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때 고노와 '폭탄주 연맹'..그런 젊은 의원 어디로 갔나

하준호 2019. 8. 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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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인싸]
DJ 정부 때 한·일 의원 교류 활발
대부분 초·재선 젊은 의원 중심
최근 방일단에는 3선 이상 중진만
양국 차세대 정치인 서로 몰라
젊은 초선도 한·일 현실 목도해야

「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일 오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8년 김대중(DJ) 정부 시절의 얘기입니다. 20년전만 해도 한·일 양국 국회의원들의 교류는 2000년대 초반까지 봇물 터지듯 했습니다. 당시 초·재선의 30·40대 젊은 국회의원들 사이는 꽤 돈독했다고 합니다. 여당(새천년민주당)의 김민석·장성민·추미애 의원,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 등의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김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공동선언으로 양국이 문호를 개방해 한류 붐이 일었고,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양국의 젊은 정치인 사이의 자발적 교류가 활발해 질 수 있었습니다.” 이성권 전 한나라당 의원의 얘기입니다. 6일 이 전 의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성권 전 한나라당 의원. [뉴스1]
이 전 의원은 일본에서 유학하던 2001~2003년 ‘고노 다로(河野太郎) 중의원’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지난 2일 아세안(ASEAN)+3국(한국·중국·일본) 외교장관 회의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일본 외무성으로 불러다 놓고 남 대사의 말을 중간에 잘라 자기 할 말만 하는 무례를 범했던 그 고노 외상말입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지한파였습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장(15·16대 의원)은 6일 중앙일보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노와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참의원 두 의원이 한국에 왔을 때 누군가의 소개로 그들을 만나게 됐어요. 나도 대일 외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만났고, 실제 그 관계는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어요. 그들에게 처음으로 한국식 ‘폭탄주’를 만들어 준 것도 나입니다.그렇다고 두 나라 여당의 젊은 의원들이 친목만 다진 건 아니에요. 실제 교류 활동으로 한국 김포공항과 일본 하네다공항 사이의 직항로를 만들어 내는 성과로도 이어졌죠.”

김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 [중앙포토]
현재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는 있지만, 김 전 원장은 지난해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에도 일본에서 고노 외상과 단둘이서 오찬을 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들의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모습)’를 짐작해 내는 데 그동안의 꾸준한 교류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2004년 6월 동아일보에는 이런 내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구미(유럽·미국)와 비교해 시장도 작고, 지하자원도 없는 (한·일)양국이 경제발전을 유지하려면 양국 경제를 일체화시켜 해외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경제권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 [뉴시스]
‘한ㆍ일 양국 경제의 일체화’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이 사람이 바로 고노 다로 외상이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과는 완전 딴판이죠. 그는 이 칼럼을 당시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성권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썼습니다.

의원 시절의 고노 외상은 칼럼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한국의 2004년 총선에서)친구 몇 사람이 낙선했습니다. 김민석·장성민·추미애씨 등입니다. 오세훈씨처럼 은퇴한 의원도 있습니다. 그분들과 혹시 만나게 되면 안부를 두루 전해주십시오.” 고노 외상은 다른 칼럼에서 김 전 의원이 말한 폭탄주 회동을 언급하며 ‘한·일 폭탄주 연맹’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원장, 이 전 의원의 얘기는 거의 20년 전 이야기죠. 지금은 어떨까요.

한일 무역갈등에 따른 수출규제 해결책을 마련을 위해 구성된 국회 방일단 서청원 단장(왼쪽 세번째)이 1박 2일 일정을 마친 지난 1일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이뤄진 후 국회 방일단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일본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러 갔죠. 단장이 서청원(무소속·8선)의원이었습니다. 나머지 방일단은 원혜영(민주당·5선)·원유철(자유한국당·5선)·강창일(민주당·4선)·김동철(바른미래당·4선)·김진표(민주당·4선)·조배숙(민주평화당·4선)·김광림(한국당·3선)·윤상현(한국당·3선) 의원 등입니다. 전부 3선 이상 중진들이었습니다. 초선의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동행했지만, 그 역시 당 대표를 지낸 중량급 인사입니다. 나이도 50~60대 이상입니다.

물론 예전부터 일본을 잘 안다는 ‘지일파(知日派)’ 의원들로 구성했겠지만, 차세대 젊은 의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건 아쉽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냉엄한 현실을 목격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한·일 의원외교의 중심인 한·일의원연맹(회장 강창일)엔 30·40대 초선 의원들이 있습니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과 신보라 한국당 의원입니다. 이들 정도는 방일단에 들어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두 의원은 연맹에서 활동을 하긴 하지만, 그동안 같은 세대 일본 의원들과의 교류는 없었다고 하네요. 이들에게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본 측 인사를 소개해주는 선배 정치인도 없었다고 합니다. 의원 외교도 정부 외교와 함께 국가 외교의 한 축입니다. 양국의 젊은 의원들이, 서로 모르는 상태로 시간만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 장로 정치인 중심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이젠 젊은 의원들도 일본을 알아야할 것 같습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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