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화이트국가 韓 배제 강행..경제관계 심각하게 훼손
"일본이 칼자루 쥔 상황, 냉철히 대응 마련해야"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권구용 기자 = 일본 정부가 2일 각의(閣議)를 열고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괸리령 개정을 강행했다. 개정안은 오는 7일 공포를 거쳐 이달 28일부터 시행된다.
전략물자 수입 절차에서 우대받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15년 만에 제외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이달 28일부터 전자·철강·화학·자동차 등의 주요 산업 분야 일본산 1100여개 품목을 수입하려면 매번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일본은 무기 전용가능성이 있는 전략물자를 무기 제조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이른바 캐치올(catch all) 제도에 따라 민수품이라고 해도 무기로 쓰일 수 있는 품목은 개별 물품마다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화이트국가에 대해서는 포괄허가에 따라 제출 서류를 간소화해주고 처리 기간도 통상 1주 정도에 불과하지만, 비(非)화이트국가가 해당 전략물자를 수입하려면 서약서와 사업내용 등을 상세하게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1~5월 금액 기준 한국의 대일본 수입 상위권 품목은 반도체(18억2300만 달러), 반도체제조용장비(15억1300만 달러), 철강판(10억600만 달러), 플라스틱제품(8억9000만 달러), 기초유분(7억7700만 달러), 합금철선철 및 고철(7억2900만 달러), 정밀화학원료(6억7100만 달러) 등이다.
특히 수입에 영향을 받을 주요 품목으로는 반도체웨이퍼, 공작기계, 탄소섬유 등이 거론된다.
지난해 '반도체웨이퍼 또는 소자의 측정용' 품목의 대일본 수입 의존도는 67.5%에 달했다. 또 '평판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의 일본산 수입 비중은 무려 82.8%였고, '반도체 디바이스, 전자직접회로 조립용 기계'의 일본산 비중도 52.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종은 일본의 제조기계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라인 조성이 어려울 정도"라며 "이번 2차 수출 규제 결정으로 향후 사업계획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소저장용기, 자동차 프레임, 항공기, 선박, 스포츠레저 용품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탄소섬유의 경우 생산능력과 품질이 일본보다 떨어져 수입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수요자가 품질 좋은 일본의 탄소섬유를 사용할 것을 기본 요건으로 정해 주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일본의 탄소섬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계약조건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제품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레이, 도호테낙스, 미쓰비시화학 등 3개 기업이 세계 탄소섬유 시장 점유율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은 이 분야 최강국이다. 닛케이의 '2016년 세계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도레이가 42%로 1위, 도호테낙스가 14.4%, 미쓰비시레이온가 13.6%의 점유율을 보인다.
이 외에도 대일본 수입비중이 70% 이상으로 의존도가 품목은 2018년 기준 석유화학중간원료(98.8%), 자일렌(95.4%), 수치제어반(91.3%), 기타사진영화용재표(87.5%),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82.7%), 톨루엔(79.3%), 철 및 비합금강중후판(74.7%), 빌레트(74.6%), 광택제(74.3%), 도료(70.8%) 등이 있다.
한국 경제계는 양국 간 경제협력 관계 훼손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한편,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이날 논평을 통해 "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한미일 안보 공동체의 주축이며, 한해 1000만명 이상이 상호 방문하는 핵심 우방국"이라며 "이러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추가 수출 규제를 결정한 것에 대해 협력적 경제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앞서 지난달 4일부터 반도체 공정 필수 소재인 감광재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회로를 식각할 때 사용하는 '불화수소', 열 안정성을 강화한 필름으로 OLED제조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대한국 수출 절차 간소화 등 우대조치도 폐지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이들 품목의 일본 의존도는 올해 1~5월 수입액 기준 각각 91.9%, 43.9%, 93.7%에 달한다.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국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상황임을 일본 정부가 경고한 것으로 풀이하면서, 냉철한 자세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다는 게 수출을 제한하는 행위는 아니라 실질적으로 수출 제한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일본의 한국의 주요 산업에 필요한 핵심 소재 부품 등에 대해서 수출 물량을 자의적으로 조절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재량권을 확보한 것"이라고 이번 일본의 결정을 풀이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훼손된다면 모두에게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일본이 추가적인 조처를 할 명분을 제공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공공연히 벌어지는 상호비난전을 자제하고 물밑 접촉을 통해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yupd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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