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칼집에 있어야 무섭다"..日 백색국가 배제 유보한 이낙연

김상윤 입력 2019. 8. 9. 07:00 수정 2019. 8. 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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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日 백색국가 제외 결정 일단 보류
명확한 근거없이 맞대응하면 역공 우려
일본 대한 수입의존도 적어 효과도 의문
논리보강, 실효성 높일 방안 보안 등 지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가 반격카드를 일단 보류하는 등 한·일경제전쟁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칼을 꺼내기보다는 대응조치의 효과와 실효성을 따져가며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 때는 도쿄특파원을, 국회의원 시절엔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을 맡는 등 이 총리는 문재인 정권 내 대표적 ‘지일파(知日派)’로 꼽힌다.

◇“동일규제로 맞대응해야” Vs “수위조절해 대화해야”

이낙연 국무총리는 8일 오전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전략물자수출입 고시 개정안을 검토했지만, 논의 끝에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고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추가 논의를 통해 보완 후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복수의 정부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회의에서는 우리 정부의 반격카드를 놓고 ‘매파’와 ‘비둘기파’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이 일단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만큼 한국도 똑같은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본의 공세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진 만큼 우리 역시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양국간 대화의 창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혔고, 이 총리는 후자 쪽을 들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한 핵심소재 3개 중 1개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허가를 내 준 상황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좀 더 지켜보자는 신중론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칼은 뽑았을 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칼집 속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게 아니냐”면서 “일단 당장 강대강으로 부딪히기보다는 일본의 대응 수위를 보면서 우리의 카드를 좀 더 다듬고 적시에 던지자는 쪽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대(對) 일본 대응 수위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은 전날 이미 감지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고시개정안을 이 총리에게 사전 보고를 했지만, 이 총리는 실효성 및 논리 등에 대해 좀 더 보완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시 개정안에 따르면 한국은 국제수출통제체제 가입 여부 등을 고려해 전략물자의 수출입통제 허가지역을 ‘가’ 지역과 ‘나’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다’ 지역을 신설해 일본을 별도로 분류한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배제한 것에 대한 일종의 맞대응 카드로 핵심은 수출허가에 걸리는 기간을 15일에서 최장 90일로 연장하는 게 골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명확한 논리 없으며 일본이 역제소 가능성

하지만 한국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려면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자칫 명확한 논리 없이 추진할 경우 오히려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 에 한국의 수출규제가 정치적 이유로 이뤄졌다며 제소할 공산이 크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 사유로 ‘자국 내 기업의 수출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 과정에서 발언자에 따라 배제 사유를 두고 오락가락한 탓에 일본이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인상을 줬다.

우리 측은 국제평화 및 안보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수출통제 체제에서 일본이 한국을 먼저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더는 양국 간 협조가 어려운 만큼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제도를 개편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칫 WTO에서 금지하는 ‘상응조치’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여기에 실효성도 불투명하다. 일본의 대(對) 한국 수입의존도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국가에서 배제할 경우 오히려 우리 기업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총리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우리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산업부가 좀 더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일본 화이트배제 카드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향후 일본의 대응에 따라 시기와 강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내용과 발표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 카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면서 “일본 정부가 향후 규제 품목을 추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일본의 대응 수위에 맞춰 정부가 신중론을 펼쳐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금 상황에서 단지 맞대응으로만 일본을 제외하면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WTO 제소의 승소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라면서 “(한국이 똑같은 조치를 내릴 경우)‘안전보장 무역관리‘는 일본의 재량사항이라는 방어논리만 오히려 강화시킨다”고 강조했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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