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미국과 일본의 안보 이익선이 북한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민석 입력 2019. 8. 2. 00:03 수정 2019. 8. 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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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 보유로 전략가치 상승
아베, 한국 우회해 김정은과 직거래
트럼프도 북한으로 중국 견제 속셈
제국의 추억 러시아는 한국 침범해


4강에 소외되는 한국
1888년 12월 구 일본 제국 육군경을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오스트리아 빈을 갔다. 야마가타는 당시 빈대학 정치경제학 교수였던 로렌츠 폰 슈타인를 만났다. 슈타인 교수는 앞서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의 마음 사로잡았던 사람이다. 야마가타는 지방제도 조사를 위해 유럽을 갔지만, 전략가인 슈타인 교수를 만나야만 했다. 극동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에 대응책이 필요해서다. 그때 청나라는 청·일전쟁(1894년)으로 쇠퇴하고, 한반도의 조선은 유명무실해졌다. 러시아가 극동까지 팽창해 한반도로 확장하면 일본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다.

야마가타는 “시베리아 철도가 만들어지면 일본은 어떻게 됩니까?”라며 슈타인 교수에게 질문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쓰시마해협과 대한해협 등에서 러시아 해군을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1891년쯤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되는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이다. 슈타인 교수는 “러시아가 한반도로 내려와서 원산 영흥만에 항구를 만들면 그곳이 극동함대 기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일본에 가까운 영흥만이 러시아 기지가 되면 일본의 진퇴가 걸린 일”이라고 지적했다.(가토 요코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밀리터리
슈타인은 야마가타에게 주권선과 이익선을 설명했다. 주권선은 주권이 미치는 국토이고, 이익선은 국토의 존망과 관련된 외국이라는 것이다. 일본엔 조선과 중국이 이익선이다. 그는 귀국한 뒤 총리대신이 됐다. 시간이 지나 조선을 갖기 위한 러시아의 구상이 본격화 됐다. 베조브라조프 러시아 극동총독은 황제인 니콜라이 2세를 설득했다. 1903년 10월 베조브라조프는 니콜라이 2세에게 “한반도를 차지하면 라오둥반도의 뤼순·다렌항을 지킬 수 있다”며 일본은 별것이 아니라고 했다. 극동에 러시아 해군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생각은 일본에 치명적이다.

결국 이듬해 러·일전쟁이 터졌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러시아가 패전했다. 그 결과 일본은 한반도 주도권과 라오둥반도 및 만주를 차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1910년 한일합방이 됐다. 조선을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한 전쟁이 청·일전쟁이라면 러·일전쟁은 조선을 점령한 계기가 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 두 나라가 싸운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후원했고, 일본에 대해선 영국과 미국이 도왔다. 가토 교수에 따르면 돈이 없었던 일본은 영·미로부터 전쟁비용을 지원받기 위해 만주를 개방해 경제적 이득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속셈은 안보 이익선인 한반도 점령이었다.

일본의 이익선 개념은 냉전 시기에도 적용됐다. 한국은 대륙의 최전선에서 공산권 위협의 방어막이 됐고, 일본은 미국과 함께 한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한·미·일 공동방어체제가 구축된 배경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의 이익선이 변하고 있다. 러시아 대신 중국이 등장했다. 마치 러시아 극동지역에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했던 것처럼 중국이 동·남중국해의 해상수송로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의 생명줄인 해상수송로가 중국에 의해 차단될 위기에 놓였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과 인도·태평양전략을 세워 호주·인도 등과 띠를 이어 대응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통상·정치·군사적 접근을 막는 지역 패권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과 일치한다.(제임스 프리스텁 『The Enduring Relevance of the U.S.-Japan Alliance』) 이에 따라 2017년 2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관계를 “확고부동한 동맹” “아태 지역의 평화·번영·자유를 위한 코너 스톤(Corner Stone·주춧돌)”으로 천명했다. 같은 해 12월엔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해 최대 압박하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북한이 미·일의 견제 대상이다.

일본에 대한 시기별 위협에 따른 안보구도 변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 비핵화 협상을 위한 대북 유화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기여를 의식해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를 유보했다. 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에 트럼프 대통령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북한은 6차 핵실험(2017년 9월)으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북한은 이어 핵탄두 생산에 몰두했다.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북한 노동미사일 200여 기는 한국과 일본이 타깃이다.

2년째 맞는 북한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실패로 가고 있다. 북한은 핵탄두 30∼60발을 보유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 3종 미사일 세트도 완성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용 탄도미사일(SLBM)에 최근 수차례 쏜 신종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여기엔 모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고, 방어할 수단도 없다. 중국이 북한의 경제 뒷문을 열어주고 있는 상황에 이미 핵무장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까닭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도 최종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지만 실제론 북핵을 인정하는 ‘동결’로 하향 조정했다.

일본의 고민은 여기에 있어 보인다. 현실적 위협인 북핵을 두고 일본이 북한과 척을 지거나 한국 방위를 지원하면 되레 북핵에 얻어맞을 수도 있다는 공포다.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다. 차라리 한국을 멀리하는 게 북핵 공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다 한국 정부는 중국을 견제할 위한 인도·태평양전략엔 소극적이다. 이에 따라 한·일 사이엔 과거처럼 안보-경제 교환모델이 형성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감정적 경제전쟁으로 진화했다. 이제 아베 총리의 선택지는 2가지다. 먼저 북핵의 타깃이 되지 않도록 북한을 끌어안는 것이다. 진창수 전 세종연구소장은 “아베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게 그 배경”이라고 했다. 다음은 한국을 버리는 방안이다. 그 트리거가 일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 제외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는 양국의 안보적 연결고리가 완전히 해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이 말리고 있다.

아베의 불똥은 미국으로 튄다. 한·일 관계는 한·미 연합체제에 영향을 준다. 일본이 한국 지원에 소극적이거나 거부하면 주일 미군기지가 작동하지 않아서다.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과 미군 병력 및 물자 대부분이 주일 미군기지를 거쳐 한국에 온다. 그럼 트럼프의 생각은 무얼까. 그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 부상을 막는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로선 핵보유국인 북한과 협력관계를 맺어 중국 견제에 활용하면 최선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ICBM이 미 본토로 날아올 리도 없다.

트럼프의 한국 관계는 현상 유지 또는 먼 얘기일 수 있지만 동맹 해체를 감수하는 것이다. 일본 지원 없는 한·미 동맹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트럼프는 남북 모두 인정하는 ‘투 코리아’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 옛정이 남아있는 미 정부와 의회의 걱정은 깊다. 미 하원이 주한미군 감축금지 법안(지난 6월)과 한·미 동맹 재확인 결의안(2018.12)을 채택한 이유다.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적극 참여해 한·일 사이에 안보접점을 다시 만드는 방법이다. 우회적으로 한·미·일 관계를 복원하는 전략이다. 또한 미 국방대의 의견대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일이 공유 운영하면 북핵을 상쇄시킬 수 있다. 우리 스스로도 강력한 군사력으로 자강력을 갖추는 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과거사보다 국민과 국가의 생존이 먼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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