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들은 지배냐 종속이냐 밖에 모른다"..시사평론가, 日망명객 DJ의 글 첫 공개

박홍두 기자 2019. 8. 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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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1950~70년대 김 전 대통령의 일본 인식을 보여주는 기록물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시사평론가, 일본 망명객이었던 그의 기록물들에선 일본의 팽창 야욕을 우려하면서도 과거사 사과와 한·일 양국 양심세력의 연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과를 이끌어냈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귀결됐다는 평가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13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대중전집’ 30권에 포함된 언론 기고문, 메모,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 등을 공개했다.

도서관이 공개한 문건들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은 청년 시절이던 1953년 10월2일 언론에 ‘한일 우호의 길’이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당시 그는 시사평론가로 활동했다.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악독한 공산침략에 직면해 전 자유진영이 그의 생존을 위해 굳게 단결해야 할 차제(此際)”라며 “태평양반공동맹에 있어서도 같이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한·일 양국의 반목 대립은 아주(亞洲) 반공세력의 강화는 물론 전기(前記) 반공동맹의 추진에도 치명적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썼다. 이어 “우리는 단호히 일본의 옳지 못한 태도의 시정을 얻음으로써만이 진실로 영원한 양국 친선의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 글에 대해 도서관 측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 동북아 지역의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가 지속하던 시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안보와 국익적 관점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유신 정권에 맞서 일본에서 망명 투쟁을 하던 1973년 4월 친필로 작성한 메모도 나왔다.

메모엔 “일본의 경제력, 팽창 - 재군비, 핵무장 - 대국야욕, 그들은 지배냐 종속 밖에 모른다. 연결될 것인가?”라고 적었다.

일본 <주오공론> 1973년 1월호에 게재한 기고문 ‘조국 한국의 비통한 현실, 독재정치의 도미노적 파급’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의 황폐화를 딛고 일어서 지금의 일본 국가를 건설한 일본 민족의 끈기와 그 생명력, 그리고 성과에 대해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아시아 민주공동체’의 조직을 제안하며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1983년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의 친필 초안에선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을 진행하는 일본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몇 겹으로 닫힌 한·일 양국민 사이의 문을 뜻있는 동지들과의 협력으로 하루 속히 열어젖혀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도서관 제공

도서관 측은 “한·일 사이에서 보편적 가치를 통한 연대를 중시하며 이 기반 위에서 한·일 관계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결국 1998년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라는 성과로 연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 김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서명한 ‘한·일 관계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말한다. 오부치 전 총리는 당시 “일본이 과거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한다”는 표현을 쓰면서 사과했고,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추진 등을 시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도서관 측은 “김 전 대통령의 글들에서 보는 이 같은 인식은 현재 한·일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도서관 측은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 내 컨벤션홀에서 김대중전집 30권 완간 출판 기념회를 하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김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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