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저장 탱크, 제작 방법 바꿔도 탄소강 재질 '파손 취약'

이정호 기자 2019. 8.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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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일본 사고 원전 주변 용량 최고 2900톤 탱크 850개 산더미
ㆍ볼트식에서 용접 방식으로…오염수 중 가장 많은 삼중수소에 취약
ㆍ“도쿄 올림픽, 후쿠시마 식재료 공급 계획 등 국제 여론전 펼칠 필요”

용접형 탱크(왼쪽 사진)와 볼트형 탱크. 도쿄전력은 누수를 막기 위해 2014년부터 오염수 저장탱크를 용접형으로 교체했다. 도쿄전력 제공

일본 도쿄전력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상단에 배치된 메뉴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수습 소식이다. 다채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건 원전 부지 내부를 천천히 이동하며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된 설비를 둘러볼 수 있는 동영상이다.

그런데 해당 동영상에선 보통 원전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물이 보인다. 빽빽하게 들어선 원통 모양의 탱크들이다. 높이는 대략 아파트 3~4층 수준이다. 용량은 한 개당 1000t에서 2900t 사이이고 개수는 850개나 된다. 여기엔 모두 100만t가량의 방사능 오염수가 저장돼 있다는 게 도쿄전력의 설명이다. 방사능 오염수 저장용 탱크인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생기는 건 원전 폭발 때 원자력 용기를 뚫고 나온 핵연료를 식히려고 들이붓는 물과 원전 안으로 자연적으로 흘러드는 지하수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방사능 오염수를 그냥 두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형 탱크를 만들어 담아두는 것이다. 이렇게 생기는 방사능 오염수가 매일 100t이 훌쩍 넘는다.

오염수의 근원이 되는 원전 내 핵연료와 방사능 찌꺼기들을 아예 걷어내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겠지만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도쿄전력이 대외적으로 밝힌 사고 원전 완전 폐쇄 시점은 30~40년 뒤다. 환경단체들은 완전 폐쇄하는 데 다음 세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당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최선의 대응책은 방사능 오염수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쿄전력은 최근 저장탱크 몸체를 볼트를 조여 조립하는 방식에서 용접 방식으로 바꿨다. 조립 방식을 개선해 오염수를 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저장탱크의 제작 수준을 높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할 방침이라는 칼럼을 게재해 파장을 일으킨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올해 1월 보고서를 보면 상황이 다르다. 일본 정부가 탱크의 형태를 바꾼 건 말 그대로 조립 품질 때문이었다. 기존에 쓰던 볼트식 탱크에서 누수 문제가 발견됐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용접식으로 탱크 조립 방법을 바꿨는데 뜻밖의 사안이 불거졌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탄소강을 쓰는 탱크 재질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린피스가 인용한 미국 에너지부의 2008년 보고서를 보면 “일반 탄소강이나 합금강은 삼중수소 관련 설비에 써선 안 된다”며 “수소로 인한 파손에 매우 취약하다”고 서술돼 있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 보관된 오염수에 가장 많이 함유된 방사성 물질이 바로 삼중수소다.

올해 1월 방사능 오염수가 특정 탱크에서 유출됐던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때 탱크 내 오염수의 삼중수소 농도는 정상 배출 기준치의 2배인 ℓ당 12만 베크렐에 이르렀다.

2016년 한국원자력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삼중수소는 인체에 암을 일으켰다는 보고는 없지만 고농도 노출 환경을 만든 동물실험에서 세포 사멸과 유전적 손상 등의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계 일부에선 위험성을 더 심각하게 본다. 김익중 전 동국대 의대 교수는 “삼중수소를 포함해 어떤 물질이든 다량의 베타선을 방출한다면 위험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핵물질의 종류보다 얼마나 많은 방사선이 나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녹아 있는 고농도의 삼중수소가 환경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방사능 오염수 탱크는 거친 일본의 자연환경 때문에 더욱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13년 10월 태풍 ‘위파’가 후쿠시마 근처로 접근하며 다량의 비를 뿌리자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 탱크 주변을 두르고 있는 보 안에 물이 지나치게 차오르는 상황을 막으려고 보에 고인 40t의 오염수를 단지 내부에 방류했다. 여기서 세슘과 스트론튬 같은 방사성 물질까지 검출됐지만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정한 기준치를 넘지 않아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진도 문제다. 지난 4일 오후 7시23분쯤 후쿠시마 앞바다를 진원으로 하는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에서 이 정도 수준의 지진은 흔하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지진이 발생해 그 충격으로 방사능 오염수 저장탱크가 손상된다면 이후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환경단체에선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 처리를 결국 포기하고 바다 방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비용이 문제다. 삼중수소를 고도로 정화하겠다며 미국 등의 업체가 제시한 처리 비용이 많게는 200조 원이 넘는데 이를 감당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에선 일본이 부흥 올림픽을 천명하며 후쿠시마에서 경기를 열고 이곳 생산 식재료도 공급할 계획을 갖고 있는 상황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윤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소장은 “법적으로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저지할 방법이 없는 만큼 강력한 국제 여론전을 펼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은 “후쿠시마 주변에서 생산되는 식품의 수입 제한을 확대할 수 있다는 고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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