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특파원리포트] 영화 '기생충'을 보지 못하는 나라 중국..왜?

안양봉 2019. 7. 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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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하루 전 돌연 취소 ..."기술적 이유"

올해 칸 영화제 장편 부문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을 보지 못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 곳이나 될까? 그중에 한 곳이 중국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 FIRST 청년영화제 측은 28일 폐막 작품으로 상영 예정이던 <기생충> 상영을 전날인 27일 취소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취소 사유는 '기술적인 이유'라고 들었다.

'기술적 이유'는 중국에서 영화제 측이 진짜 이유를 밝히지 못할 때 보통 쓰는 표현이다. 영화 <기생충>은 중국 서북부 칭하이성의 한 변방 도시에서 개최하는 주목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영화제에서조차 상영되지 못했으니, 아마도 중국 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영화 <기생충>처럼 중국에서 '기술적 이유'로 영화를 상영하지 못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올해 들어서만 보더라도 지난달 제22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개막 작품이었던 중국 전쟁영화 <800>의 상영이 취소됐을 때도 사유는 '기술적 이유'였다. 영화 <800>은 1930년대 항일 전쟁 때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 군인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1초>도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었으나 역시 '기술적 문제'로 막판에 취소됐다. 영화 <1초>는 1966~1976년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혼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기술적 이유?'...진짜 이유는 뭘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남발되는 '기술적 이유'. 영화 <기생충>이 상영되지 못한 진짜 이유는 뭘까? 중국 베이징 영화계 관계자는 <기생충>이 중국 국가영화국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기생충>의 주제인 빈부격차 문제에 중국 당국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했지만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를 안고 있다. 대도시와 농촌, 중국 동쪽과 서쪽의 소득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31개 성시 자치구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했을 때 베이징과 상하이 1인당 GDP는 세계 10위 안에 들 만한 수준이지만, 간쑤(甘肅) 성과 윈난(雲南) 성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과테말라와 비슷한 규모라고 보도했다. 구이저우(貴州) 성 주민이 상하이 주민 1명 소득만큼 벌어들이려면 6명이 필요하다. 영화 <기생충>이 중국 정부가 감추고 싶은 이런 경제성장의 진실을 건드릴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라는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사드 사태 이전 한국 영화는 매년 최소 3~4편이 중국 개봉관에서 상영됐다. 하지만 2016년 7월 사드 사태 이후 상황이 확 달라졌다. 그 이후 아직 중국 개봉관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심지어 한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신과 함께>는 중국 영화사가 판권까지 사들였지만, 아직도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국가영화국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영화팬 분통 .."중국은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영화 <기생충> 상영 취소 소식을 접한 중국 영화팬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관련 소식을 보도한 신경보 등 중국 매체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보면 "또, 또 기술적 이유냐" 반응과 함께 "기술도 안되면서 영화제를 하느냐"는 비아냥이 이어졌다. 20년 전이 더 개방적이었고. 30년 전에는 모든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다는 글도 보인다.

"너무 어이가 없다"는 댓글에는 영화팬들의 '좋아요.' 클릭이 이어졌고, "기술적 원인? 우리는 다 알고 있다"며 중국의 지나친 검열과 통제를 비판하는 댓글도 많았다. 또 "언제쯤 중국이 외국처럼 자유로워질까?" 아시아 문화는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며 중국의 폐쇄적 문화정책이 결국 중국 문화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마저 <기생충> 상영 취소에 중국 영화팬들이 속상해하고 있다면서 중국 관료들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가 '기술적 이유'라고 비꼬았다. <기생충>은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는 지난달 20일 이미 개봉했다. <기생충>을 다른 경로로 접한 중국 영화팬들은 중국 당국의 통제를 비웃듯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영화 평점 사이트 '더우반'에 올라 있는 <기생충> 평점은 10점 만점에 9.2점이다.

중국의 현재 양화 흥행수익 시장 규모는 미국에 이어 2위다. 내년에는 2천억 위안(34조 3,400억 원)의 점유율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탄 마카오대 영화학과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엄격한 검열이 줄지 않는다면 성장하는 중국 영화산업에 고통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쟁을 통한 성장 대신 검열과 통제로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문다면 결국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미국에만 더 좋은 일이 될 거라는 것이다.

안양봉 기자 (beeb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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