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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 인정받고 싶지만.. 커밍아웃 순간 가족·직장 모두 멀어져"

고경석 입력 2019.08.13. 04:43 수정 2019.08.13. 17:24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34> 트랜스젠더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지난달 25일 경기 고양에서 만난 수학강사 이예나씨는 “트랜스젠더도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보여주고 싶어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나’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홍윤기 인턴기자

“근데 아가씨는 남자유? 여자유?”

트랜스젠더 여성 최수진(가명ㆍ26)씨는 몇 달 전 혼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가다가 식당 주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가끔 듣는 질문이긴 하지만 자신의 신체를 위아래로 훑으며 내뱉는 말에 기분이 상한 최씨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성전환수술(성별재지정수술 또는 성별적합수술)을 받지 않고 호르몬 투여만 받고 있다는 그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다짜고짜 수술은 했냐고 묻는데 초면에 그런 개인적 질문을 받으면 불쾌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에야 친구들에게 먼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렸고 이후 부모에게도 고백했다. 처음에는 “인연을 끊자”는 말까지 들으며 가족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연락하며 지낸다고 한다.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탓에 법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지 못한 최씨는 “처음에는 가족과 관계가 멀어지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이젠 취직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며 “현재로선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이력서에 주민등록번호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그나마 친구들이나 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도 있지만, 가족에게조차 따돌림당하고 고통스런 삶을 사는 트랜스젠더도 적지 않다. 30대 트랜스젠더 여성 강예빈(가명)씨는 행동과 말투가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고교 시절엔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털어놓았지만 이 이야기가 부모의 귀로 들어간 뒤엔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했다. “악마가 들어 쫓아내야 한다”며 강씨를 때리는 아버지를 어머니도 말리지 못했고 형제들은 모른 체했다. 그는 “강제로 아우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당한 이후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늘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집을 나왔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성전환수술은 마쳤지만 가족과 사실상 절연한 탓에 법적 성별 정정은 꿈도 못 꾼다. 그는 “서른이 넘은 성인인데도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성별정정을 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성별 정정에 대한 요건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

대표적 사회적 소수자인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트랜스젠더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소수자 사회에서도 소수자인 셈이다. 미국, 영국 등에서 이뤄진 조사에서는 인구의 0.3~0.7% 정도를 트랜스젠더로 추정했다. 국내에선 아직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는 탓에 해외 사례와 비교해 15만~35만명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다 보니 트랜스젠더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최수진씨는 “트랜스젠더는 모두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외부성기수술을 마쳐야만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통상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과 다른 성별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수술은 물론 호르몬 요법을 받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법적으로 성별이 바뀌지 않은 사람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이유로 자신의 선택에 따라 트랜스젠더의 삶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출생 시 성별에 따라 살면 평범한 삶이 가능하지만, 출생 시 성별과 다른 모습으로 산다거나 성별 정정을 하게 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커밍아웃이 곧 경제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남성이라고 여기는 임주영(가명ㆍ29)씨가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성전환수술이나 호르몬 투여, 성별 정정을 당분간 포기하기로 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공기업에 취직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별위화감(태어날 때 성별과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의 차이로 인해 자신의 신체 등에 대해 느끼는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에 남성적인 외모와 목소리를 갖고 싶긴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포기할 순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대로 살고 싶어하는 트랜스젠더는 대부분 이에 맞춰 법적 성별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성별 정정의 주요 조건인 성전환수술이라는 장벽에 맞닥뜨린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의 한국 트랜스젠더의 건강 연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156명의 트랜스젠더 중 78%에 해당하는 122명이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성전환수술에는 외부성기수술, 고환ㆍ정소 또는 난소ㆍ자궁 제거수술, 안면성형수술, 가슴 수술, 성대 성형수술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가장 비용 부담이 큰 성기성형수술은 1,500만~2,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예빈씨는 “10대 때나 20대 초에 커밍아웃 후 가출하고 나면 수술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트랜스젠더바 같은 업소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술 후에도 일반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직하기 쉽지 않아 업소에 다시 나가거나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조건 만족해도 성별 정정은 ‘판사 맘대로’?

대학생 때부터 학원 수학 강사로 일해 온 이예나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5년간 일했던 학원을 2년 전 그만둬야 했다. ‘긴 머리의 남자 선생님’으로 지내며 수강생 4명의 작은 보습학원을 500여명이 다니는 유명 학원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지만, 자신 때문에 학원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길 원하진 않았다. 안면 성형수술 등을 마치고 지난해 다른 학원에 취업하려 했지만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학부모에게 ‘사탄의 자식’ ‘마귀의 자식’이란 말을 듣고 수업을 포기해야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이씨는 오히려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히고 유튜브에서 인터넷 강의를 시작한 것. 미성년 학생을 둔 학부모들의 반발을 우려해 우선 대기업 직무적성검사를 앞둔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지역 내에선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진다면 오히려 트랜스젠더 여부를 따지지 않고 실력을 보고 제 수업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씨처럼 커밍아웃을 한 상태에서 평범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법적 성별과 다른 외양을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됐다는 이들도 있다. 호르몬 요법이나 수술 등을 통한 트랜지션(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성별로 살기 위해 거치는 전환 과정)을 하게 되면 경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가족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수술비용 마련과 수술, 회복 등에 최소 1년 이상의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고, 사회생활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수술 후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치더라도 여고를 나온 트랜스젠더 남성이나, 남고 졸업 또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숨기기 어렵게 되고 수술 후유증 등으로 공백기가 생겨 좋은 직장을 잡기도 쉽지 않다. 출생 시 성별로 살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숨기지 않는 한 이들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든 환경인 것이다.

수술보다 법적 성별 정정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아직 관련된 법 조항이 없어 법원 내부 지침에 따라 판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인 부모 동의와 외부성기 성형수술까지 마친 뒤에도 성별 변경을 허가해 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태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올해 초 법적 성별 정정을 허가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 신미나(가명ㆍ25)씨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가면 성별정정 허가 확률이 높은 가정법원 정보가 돌지만 법원 인사에 따라 판사가 바뀌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도 있어서 그냥 주소지 가정법원에 갔는데 운 좋게 허가를 받았다”며 씁쓸해했다. 트랜스젠더에겐 부모의 동의를 받는 일도 난관 중의 난관이다. 이예나씨는 “트랜스젠더 한 분은 자신이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는데 아버지가 어디 사는지 알지 못해 14년째 성별 정정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녀 이분법 거부하는 또 다른 소수자 ‘젠더퀴어’

트랜스젠더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남녀 이분법적 성별을 따르지 않는 모든 젠더 정체성을 가리키는 ‘논바이너리(non-binary)’도 있다. 흔히 젠더퀴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다시 여성성과 남성성이 섞인 형태의 양성적 정체성인 안드로진, 남성과 여성의 개별적인 두 가지 정체성을 지닌 바이젠더 등으로 나뉜다.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 트랜스해방전선에서 인권대응팀장을 맡고 있는 꼬꼬(활동명ㆍ30)씨는 “논바이너리는 범주를 말하는 개념이고 젠더퀴어는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행동양식을 지칭하는 정치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뉴트로이스라고 정의하며 “굳이 우리말로 하면 중성이지만 그보다는 남성도 여성도, 둘의 중간도 아닌 그 이외의 어떤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분법적 성별 구분은 트랜스젠더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남자 화장실이든 여자 화장실이든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은 이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고통이다. 신용카드 발급 등 신분을 확인하는 모든 서비스에서 “본인이 맞냐”는 질문을 반복해 들어야 하고, 이를 증명하는 데 진땀을 빼야 한다. 투표에 불참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신분 확인 과정에서 겪게 될 불편함과 두려움 때문이다.

법적 성별이 남성인 트랜스젠더는 20대 초반 병역 문제로 홍역을 앓기도 한다. 징병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는 시기에 성전환수술과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군 복무 기간 동안 비교적 군대 생활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여성스러운 말투와 행동으로 차별을 받고 폭행, 심지어 성폭력까지 경험하기도 한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70명 가운데 40명(중복응답)이 공동 샤워시설 이용을 군 복무 중 어려운 점으로 꼽았고, 33명이 공동 취침시설 생활을 지적했다. 성 소수자 비하 발언이나 성희롱, 성폭력 피해 경험도 각각 26명, 17명이나 됐다. 자주 드나들 수밖에 없는 병원에서 겪는 차별도 적지 않다. 2015년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2만7,000명의 트랜스젠더 가운데 33%가 의료기관 이용 시 언어폭력이나 성희롱, 치료 거부 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 모든 불편함과 어려움보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그런 외모로 여자가 될 수 있겠냐”는 식의 비아냥부터 “치료를 하면 나을 것”이라는 식의 비뚤어진 견해까지 자신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다. 꼬꼬씨는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라는 걸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좋지만 이해를 못하더라도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넘기면 좋겠다”며 “똑같은 인간으로 대해 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mailto: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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