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번개에 공항노동자 9명 쓰러지고 1명 숨졌다

손가영 기자 2019. 8. 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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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온도 재보니 45℃, 야외노동자 폭염·낙뢰 그대로 노출… 국토부·공항공사 대책 촉구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지난 3일 정오, 인천공항 계류장 온도가 45.3℃까지 올랐다. 당일 낮 최고기온 33.6℃보다 12℃ 더 높다. 시멘트 바닥 복사열, 엔진 열기 등이 합쳐진 탓이다.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 A씨는 45℃ 뙤약볕 아래서 꼬박 1시간 넘게 서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온도만 37℃, 오후 2시에도 38℃를 찍었고 오후 최저온도는 29℃였다. 5~6시간을 30℃ 이상의 고온에 노출돼 일했다. A씨는 "공항 계류장은 펄펄 끓는 양은냄비"라 했다.

여름 폭염 뿐 아니라 낙뢰도 위험요소다. 폭우가 집중된 여름엔 낙뢰경보도 잦은데 광활한 계류장엔 마땅한 대피방법이 없다. 경보가 전달돼도 작업 중지기준이 없어 그대로 작업할 때도 많다. 22년차 A씨는 "낙뢰 경고를 제대로 들은 진 불과 1~2년 됐는데 지난해 사람들이 번개에 맞아 쓰러지면서 그제야 회사들이 경각심을 가진 것"이라 말했다.

▲한 공항 지상조업노동자가 지난 8월1~9일간 계류장 온도를 측정했다.

야외노동자들이 대거 일하는 공항에서 '정부·공항공사 차원의 노동자 안전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불만이 높다. 공항은 폭염·폭설·낙뢰 등 기후 현상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일터임에도 국토교통부, 공항공사 등이 안전관리 의무를 항공사·조업사 측에만 밀어뒀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폭염·낙뢰로 쓰러지거나 사망한 공항 야외노동자는 최소 10명이다. 7월21일 지상조업노동자 윤아무개씨가 수하물 상·하차 작업 중 쓰러졌고 7월22일엔 박아무개씨가 심각한 현기증을 느껴 일을 중단했다. 7월23일엔 김아무개씨가 폭염으로 수하물 작업 중 쓰러졌고 8월1일 천아무개씨는 구토증세까지 보였다. 8월3일 작업 중 현기증을 호소한 김아무개씨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7월22일 비행기 화장실 청소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유금화씨는 8월16일 결국 사망했다. 폭염은 유씨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이유가 됐다. 유씨가 쓰러진 22일은 연일 폭염을 기록하다 최고온도 35.2℃(인천 기준)를 찍은 날이었다. 계류장 온도가 58~68℃까지 오르는 점에 비춰, 에어컨이 가동된 비행기 내부와 계류장 온도 차이는 약 30도로 추정됐다. 유씨는 당시 15대 째 마지막 비행기를 청소하다가 변을 당했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병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급격하게 악화된 경우'를 뇌혈관 질환 산재 이유로 둔다. 유씨 유족은 "고인은 새벽 6시30분 출근해 오후 5시15분 경까지 폭염 속 활주로와 냉방상태의 기내를 반복해 오가면서 항공기 15대를 청소했다. 급격 온도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쓰러지기 전 4시간 연속 7대 조업으로 노동강도가 높았다" 주장했고 산재 인정을 받았다.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들 작업 중 모습. 위는 비행기 날개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7월30일 김포공항에서 일했던 조업조 감독 김아무개씨(사망시점 58세)의 사고를 두고 현장에선 '폭염과 과로가 건강을 망가뜨렸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김씨는 휴가 전날 마트에서 어지러움을 호소하다 매대에 머리를 부딪히고 쓰러져 뇌출혈로 장기입원했고 결국 반여년 후 숨졌다. 유족은 당시 '7월25일부터 가족들에게 현기증을 호소했고 땀도 아주 많이 흘렸으며 사람(인력)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항상 말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김씨 동료 B씨는 "후배들 일을 대신해주느라 항상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던 감독님이었다. 조원이 7명에서 4명으로 줄어 노동강도가 늘었고 모두가 폭염에 고통을 호소하던 때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폭염 대비 시설은 공항에 갖춰져 있을까. 휴게시설은 불과 지난해 처음 생겼다. 지난해 1월 인천공항 2터미널이 만들어지며 대한항공 계열사인 조업사 한국공항이 터미널 양 끝에 컨테이너형 임시 휴게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1터미널과 탑승동엔 휴게실이 없을 뿐더러 특정 회사 소유물이라 타사 조업노동자는 이용하기 어렵다. A씨는 "인천공항공사가 휴게시설 하나 책임지지 못하느냐는 항의가 속출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이와 관련 2터미널에 카라반(여행트레일러) 11대를 휴식공간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한국공항 조업노동자 C씨는 "이것도 다 대한항공, 한국공항, 진에어가 공동으로 돈을 들여 설치하는데 다른 회사 직원들은 또 쓰지 못할 것이다. 공항공사가 져야 할 책임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호우주의보, 경보가 번갈아 내린 2018년 8월28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 풍경.

국토부·공항공사 나서야 '안전계수' 올라가

공항공사 안전관리 사각지대는 낙뢰에서 더 분명하다. 지난해에만 4명, 올해 2명이 계류장 작업 중 낙뢰에 감전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지난해 8월28일엔 대한항공 정비사 1명과 한국공항 조업노동자 2명이, 8월29일엔 조업노동자 1명이 폭우 속 뇌전경보가 발령된 때 일하다 비행기에 떨어진 낙뢰가 몸에 흘러 감전됐다.

지난 7월31일엔 아시아나항공 정비사 2명이 오전 11시25분께 인천공항 격납고 앞에 주기된 항공기를 정비하다가 갑자기 떨어진 낙뢰에 감전됐다. 이날 오전 6시30분께 내려진 뇌전경보가 오전 11시 해제된 직후였다.

홍콩, 태국 등 기상변화가 잦은 지역 공항은 낙뢰 관련 세부 지침을 두고 있다. 홍콩국제공항은 '뇌전 경고 시스템' 지침을 두고 '적색 경보(Red Lighting Warning)' 발령 시 항공사·조업사가 따라야 할 세부 지침을 명시했다. 조업노동자들이 비행기에 연결된 유선 헤드셋이 아닌 무선 헤드셋을 써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태국 방콕 공항도 위험도에 따라 1·2·3단계를 지정해 항공사·조업사 운영을 통제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엔 이같은 지침이 없다. 한 민간항공사 기장 D씨는 미국 시카고 공항을 예로 들며 "낙뢰 위험이 감지되면 공항이 조업 자체를 중단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며 "위험 상황 시 운영지침을 항공사에만 맡기면 항공사가 개별로 움직이기에 안전 강화에 효과적이지 않다. 공항공사 차원의 공통 조업 중지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항공기 기장, 조업노동자, 공항 관리자 등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낙뢰 경보등. 위는 미국 텍사스 공항이고 아래는 홍콩국제공항 사진.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이 지난 1월 국토교통부에 '폭염·폭우·폭설·혹한·낙뢰주의보 등 이상 기후 상황일 때 작업환경 위험을 고려해 계류장 작업을 중지하는 제도적 근거'를 질의한 결과 국토부는 "현행 법령상 계류장 작업 중지를 규정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항공사는 조업교범에 뇌우 발생 시 단계별 조업기준을 두고 심각단계에서 조업을 중단하도록 정해 국토부 승인 후 운영 중"이라 밝혔다.

인천국제·한국공항공사는 계류장 온도 측정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7월 계류장 측정 온도 정보를 공개청구한 결과 양 공사 모두 '측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가 지난 1~9일간 온도를 측정한 결과 3일 오후 12시18분께 온도가 45.3℃로 가장 높았고 4일 오전 11시58분엔 40.1℃, 6일 오후 12시38분엔 40.1℃ 9일 오후 12시38분엔 39.7℃로 나타났다. 9일 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온도 평균은 32.5℃였다.

온도 측정 작업을 한 A씨는 "비행기 화물칸 안에서 온도를 재면 2~3℃는 더 높을 것이다. 통풍이 안 되는 데다 수하물을 일일이 꺼내고 넣는 작업이 매우 고되고, 엔진 열 영향도 있다"며 "작업 후 머리 수건을 짜면 빨래한 수건 짜듯 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온열 상태에 지속 노출되는 게 건강에 어떤 영향이 있을 진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 온도 측정 방식은 녹색연합, 한겨레21 등과 혹서기 야외온도 측정작업을 하고 있는 라이더유니온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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