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시끌한 '윤석열호' 첫 검찰인사.. 검찰간부들 줄사퇴

염유섭 2019. 8. 3.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우리 윤(석열) 총장님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정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또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가 돼야 합니다.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수사와 처벌에) 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간곡히 당부한 말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권력형 부패 방지를 위해선 막강한 당정청의 고위 실세라도 부정 비리를 저지를 경우 검찰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31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비롯해 윤 총장 취임 후 진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를 보면 ‘윤석열호 검찰’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물음표가 잇따른다. 역대 정권마다 반복됐듯이 무소불위의 검찰권이 ‘죽은 권력’에는 무자비하게, ‘살아있는 권력’에는 대충 휘둘러졌던 풍경이 윤석열 체제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풍겼기 때문이다. 실제 법조계 안팎에선 문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 할 정도로 총애하는 윤 총장을 필두로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통 검사들은 줄줄이 승진하거나 요직을 차지한 반면 ‘공안통’ 등 특수부 출신이 아니거나 문재인정부 입장에서 ‘괘씸하다’고 여길 만한 일을 한 검사들은 그 반대의 처지가 됐다는 평이 적지 않다. 2일에도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한웅재(〃28기) 대구지검 경주지청장이 물러나기로 하는 등 윤석열호 출범 전후로 사표를 낸 고위·중간 간부만 50명이 넘는다. 이 중 상당수는 ‘노골적인 코드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문 대통령의 측근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과 문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간부들이 인사에서 ‘물 먹은’ 것과 관련, 박근혜정부 당시 권력이 꺼려하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당한 적 있는 윤 총장의 전례와 대비돼 ‘아이러니한 인사’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눈치 없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 빼들었다 된서리 맞은 서울동부지검
 
우선 청와대의 노여움을 살 만한 수사를 거침없이 했던 서울동부지검은 수사 책임자들이 옷을 벗거나 좌천되는 등 그야말로 된서리를 맞았다. 동부지검은 문 대통령의 측근인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 불구속 기소하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동부지검장을 맡았던 한찬식(〃 21기) 검사장은 고검장 승진을 앞뒀으나 윤 총장 취임 전 검찰을 떠났다. 한 지검장과 함께 관련 사건을 지휘했던 권순철(〃 25기) 동부지검 차장검사도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자 검찰 내부 통신망에 “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라며 옷을 벗었다. 
 
두 사건의 수사 실무 책임자였던 주진우(〃31기) 형사6부장 검사도 1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이날 오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를 통해 “나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 여야를 안 가리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를 때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했다”면서 억울함을 내비쳤다. 검찰 안팎에서 수사 능력을 인정받았던 주 부장검사가 이번 인사에서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발령나자 사실상 좌천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안동지청은 검사 5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지청이다. 그동안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등 요직을 발령받는 게 관례였다. 
 
◆손혜원 수사한 서울남부지검도 찬바람···
 
김정숙 여사의 친구로 문 대통령과도 가까운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권익환(〃 22기) 서울남부지검장이 윤 총장의 취임을 앞두고 사표를 낸 데 이어, 김범기(〃 26기) 서울남부지검 2차장은 한직인 서울고검 형사부장으로 발령났다. 이번에 서울의 동·남·북·서부지검 차장검사 중 검사장으로 승진을 못한 것은 김 차장검사와 동부지검 권 차장검사 둘뿐이다.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김웅(〃29기) 단장도 이례적으로 법무연수원 교수로 가게 됐다. 김 단장은 평소 검찰 내에서도 무소불위 검찰권의 폐해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소신껏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주도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경우 검찰개혁은 제대로 못하면서 경찰 권력의 비대화만 가져오는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기를 드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미운털이 박힌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에 관해 증언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으며 국감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윤 검찰총장도 박근혜정부에 당시 집권층에 불편한 수사하다 좌천···정권 바뀐 후 승승장구
 
윤 총장도 과거 살아있는 권력에 반기를 들다 좌천당한 적이 있다. 윤 총장은 2012년 대선 때 벌어진 이명박정부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다. 당시 야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이듬해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 때문에 수사를 밀어붙인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과 실무책임자인 윤 총장을 눈엣가시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채 총장은 혼외자 스캔들이 터지며 옷을 벗었고, 윤 총장은 2014년 1월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당했다. 윤 총장은 대구고검에서 2년 임기를 채웠지만, 2016년 다시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났고 문재인정부 출범 때까지 수사부서로 복귀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 출범한 ‘최순실 사건 국정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참여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이듬해 5월 정권교체와 동시에 승승장구했다. 문 대통령은 첫 검찰인사에서 그를 사실상 검찰 서열 2위인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적으로 발탁하며 이명박·박근혜정권 당시 ‘적폐수사’ 지휘를 맡겼다. 이어 다시 한 번 검찰 관례를 깨고 파격적으로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한웅재 대구지검 경주지청장. 뉴시스
◆박 전 대통령 조사했던 한웅재 “지금 좋아 보이는 자리, 권력, 재물이 계속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한편 지난달 31일 인사에서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검사로 발령난 한웅재 경주지청장은 2일 내부 통신망에 사의 표명 사실을 알렸다. 한 지청장은 “검사라는 직업이 좋아서, 검사로서 자부심과 명예를 가슴 속에 품고, 틀리지 않게 업무를 처리하고 공명심이나 다른 욕심으로 사건을 과하게 처리하거나 부족하게 처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얼마나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며 “점점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가려내고 법을 집행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몇 년 동안 사건 수사, 재판을 하면서, 또 이런 저런 간접적으로, 사람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고 지금 좋아 보이는 자리, 권력, 재물이 계속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 지청장은 2016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 근무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관련 최순실씨 등이 검찰에 고발된 국정농단 사건을 배당 받아 수사했다. 당시 사건이 특수부가 아닌 일반 고소·고발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부에 배당되면서 ‘검찰이 수사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2017년 국정농단 수사를 이어갔고, 한 지청장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