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 교수의 강제징용 판결 비판 "피해자 인간탁구공 만들어"

박태인 2019. 7. 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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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 5명 '강제징용 판결' 논문 분석
교수들 "우리도 용기내 판결 연구한 것"
조국 전 민정수석이 26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민정수석 사의를 표하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전 민정수석이 다시 페이스북 활동에 돌입했다. 조 전 수석은 28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을 정독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당과 언론은 일본 정부에 동의하는지 한국 정부와 대법원 입장에 동의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썼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분량이 많다면 2012년 대법원 소부 판결 요지만 읽어봐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정독하고 연구한 조 전 수석의 서울대 동료 교수들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중앙일보는 2012년 피해자(원고)가 승소한 대법원의 1차 강제징용 판결(주심 김능환 전 대법관) 이후 5명의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 판결의 종합적 연구'를 분석해봤다.

해당 저서에는 민법 전문가인 남효순·이동진 교수와 국제사법 전문가인 석광현 교수, 국제법 전문가인 이근관 교수, 상법 전문가인 천경훈 교수가 참여해 강제징용 판결의 여러 요소를 평가하고 비판했다.

당시 연구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민법 등을 전공한 서울대 교수 2명에게도 추가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조 전 수석과의 과거 인연을 언급하며 "논문 내용이 아니라면 실명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대법원은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3명 사망)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13년8개월 만에 승소한 이춘식(94)씨는 선고 직후 ’너무 기쁘지만 세 사람이 먼저 가 슬프다. 동료들 없이 혼자 나와서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고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김상선 기자


서울대 교수들 "강제징용 판결 비판, 용기 내 한 것"
강제징용 판결을 연구했거나 의견을 밝힌 7명의 서울대 교수들은 '한국이냐 일본이냐'라는 이분법적 주장을 펼치는 조 전 수석과 다른 입장을 취했다.

판결의 논리와 구성,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명과 암을 동시에 드러냈다. "불행한 시대를 살아온 원고에게 법원이 뒤늦게나마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준 기념비적 판결(석광현)"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법적 책임을 물으며 피해자들이 '인간 탁구공'과 유사한 처지에 놓일 우려가 있다(이근관)"는 비판도 나왔다.

공동연구에 참여했던 A교수는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서울대 교수들이 용기를 내 강제징용 판결을 평가했다"며 "판결이 정의롭고 타당해 보일지라도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들을 던져보려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공동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서울대 로스쿨 B교수는 "연구 논문만 수십권을 쓸 수 있는 판결이다. 조 전 수석 말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눌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평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강제징용 일본 판결 거부엔 높은 평가
연구 논문에서 석광현 교수는 강제징용 피해자(원고)가 패소했던 일본 법원의 판결을 분석하며 일본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결정을 높게 평가했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 판결 이유는 한국의 헌법적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하고 사회질서에 위반한다"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8년 전원합의체에서도 대법원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석 교수는 "우리 사법부마저도 원고의 권리를 외면하였다면 강제징용이란 고통을 겪은 피해자에게 구제의 손길을 내미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기념비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판도라의 상자 열었다, 피해자 韓日사이 인간 탁구공 될 수도"
석광현 교수와 달리 이근관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마루야마 고헤이 주한일본공사가 2018년 11월 15일 한국내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교수는 "대법원 판결로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권리 구제라는 목표를 벗어나 또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서로 책임을 미루며 피해자들이 '인간 탁구공(human pinball)'과 유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하며 "행정부가 오랜 기간 일관되고 명확한 어조로 주장해 온 견해를 뒤집는 이례적 사태가 발생했다"고 썼다.

이 교수는 "필자 역시도 강제징용 피해자의 고통과 안타까움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며 "다만 이번 판결로 과거사 문제의 자폐적 경향을 보이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실효성에는 상당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리적 한계, "한일 정부가 전면에 나서 해결할 문제"
천경훈 교수와 남효순 교수는 대법원 판결의 결론엔 동의할지라도 일부 법리 구성에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상법 전문가인 천 교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구일본제철·구미쓰비시가 해산된 이후 설립된 신일본제철·신미쓰비시를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본 것은 "대법원이 국내 기업에 적용하는 판례와 다르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천 교수는 논문에서 이런 법리라면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탄생한 수많은 신설회사가 구회사의 채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는 잘못된 추론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 교수는 소멸시효 남용이란 대법원의 법리를 일부 비판했고 "일본 판결을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일본도 한국 대법원 판결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기에 양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조국, 학자의 길 포기한 것 같다"
조 전 수석과 동료였던 서울대 교수들은 조 전 수석에 대한 실명 비판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그의 행보에 대해선 대체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서울대 B교수는 "강제징용 판결이 법조계와 최근 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지만 최근 분위기로는 친일파로 몰릴까 봐 학술 대회조차 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전했다.

서울대 C교수는 "조 전 수석과 함께 일했고 그와 생각이 항상 같지 않더라도 대화가 통하던 사람이었다"며 "조 전 수석이 이젠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정치인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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