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한국의 민주주의도 이렇게 무너지는가?

김대중 칼럼니스트 2019. 8. 1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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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 법원 등 승인받아 '합법적' 형태
신문은 정권의 회유와 압박.. 비판 시민, 세무조사·소송당해
독재 비판하면 과장 또는 거짓말.. 민주주의 붕괴 인지 못해"
김대중 고문

“냉전 기간 전(全)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죽음 가운데 75%는 쿠데타에 의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브라질·도미니카공화국·그리스·가나·과테말라·나이지리아·파키스탄·페루·태국·터키·우루과이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력을 잡은 뒤 그 절차(민주주의)를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두 사람이 같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년)의 핵심 논점이다. 저자들은 지도자에 의해 붕괴된 민주주의 나라로 베네수엘라·조지아·헝가리·니카라과·페루·필리핀·러시아·스리랑카·터키·우크라이나 등을 들었다.

두 사람은 트럼프가 당선된 뒤 미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결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독단적이고 이념 불구 상태인 지도자가 나라를 자기 개인 소유인 양 다그치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다음 대목이 어느 나라 얘기인지 우리는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심지어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부패를 척결하고 혹은 선거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개선'하려고까지 한다. 신문은 발행되지만 정권의 회유나 협박은 자체 검열을 강요한다. 시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세무조사를 받거나 소송을 당하게 된다.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과장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사람들 대부분 자신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으며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 첫 번째 투표장이 내년 4월 15일의 총선거다.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면 2년 뒤 대통령 선거는 집권 연장의 승인 절차에 불과하다. 그럴 경우 좌파는 2027년까지 최소한 10여년간 이 나라를 통치한다. '20년 집권' 주장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한 술 더 떠 개헌선을 확보하면 이 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간다. 자유·평등·민주의 나라는 '자유'가 사라진 '평등'의 사회로 남고 '민주'는 없고 '민족'만 남는다.

오늘날 우리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한 부분도 있다. 책은 "잠재적 독재자는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다. (중략) 시민들 역시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권력자의) 전체주의 조치에 더욱 관대해진다." 지금 이 나라의 경제 위기는 문(文) 정권의 취약점이라기보다 권력 주변 또는 적극 지지층의 총단결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이 정권은 유난히도 국가적 재난이나 재해에 민감하다. 정권도 재해(세월호 침몰)를 기회로 잡았다. 일본과의 경제 충돌도 반일(反日)이라는 민족적 감정과 자존심에 편승한 '국민 단합'의 총선 전략으로 보면 된다. 북한의 미사일 공세도 안보 위협의 구실일 수 있다.

그것은 국민을 분열해 대립시키는 통치의 한 기술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리더는 비록 자신의 신념 일부를 양보하거나 타협해서라도 분열을 막고 통합적 방향으로 나라를 이끈다. 그러나 좌파 정권은 국론을 양분시키고 대립시켜 그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론조사 등으로 공작적 요소를 작동시키거나 반대 의견을 조작하는 '드루킹식(式)' 수법을 동원한다.

문 정권 존립의 갈림길은 그래서 4·15 총선이다. 여기서 지면 '문재인식(式) 혁명'은 단명으로 끝난다. 이기면 그것은 좌파의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 책의 제목처럼 '무너지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4·15 총선이 단순히 국회의원 뽑는 선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의 결론이다. ‘어떤 정당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끝낼 수 없다.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한국 민주주의 운명도 국민 손에 달렸다. 그런데 국민은 지금 분열하는 야당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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