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도쿄에서 본 우리 외교의 실력

서승욱 2019. 8. 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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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도쿄총국장
“일본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정부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다. 위안부 합의를 논의할 당시에도 한국 정부와 의원님들은 공명당에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 내가 ‘합의하면 이것을 계속 지킬 결의가 있느냐’고 한국에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돼버렸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공은 한국 청와대에 있다.”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은 이웃 나라와의 화평을 강조하는 ‘평화 정당’이다. 그런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가 지난달 31일 당사를 찾은 한국 의원단에 독한 말을 쏟아냈다. ‘늘 한국을 배려했던 공명당마저…’, 자민당에 면담을 거절당한 것보다 공명당과의 싸늘한 면담이 한국 의원단엔 더 충격이었을 것 같다. 이날 공명당은 한국 방문단과의 대화 내용을 깨알같이 브리핑했다. “야마구치 대표의 발언이 너무 무거워 70분 동안 웃음 한번 나오지 않았다. 사진 촬영 때야 조금 표정이 풀렸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공명당의 태도는 다분히 일본 내 반한 감정을 의식한 것이다. 이제 공명당까지 등을 돌릴 정도로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 환경은 최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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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대일 외교 실력은 계속 뒷걸음치는 느낌이다. 남관표 주일대사의 부임 이후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일본에 근무하는 총영사가 부하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는 쇼크 그 자체다. 일본과의 외교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적진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일이다. ‘적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일본 언론들은 먹잇감을 찾은 듯 이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법무성과 경찰 등 정보기관에선 ‘무슨 일이 있었느냐. 총영사관내에서 벌어진 일이냐. 평소엔 어떤 사람이냐’ 는 질문들이 좁쌀처럼 쏟아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적진의 선두에 서 있는데, 도쿄의 주일경제공사 자리는 4개월 넘게 비어있다. 지난 5월 말 일본 정부가 넙치(광어) 등 한국산 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 조치를 기습 발표했을 때의 대응은 가관이었다. 이번 수출 규제 조치의 전주곡이었지만, 대일 외교 핵심 라인에선 “일본도 대항(보복)조치라고 안 하는 데 왜 우리가 보복으로 규정해야 하느냐”는 한가한 반응이 나왔다. 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불을 끄는 게 중요하니 정부 비판은 삼가해 달라. 왜 내부에 총질이냐”고 화를 낸다.

첨예한 외교 전쟁에서의 ‘무능’과 ‘방심’만큼 큰 죄가 있을까. 현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적폐 청산’보다 더 엄정한 잣대를 이런 사람들에게 들이대야 한다.

서승욱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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