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에서 본 한반도>문 정부 '외교 착시' 위험하다

기자 입력 2019. 7. 31. 14:40 수정 2019. 7. 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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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은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악수만 한 채 회담은 하지 않았다. 뉴시스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워싱턴엔 아베 친구가 더 많아

WTO 한국 이해해도 편 안들 것

국내 여론 ‘거품’ 냉철하게 봐야

후반기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불안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폐기 직전에 와 있고, ‘북한 외골수 외교’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준 격인 일본 덕분에 대일 투쟁을 독려하면서 지지율은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착시현상을 가져와 독이 될 수 있다. 외교·안보 이슈는 대체로 대통령과 여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미국·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국내 이슈에 비해 국민의 체감이 간접적인 데다, 좀 못마땅하더라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응원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대치 국면이 온 데는 그동안 상황을 방치한 문 정부의 책임도 크다. 그런데도 지지율은 치솟아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도 공개됐다.

물론 이는 현 정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8월에 실시한 ‘이명박(MB) 정부 반환점 여론조사’를 보면 가장 잘한 분야는 응답자의 23.8%가 외교·안보라고 대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 이후 지지율이 60%대로 치솟는 등, 과거에도 국민은 대체로 대통령의 외교·안보 행보에 지지를 보냈다. 문제는 호의적 여론이 가져온 착시현상 때문에 마이웨이를 고수하다가는 그 후유증을 차기 정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과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데 있다. 지금 같은 항목으로 다시 여론조사를 하면 그때는 잘못 생각했었다고 대답을 바꿀 응답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착시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국민 지지를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잘못된 가정과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정치적 논리가 뒤엉켜 어그러진 현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몇 가지 그릇된 가정을 살펴보자.

① 미국은 중재에 나서고 한국을 지지한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하자 문 정부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비롯해 고위급 인사들을 워싱턴에 급파했다. 일본의 부당성을 알리고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한·일 간 중재를 할 것이라는 가정과, 더 나아가 한국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문 정부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국민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는 급박감에서 나온 정치적 제스처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국의 모습을 보는 미국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워싱턴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친구가 많을까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가 많을까 냉정히 생각해 보자.

② 국제여론은 한국에 더 우호적이다?

정부 발표나 일부 언론을 보면 한·일 갈등에 대한 국제 여론이 일본에는 매우 비판적이고 한국에 우호적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 회원국들이 한국 편을 들어줄 것처럼 기대했지만, 한국 대표가 열변을 토해도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국내법(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국제조약(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괴리를 메우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찾기보다는 국제사회에서 목청만 높인 셈이 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이 국내에서 대일투쟁을 독려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선 자칫 한국의 위상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일본이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 호감도 조사를 봐도 한국인과 중국인을 제외하곤 대부분 일본에 우호적이다.

③ 북한은 핵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

문 정부는 그동안 국내외를 향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 포기와 평화 공존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이 운전자, 미·북 중재자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북한 행보를 보면 모두 잘못된 가정에 기인한 막연한 기대감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조성된 평화 무드로 지난해 문 정부 지지율이 치솟았다. 이도 잠시뿐이고 이젠 북한으로부터 대놓고 괄시를 당하고 협박을 받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도 국민은 정부의 외교·안보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 외교전에는 상대가 있는 만큼 우리 팀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 애국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1세기의 외교전은 총력전이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정부가 나서 친일세력, 매국론을 펴면서 국민 사이에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어이없는 짓이다. 힘을 모아도 상대가 버거운 판에, 견해가 다르다고 내부 총질할 셈인가. 경제 실정과 외교 참사를 덮을 셈으로 반일을 부추기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편 가르기를 한다면 후일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대함을 정권에 대한 지지로 착각하면 정권도 나라도 불행해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겸허한 자세로 잘못된 가정과 막연한 기대감을 바로잡아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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