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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세상] "태권도장이 육아센터"..SNS 공감 글에 비친 현실

입력 2019.08.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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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요즘 동네 태권도장은 종합 육아센터라고 한다. 보통 주5일 가는데 학원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특별한 도구나 시설 비용이 들지 않아 부담이 적다. 방학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장에 있어도 된다는 곳도 있고, 밥이나 간식까지 줘서 맞벌이 부부가 선호한다"

지난달 '꾸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요즘 젊은 부모들이 유아 체육으로 태권도를 선호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태권도장이 돌봄 기관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 글이 올라온 뒤 SNS상에서 다수 공유되며 공감을 샀다.

태권도장 수업 모습.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인터넷 커뮤니티 '꾸르' 글 '요즘 젊은 부모들이 유아 체육으로 태권도를 선호하는 이유' 속 사진 캡처]

방학 등에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에게 태권도장, 학원 등 사교육 시설이 가뭄의 단비 같은 손길을 내민 지는 이미 오래.

최근에는 학부모 수요에 적극 부응해 돌봄 공백이 주로 발생하는 방학 기간 오전 시간대 특강 프로그램을 짜고 간식이나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등 학원이 '제2의 집' 역할을 자처할 정도다.

◇ "돌봐주니 고맙긴 한데…원래 공공의 영역 아닌가요?"

맞벌이하는 서울 송파구 박모(40)씨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집 근처 논술학원이 진행하는 방학 특강에 다닌다. 아이는 오전 9시 반부터 정오까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열살짜리 아이에게 논술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기보단 맡길 곳이 없어 보내는 거죠. 수업 중간에 김밥, 떡, 핫도그 같은 간식도 챙겨주거든요"

그의 아들이 듣는 특강의 주제도 '공룡 탐험대', '갯벌이 좋아요', '풍뎅이의 꽃밭' 등 논술이라는 딱딱한 과목 이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후 학교의 방학특강은 기간이 일주일로 짧고 돌봄교실에 당첨되기도 힘든데 학원에라도 특강이 있다는 게 어찌나 반갑던지 모른다. 아이가 돌아오는 오후에는 할머니나 돌보미의 손을 빌려야 하긴 하지만 온종일 맡겨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논술학원의 초등학생 대상 방학특강 소개문 [독자 제공]

경기 남양주시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허모 관장은 태권도장이 방학 기간 등에 발생하는 보육 공백을 메워주는 돌봄시설의 역할을 한 지 꽤 오래되었다고 전한다.

허 관장은 "방학은 물론이고 학기 초 학교 급식이 시작되기 전 기간에 하교한 아이들 밥도 챙겨주는 일도 있고, 도장 통학 차량으로 하교는 물론 등교까지 해주면 안 되냐는 문의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태권도장이 다른 사교육 기관과 비교해 '육아센터'의 역할을 도맡는 경향에 대해 경쟁의 격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태권도 실력으로 원생 유치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입맛에 맞는 보육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하느냐가 도장 운영을 좌우하는 현실"이라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주먹구구로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가 제대로 된 것이겠냐는 우려가 있다. 원래는 사교육 장이 아닌 나라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공의 영역이 아닌 분야에서 돌봄 활동이 빈번히 일어나다 보니 부작용도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여름 캠프에서 중학생인 원생을 성폭행한 태권도장 관장에게 징역 8년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이 선고되기도 했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나 간식의 질과 위생관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태권도장 관계자는 "빠듯한 수익에서 아이들 먹을 것을 챙기다 보니 빵이나 분식을 주로 사다 주거나 비용을 아끼려 도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사교육 기관은 원생이 50명 이상이면 관할 구청 보건소에 급식 시설로 신고하고 취사 시설의 위생관리를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를 따르는 곳은 정기적으로 식사를 공급하는 영어 유치원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영어캠프가 3주에 140만원…비용도 아이 체력도 걱정"

그런데 왜 하필 태권도장일까. 방학에 아이를 다른 학원에 맡기려면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 비용 부담이 그나마 덜한 태권도장이 돌봄 대체지로 선호되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울과 성남 등에 분원이 있는 A 영어학원 체인은 '영어 캠프'라는 명칭으로 여름·겨울방학이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특별수업을 개설한다. 8월 3주 동안 주5일 간식과 점심 도시락을 제공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 영어 수업을 하고 받는 돈은 140만원.

학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업 시간이 길다 보니 교육비도 올라가는 것"이라며 "방학 기간에 어차피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하는데 집중 공부도 가능해 선호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이모(42)씨는 초등학교 1학년 큰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이하자 교육비로 지출하는 돈이 껑충 뛰었다.

맞벌이하는 이씨 부부의 아들은 학기 중에도 하교 뒤 부모가 귀가할 때까지 방과 후 어린이집에 가는데 방학 중에도 다닐 수밖에 없다. 이 비용이 20만원 선이고 오전 시간을 보낼 수영 교습소와 영어 학원이 40만원, 오후 시간대 들르는 방과후학교 수업비가 대략 10만원으로 한 달에 총 70만원을 지출하는 셈.

이씨는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비용이 두배가 될 텐데 벌써 걱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수입이 어지간한 집은 다둥이는 꿈도 못 꾼다"고 꼬집었다.

비용을 감내하고 사교육을 시키려 해도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지난달 네이버 양육카페 '맘스홀릭베이비'에 직장맘이라며 글을 올린 이용자 jh25****는 "돌봄교실 이용을 못 해서 할 수 없이 학원으로 돌려야 하는데 오전에 여는 곳이 없다. 수영 교실만 자리가 있는데 수영장에 매일 가는 것을 아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방학 때 쉬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한탄했다.

학부모는 방학 중에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에 보내는 걸 선호하지만 문제는 자리가 없다는 것. 이용을 원하는 학생보다 수용 인원이 적어 추첨에 떨어지면 자리가 날 때까지는 방법이 없다.

경기도의 경우 2016년 초등학생 1천100여명이 방학 중 돌봄교실 이용을 신청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광주 광산구에선 2014∼2016년 돌봄교실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학생 수가 1천200명이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홍민정 정책국장은 "맞벌이가 흔한 사회에서 특히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이 접근성과 안전성 등의 이유로 사교육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교육 안에서 보육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의 확대를 주문했다.

공교육은 방학 중 돌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교육은 비용 부담 등의 문제가 제기되자 대안으로 지목되는 곳 중에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인터넷 양육카페에는 여름방학 시작 전인 6월께부터 '방학 때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걱정'이라는 글이 다수 올라오자 '지역아동센터를 알아 보라'는 조언을 하는 댓글이 상당수 달렸다.

한 지역아동센터의 미술 수업 모습.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제공]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민간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는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문화, 체육, 학습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전국 4천100곳에서 아동 10만6천명이 이용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이용자 가정의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통학 차량을 제공하지 않아 센터가 집에서 먼 곳에 있으면 초등학교 저학년은 보내기 어렵다는게 단점이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성태숙 정책위원장은 "한계도 있지만 수업 만족도가 높아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올 정도로 좋아한다"며 "현재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아동센터를 당국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입소 기준을 현행보다 완화하고, 이용 대기(기간)가 긴 지역과 입소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센터의 정원을 조정하는 일 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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