 법정에 오도카니 웅크린 유족들을 보면, 문득 하늘이 무너져 이들을 덮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도 놀라 덩달아 올려다본다. 내 하늘은 온전하다. (중략) 내일도, 모레도 여기저기서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질 것이다. 뻥 뚫린 하늘마다 비치는 햇살이 정녕 고울까? 내 하늘은 그대로여서 평안할까?'

수많은 비극을 피하지 못하고 맞서야 하는 그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박 판사는 29일 "국민의 법 감정과 법 규정 사이의 괴리 문제는 판사라면 피할 수 없다"면서 "고민하고 연구해서 법 해석 범위를 넓히고 그 범위 안으로 소수자도 들어온다면 다행인데, 그러지 못하면 실정법을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깊이 있게 사건을 들여다봐야 하는 경우에도 건수가 너무 많다 보니 시간 부족으로 기계적으로 사건을 처리할 때는 자괴감이 든다"면서 "판결 기사에 달린 댓글은 설령 욕설이라도 모두 읽고, 그 비판에 담긴 함의를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남달리 양형 이유를 쓰는 이유 역시 궁금했다.

'혼자 튄다'며 불편해하는 시선 역시 있을 터였다.

박 판사는 "판결문에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두고 튀거나 부적절하다고 보는 견해도 없지 않지만, 재판부의 고민이 담겼다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 역시 많다"면서 "판결문을 읽는 독자는 상급심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나 기사를 통해 사건을 접하는 국민도 독자이므로 판결에 이르는 과정과 사회의 문제를 언급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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