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대기업과 싸우는 중기부 장관
이 와중에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텐 나인’ 불화수소 카드로 대기업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뜬금없다. 본지는 1주일 전 금산의 한 중소기업이 8년 전 불화수소의 순도를 99.99999999%(텐 나인)까지 높일 수 있는 특허를 냈지만 상용화를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마침 취임 100일을 맞은 박 장관은 이 보도를 들고나와 “이 업체는 판로가 확실하지 않아서, 대기업이 사주지 않아서, 그냥 (사업을) 접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이 좋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대기업이 사용하지 않아 사장했다는 논리다.
정부가 운영 중인 한국 나노기술원 등의 반도체 공정은 200㎜ 웨이퍼에서 40㎚(나노미터)급 반도체를 테스트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현재 300㎜ 웨이퍼에서 10㎚ 안팎의 반도체를 만든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며 설립한 테스트베드가 10~15년 전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금산의 중소기업처럼 아무리 최신 기술의 특허를 내도 이런 낙후된 시설에서는 빛을 볼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중소기업들은 아예 짐을 싸 들고 첨단 장비가 갖춰진 벨기에나 미국의 테스트 베드를 전전하고 있다.
중기부는 이런 중소기업의 현실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중소기업들도 삼성전자든 SK하이닉스든 못 써서 안달인 소재나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대기업과 싸움판을 벌이기보다 소재 독립에 나설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박 장관의 말보다 발이 앞서야 하는 건 아닐까.
장정훈 산업2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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