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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반도체 소재 '탈 일본'?..삼성·SK '난감'

박소연 기자 입력 2019.08.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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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품·장비 국산화 필요성 공감하지만..정치논리 의한 脫일본 우려 목소리도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강화 한 달을 넘기면서 '탈(脫) 일본' 구호가 산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자는 당초의 의미를 넘어 일각에서 '일본산 배제' 목소리로 번지는 데 대해 기업은 난감한 표정이다.

지난달 일본이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심사를 강화한 것과 관련, '탈 일본' 용어는 일본 언론에서 먼저 들고 나왔다.

지난달 1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기업들이 이번 조치로 일본산 반도체 재료 등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중장기적으로 탈일본 움직임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초기 '탈 일본'은 주로 일본 내에서 한국의 거래처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언급됐다.

그러다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와 만나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국산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주로 애국심을 부추기는 '탈 일본' 언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불화수소 등 수출규제 대상에 대한 대체재를 마련하는 것을 놓고 언론은 '탈일본'이라 이름붙이기 시작했다.

최근 반도체 생산공정에 들어가는 모든 반도체 소재에서 일본산을 배제한다는 의미의 '탈일본'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한 언론은 삼성전자가 약 220여가지 일본산 소재와 화학약품을 다른 나라 제품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기사는 사실과 다르며 해당 TF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에서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며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완전한 '탈일본'을 희망하는 국민적 분위기 속에서 기업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탈일본 자체가 정치권에서 나온 발상인데 산업 현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일본 배제는 카드 하나를 그냥 버리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 세트업체 중에도 어느 한 곳을 배제하고 부품받는 곳은 없다"며 "국내산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대체재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탈일본'을 성급하게 말하는 분위기는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유럽과 중국 등의 대체 공급처를 통해 9월 이후까지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완전한 '탈 일본'은 기술적 달성 여부도 불확실하고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란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논리에 의한 무리한 탈일본으로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과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이 무너지면 고립되는 건 삼성, 하이닉스가 될 것"이라며 "반사효과로 마이크론이 D램 증산하고 도시바가 낸드 늘리면 우리만 손해"라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이 한일 경제전쟁을 틈타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공급처를 자처하며 반도체 굴기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반도체는 태생적으로 일본 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다"며 "우린 일본을 상대로 무역적자지만 이를 중국과 미국에 수출해 수십배의 이득을 얻는 글로벌 분업구조다. 국산화는 필요하지만 일본과 이 생태계를 적절히 가져가며 국산화 가능한 부분을 늘려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반도체 수출규제 한 달여 만인 8일 삼성전자에 들어갈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한 것은 자국의 소재기업 피해를 덜기 위해서란 시각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 문제가 얽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쉽사리 헤어지기 어려운 사이"라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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