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국 韓 빼지 말고 아세안 넣어라" ARF서 역공당한 고노

유지혜 입력 2019. 8. 2. 15:46 수정 2019. 8. 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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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서 한일 충돌하자
"화이트리스트 늘려야" 日비판 목소리 나와
중국 왕이 외교부장도 "이런 일 생겨 유감"
2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참석해 있다. [뉴스1]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뺄 것이 아니라, 아세안 국가들도 화이트 리스트에 넣는 게 맞지 않나.”
2일 오전 태국 방콕의 센타라 그랜드 컨벤션 센터 다자회의장. 아세안+3(한ㆍ중ㆍ일) 외교장관 회의가 진행되던 중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외교장관이 준비해 온 원고를 덮더니 갑자기 작심발언을 했다. 앞선 모두발언에서 일본의 화이트 국가 결정을 두고 한ㆍ일 장관이 설전을 벌인 데 대한 반응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모두발언에서 일본의 화이트 국가 배제 결정에 대해 “일방적이고 독자적인 조치에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고 하자,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한국은 예전에도 우리의 아세안 친구들과 동등하거나 더 유리한 지위를 누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반발했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한국에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라, 아세안처럼 애초에 화이트 리스트 혜택을 받지 못했던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대우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논리가 되버렸다.


싱가포르 "화이트 리스트에 우리가 없다고?"
뒤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지역 및 국제정세 관련 토의 세션에서 아세안 국가 장관들은 준비해온 원고대로 발언을 돌아가며 했는데, 발라크리슈난 장관이 갑자기 “솔직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다”며 고노 외상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는 “화이트 리스트는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는 것이 맞다. 고노 외상은 아세안 국가들을 거기에 하나도 포함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하는데, 한국을 뺄 게 아니라 아세안을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전까지는 아세안 10개국 중 어느 나라도 화이트 리스트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다. 또 “신뢰관계를 증진해서 상호 간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 지역의 공동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세안 관련 다자회의에서 강 장관이 일본을 지목해 특정 국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발라크리슈난 장관처럼 다른 장관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박하는 것도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왕이도 "선의로 문제 풀어야"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2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 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각국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부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 돈 쁘나뭇위나이 태국 외무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그런데 이번에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가세했다. 왕 부장은 “발라크리슈난 장관의 발언에 상당히 좋은 영감을 받았다. 아세안과 우리 세 나라는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데, 이런 문제가 생겨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또 “이런 문제들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선의로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칙을 강조한 것이지만, 일본이 화이트 국가 조치를 강행한 날 나온 것이라 의미심장했다.

고노 외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또 발언권을 얻어 “한ㆍ일 간에는 수산물 수입 규제 문제, 양국 간 (1965년) 기본 조약 관련 문제, 수출 통제 문제 등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두 별개의 이슈”라며 수출 규제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국이 기본조약을 다시 쓰려 한다”고 비난하면서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 장관이 발언 기회를 얻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설명하고 “지금의 상황은 바로 이런 판결에 따라 촉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강 장관은 세 차례, 고노 외상은 네 차례에 걸쳐 발언하며 공방을 벌였다. 당초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는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예정된 시각을 넘겨 종료됐다.

태국 역시 일본의 조치에 우려를 표하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직후 태국 외교부 아태윳 스리사뭇 사무부차관은 "우리는 그것이 미·중 간이든, 일·한 간이든 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최근의 무역 보복(trade retaliation)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일본 주장과 달리 태국 역시 일본의 화이트 국가 결정을 보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방콕=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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