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처소는 화장실, 독립열사 자결지는 주차장

2019. 8.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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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스마랑 현장, 무관심 속 훼손
이태복 "독립열사들, 도주 대신 위안부 구출 시도 추정"

(스마랑=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스마랑이란 도시에는 조선의 꽃다운 소녀들이 끌려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위안부 처소와 머나먼 적도에서도 항거를 잊지 않았던 대한독립 열사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안부 처소는 관광객의 화장실과 쓰레기장으로 변했고, 독립열사들의 투혼이 담긴 장소는 야영장과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암바라와성에서 7m 떨어진 위안부 처소(좌측) [스마랑=연합뉴스]

스마랑의 한국 위안부·독립열사 알리기에 앞장서 온 이태복 사산문화연구원장은 7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부가 나설 수 없으면 민간에서 표지를 세우는 등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42년 3월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점령한 뒤 같은 해 9월 14일 조선인 위안부 23명과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 군속 1천400명이 배에 실려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위안부 13명과 포로감시원들은 육로를 통해 다시 자바섬 중부의 스마랑으로 옮겨졌다.

인도네시아 스마랑(세마랑) 위치 [구글맵]

당시 일본군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식민지배 시절 축조한 스마랑의 암바라와성을 점거, 포로수용소 겸 군부대로 썼다.

조선인 소녀들은 암바라와성 문밖에 축사처럼 대충 지어진 위안부 처소로 끌려왔고, 조선인 군속들은 포로감시원으로 배치됐다.

조선인 군속들은 1944년 6월 근무기한이 끝났음에도 돌려보내 주지 않자 일본군과 갈등을 빚었고, 불순분자로 뽑힌 군속들이 스마랑의 보병훈련소에서 일종의 '사상개조' 훈련을 받았다.

그러다 1944년 12월 29일 보병훈련소 취사장 뒤편에서 조선인 군속 10명이 혈서를 쓰고 항일결사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했다.

고려독립청년당 결성장소로 추정되는 보병훈련소 취사장 뒤편 [스마랑=연합뉴스]

일주일 뒤인 1945년 1월 4일 고려독립청년당 당원이었던 손양섭·민영학·노병한 등 3명은 싱가포르 전출 명령을 받자 트럭을 탈취, 일본군이 제2분견소로 쓰던 성요셉성당으로 들어가 무기를 손에 넣었다.

일본군은 성당 등 종교시설을 무기고로 사용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고자 했다.

이후 12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며 항쟁했지만, 사흘째 되던 날 총에 맞은 민영학이 위안부 처소가 있는 암바라와성에서 불과 500m 떨어진 수수밭에서 먼저 자결했다.

이어 포위망이 좁혀지자 나머지 두 열사도 서로 총을 쏴 숨을 거뒀다.

국가보훈처는 200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문서보관소(NOID) 전쟁기록을 바탕으로 현장 조사를 거쳐 민영학 열사 등 13명에게 애국장과 애족장을 수여하면서 고려독립청년당의 항일운동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태복 사산문화연구원장(좌)과 마을 원로 위나르디 할아버지 [스마랑=연합뉴스]

스마랑의 의거 현장은 이태복 원장이 성요셉성당 마을 원로인 위나르디(84) 할아버지를 만나 증언을 듣고 보훈처 자료 등 사료와 비교하면서 구체적으로 파악됐다.

1945년 당시 열 살이었던 위나르디씨는 이날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두 사람이 총을 겨누어 서로 죽임으로써 일본군에 잡히지 않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교사와 기자로 활동하고 군인으로 퇴역한 뒤 성요셉성당 역사집을 집필했기에 성당 안에 무기고가 어디였는지, 1944년 말∼1945년 초 벌어진 거사를 소상히 증언했다.

야영장으로 쓰이는 보병훈련소 건물 [스마랑=연합뉴스]

현재 스마랑의 보병훈련소는 그대로 남아 야영장으로 쓰인다. 이날은 어린 학생들이 야영 중이었다.

훈련소 건물은 물론이고 조선 청년들이 모여 혈서를 썼던 취사장 뒤편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사적 관점'에서는 전혀 관리가 이뤄지지 않기에 건물 내외부 변형이 심했다.

열사들이 무기를 손에 넣은 성요셉성당의 무기고는 농업학교의 부속건물로서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었다.

성요셉성당 일본군이 무기고로 썼던 장소 [스마랑=연합뉴스]

또, 민영학 열사가 자결한 수수밭에는 벼가 자라고 있고, 손양섭·노병한 열사가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암바라와성 문밖 위안부 처소 44칸은 방마다 쓰레기가 가득 찬 것도 모자라 일부는 성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로 개조됐다.

손양섭·노병한 열사 자결지로 추정되는 주차장 [스마랑=연합뉴스]

이 원장은 "한국인이라면 기억해야 할 장소들 아니냐"며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또 "민영학·손양섭·노병한 세 열사는 산으로 도주할 수 있는데도 굳이 붙잡히기 쉬운 암바라와성 방향으로 향했다"며 "조선인 (위안부) 소녀들을 구출하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러한 역사적 현장을 사진을 통해서라도 알리기 위해 오는 13∼15일 자카르타 시내 코리아센터에서 '대한독립열사와 위안부 사진전'을 개최한다.

민영학 열사 자결장소 추정지 [스마랑=연합뉴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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