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대기업과 싸우는 중기부 장관

장정훈 입력 2019. 7. 31. 00:27 수정 2019. 7. 3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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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훈 산업2팀 차장
일본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한 지 한 달 남짓 동안 반도체 업계는 ‘소재·장비 독립’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여 왔다. 다행히 일본이 규제한 3개 소재만큼은 독립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을 곧 전할 수 있을 것으로 반도체 업계는 자신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수많은 중소업체 직원들이 한 몸이 돼 연구에 매달린 결과다.

이 와중에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텐 나인’ 불화수소 카드로 대기업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뜬금없다. 본지는 1주일 전 금산의 한 중소기업이 8년 전 불화수소의 순도를 99.99999999%(텐 나인)까지 높일 수 있는 특허를 냈지만 상용화를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마침 취임 100일을 맞은 박 장관은 이 보도를 들고나와 “이 업체는 판로가 확실하지 않아서, 대기업이 사주지 않아서, 그냥 (사업을) 접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이 좋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대기업이 사용하지 않아 사장했다는 논리다.

노트북을 열며 7/31
박 장관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사안의 절반만을 봤을 뿐이다. 박 장관이 놓친 나머지 절반은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이다. 당장 이 회사는 특허를 상용화하기까지 필요한 한 대에 10억원이 넘는 금속분석 장비, 30억~40억원의 시제품 생산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부는 이런 부담을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며 5~6곳의 나노기술원을 운영 중이다. 나노 소자나 화합물 반도체 연구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일종의 테스트 베드(시험 공간)다. 하지만 텐 나인 불화수소 같은 첨단 기술을 이런 테스트 베드에서는 정작 테스트할 수 없다.

정부가 운영 중인 한국 나노기술원 등의 반도체 공정은 200㎜ 웨이퍼에서 40㎚(나노미터)급 반도체를 테스트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현재 300㎜ 웨이퍼에서 10㎚ 안팎의 반도체를 만든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며 설립한 테스트베드가 10~15년 전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금산의 중소기업처럼 아무리 최신 기술의 특허를 내도 이런 낙후된 시설에서는 빛을 볼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중소기업들은 아예 짐을 싸 들고 첨단 장비가 갖춰진 벨기에나 미국의 테스트 베드를 전전하고 있다.

중기부는 이런 중소기업의 현실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중소기업들도 삼성전자든 SK하이닉스든 못 써서 안달인 소재나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대기업과 싸움판을 벌이기보다 소재 독립에 나설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박 장관의 말보다 발이 앞서야 하는 건 아닐까.

장정훈 산업2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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