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불매운동 뜨거운 한국인, 조용히 한국 친구 끊는 일본인

서승욱 2019. 8. 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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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반한 민심 물밑에서 확산
15년 인연 일본인도 만남 꺼려
앙금 커지기 전 정치가 움직여야

일본 민영TV의 와이드 뉴스쇼엔 연일 한국의 반일(反日) 운동이 소개되고 있다. 6일에도 “일제라면 사탕도 먹지 않겠다”는 한국 초등학생의 다짐에 출연한 패널들이 놀라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주말 광화문의 ‘NO(노) 아베’ 시위, ‘보이콧 재팬’의 뜨거운 열기는 시시각각 일본에 전달되고 있다. 한국 정치권에선 “방사능 도쿄를 관광금지구역으로 지정하라”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일본 언론들은 원래 비중 없는 정치인들의 극단적 주장까진 잘 보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도 조금씩 동요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 단절이 확대되고, 한국 관광객 감소로 지역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년째 살고 있지만, 지금처럼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화가 난 적은 없는 것 같다.” 일본 대학의 한국인 교수는 일상에서 접하는 일본인들의 반한 감정을 이렇게 말했다.

또 최근 세미나 참석을 위해 도쿄를 방문한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이제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양국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몇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낸 외교 분야 전문가들의 태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투 등 내가 느낀 일본의 공기가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뜨겁고 직접적인 한국 내 반일 기류에 비교하면 일본의 민심은 조용하게 움직인다. 도쿄의 한국 회사에 근무 중인 50대 초반의 A씨는 “15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거래처의 일본인 지인이 만남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연락이 와서 술자리를 함께했는데, 최근엔 3개월째 연락이 없다”며 “내가 먼저 연락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했다.

최근 또 다른 거래처의 일본인 직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과 식사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일주일 뒤 약속을 일방 취소했다고 A씨는 털어놓았다.

30대 후반 여성인 한국인 회사원 B씨. 도쿄 코리아타운에서 먹은 한국 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게 취미다. 과거엔 사진을 올릴 때마다 일본인 친구들의 반응이 대단했지만 최근엔 180도 달라졌다. A씨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한국과 관련된 긍정적인 글을 남기는 걸 꺼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후지TV와 산케이신문이 3~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 제외’ 조치를 지지한다는 답변이 67%였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9.4%에 불과했다. 아베 총리 지지층에선 무려 81%가 찬성했고, 아베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 층에서도 55.2%가 이번 조치에 찬성했다. 진보적 색채인 TBS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타당했다’는 답변이 64%, ‘타당하지 않다’는 18%였다.

“임진왜란 이후 한·일 관계가 언제 좋았던 적이 있느냐”며 쉽게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앞으로 월드컵·올림픽을 몇 번씩 공동개최한다 해도 회복하기 어려운 감정의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우리 국민이 뜨겁게 반발한다면 일본 국민은 차갑게 떠나고 있다. 양국 국민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도록 이제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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