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매운동 속 日 쓰레기 수입 논란.. 정부 '졸속 통관' 눈 감았다

안병수 2019. 8. 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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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일본 석탄재 쓰레기 수입 건수 올해 최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국내 시멘트사가 일본 측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대신 처리해주는 ‘석탄재 폐기물 수입’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각계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한국은 매년 100만t 이상의 일본산 석탄재 폐기물을 국내로 들여왔다. 이에 방사능 오염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정부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석탄재 폐기물 수입 시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며 관련 시행령 개정령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국내 시멘트사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방사선량 간이 측정결과를 믿고 ‘졸속 통관’을 허가해 왔고, 올 들어 일본산 석탄재 폐기물 수입 계약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당국이 ‘쓰레기 처리국’을 자처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질 조짐이다.
 
국내 업체들은 1t당 약 2~3만원의 처리 비용을 받고 석탄재 폐기물을 수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석탄재 폐기물은 시멘트를 제조할 때 부재료로 쓰인다. 이는 1999년 환경부가 시멘트의 부재료로 산업 폐기물 사용을 허가하는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가능해졌다. 4일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0~2019년 6월) 일본에서 수입한 석탄재 양은 도합 1182만t에 달했다. 2011년 연간 수입량이 100만t을 넘긴 이후 줄곧 120~130t 수준을 유지해왔다.
 
특히 올해 들어선 국내 시멘트사가 일본 발전소와 체결한 수입 계약 건수가 56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 통관 횟수가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5년간 현황을 비교하면 2015년 18건에서 2016년 42건으로 대폭 늘었다. 2017년은 52건, 2018년은 51건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수입 건수가 3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석탄재 폐기물의 대(對) 일본 수입 의존도가 심화된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미 계약이 체결돼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로 들여와야 하는 석탄재 양은 34만t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석탄재 폐기물을 둘러싸고 한·일간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고착화 된 건 정부의 거듭된 공염불이 빚어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일본 등 대형 원자력사고가 발생한 국가로부터 석탄재 등의 신고대상 폐기물을 수입할 때 방사성물질에 오염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필수적으로 제출하는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석탄재를 수입할 때는 국내·외 공인인증기관에서 측정한 방사능 검사성적서를 첨부해야만 수입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환경부와 국내 시멘트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환경부는 일본 기업측이 제출한 ‘비오염 증명서’와 국내 기업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방사성물질간이측정결과서’만 받고 수입폐기물 신고 확인서를 발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국내 방사능 측정 공인 인증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실시하는 검사는 수입 이후에야 이뤄진다.
 
국내 기업들이 일본산 폐기물 수입 시 제출하는 간이측정결과서는 2015년 국정감사에서 다수의 위·변조 사례가 확인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방사능 검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별다른 후속조치가 없었음에도 통관을 허가해 온 셈이다. 이에 국내 시멘트사 관계자는 “샘플을 잡아서 방사능 물질을 분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까지 (석탄재 폐기물이) 오는 데 2~3일 정도면 오는데 방사능 검사성적서를 만드는 데는 1주일 이상이 소요된다”면서 “검사성적서를 수입 전에 제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데 정부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해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환경부 관계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켜지지 않는 졸속 행정은 10년째 반복되고 있다. 일본산 석탄재 폐기물은 과거 세슘 등 방사능 물질이 검출돼 유해성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에 환경부와 시멘트 업계는 2009년 10월 국내 석탄재 우선적 재활용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고 수출용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최소량만 수입하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자율협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산 석탄재 폐기물 수입량은 2009년 대비 60%나 늘어난 실정이다. 이에 환경부는 “일본 석탄재 수입 저감을 위한 대체재 확보, 국내 석탄재 우선 사용 등을 시멘트 업계 등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수입되는 석탄재에 대해서는 방사능 등 환경오염물질에 대한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선 수입 금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7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온 ‘일본의 첨단재료 한국수출 통제에 대한 한국의 일본 폐기물(석탄재) 수입제한 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얻고 지난 3일 종료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환경 단체들도 일본으로부터의 폐기물 수입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하고 있다.
 
유승희 의원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시국이 엄중한 상황에서, 석탄재 쓰레기가 매년 대량으로 수입되는 것은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라면서 “석탄재의 방사능 위험도에 대해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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