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생존자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입력 2019. 8. 14. 09:45 수정 2019. 8. 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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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4일, "부산행 마지막 배"
"사망자 524명 뿐? 최소 2천 명은 죽었다"
"육지 보인다" 소리 직후 '펑' 배 두 동강
개미 떼 같은 사람들 뒤엉켜 아비규환
대형 사고인데 보도 안한 日 대체 왜?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장영도 옹(우키시마호 폭발 사건 생존자)

내일이면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입니다. 우리의 정말 큰 경사인데 그런데 74년 이맘때로 돌아가 보자면 안타까운 의문사가 있었습니다. 해방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있는데요. 바로 우키시마호에 탑승했던 그 사람들입니다. 조금 길 수도 있지만 제가 미리 해설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고요. 일주일 뒤죠. 8월 22일 일본에 끌려갔던 강제 징용자들 또 일본에 살고 있던 교민들. 이분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부산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그 배가 바로 우키시마호입니다. 이 배를 준비하고 타라고 권유한 건 일본입니다. 그런데 부산으로 향한 이 배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나고요. 그 안에 타고 있던 수천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74년이 지나도록 사고의 원인은 오리무중인데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건 단순 사고가 아니다” 라고 애타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묻혀졌었던 그 사건.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이 요즘 다시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으로 한번 그 배를 올려보죠. 육성으로 증언하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존자세요. 장영도 할아버님 연결이 돼 있습니다. 장영도 어르신, 안녕하세요?

◆ 장영도> 안녕하세요.

◇ 김현정>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거죠?

◆ 장영도> 87세입니다.

◇ 김현정> 87세. 그러면 배를 탔던 그 당시에는 나이가?

◆ 장영도> 13살이었죠.

◇ 김현정> 13살 소년이면 그러면 가족 따라서 일본 가셨던 거로군요.

◆ 장영도> 네, 그렇습니다. 이제 해방돼서 기쁨에 들뜨고 있었던 한국 교포들, 강제 징용자들이 부산으로 배를 태워주겠다고 하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죠. 다 환영을 했고. 나중에 이제 이상한 소문 돌기 시작하니까 안 타려고 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아요.

우키시마호 (사진=진상규명위원회 제공)
◇ 김현정> 무슨 이상한 소문이요?

◆ 장영도>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만약 이 배가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배다. 이 배를 타지 않으면 귀국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배에 탄 것이 되고. 때문에 입추의 여지없이 여러 수천 명의 한국인들이 타기 위해서 기다렸던 그런 광경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 김현정> 기억이 나시죠. 지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데 무슨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까?

◆ 장영도> 저는 잘 모르죠. 왜냐하면 어려서. 그런데 나중에 살아서 나온 증언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말을 증언한 사람이 있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상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렸기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지금 생각하니까 아마 이런 폭발 사고와 관련된 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그런 게 돌면서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일본은 이게 마지막 배다, 하면서 막 억지로 태웠다.

◆ 장영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증언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 김현정> 일치하죠.

◆ 장영도> 맞는 말입니다.

◇ 김현정> 몇 명이 탔는지 기억나세요? 어떤 분은 8000명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7000명이라고 하고 어떤 증언자는 1만 2000명이라고도 하고.

◆ 장영도> 그런데 문제는 일본 사람들은 승선자 명부가 없어서 정확한 명수는 모른다. 다만 우키시마호 폭침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524명이다. 그런데 증언한 사람들, 살아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2000명 내지 3000명이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나 수적인 차이가 많아요.

◇ 김현정> 차이가 많죠. 탑승 정원도 원래 그 배의 탑승 정원이 4000명인데 지금 뭐 증언자 중에 최소 증언하는 분 얘기만 들어도 7000-8000명이니까.

◆ 장영도> 승선자가 한 7000-8000명 정도 되고 죽은 사람은 2000 내지 3000명이다. 그렇게 증언을 많이 했습니다.

◇ 김현정> 정원을 훌쩍 넘어서 탔으니까 배 안에 빽빽하게 탔던 그 기억이 나세요?

◆ 장영도> 네.

◇ 김현정> 그렇게 배가 부산을 향해서 출항을 하고 이틀을 갔는데 갑자기 뱃머리를 일본 쪽으로 돌립니다. 부산 가는 항로를 벗어난 거예요. 그리고는 대형 폭발이 벌어지는데 그 당시 상황 혹시 기억나십니까, 할아버님?

◆ 장영도> 기억이 정확합니다.

◇ 김현정> 정확하게 나세요? 어떻게 기억하세요?

◆ 장영도> 그 배에 승선할 때 소위 노약자, 부인들은. 여자와 노약자들은 배 밑에다 태우고 젊은 사람, 남자들은 배 위쪽에다 태웠어요. 어머니하고 누나하고 여동생하고 나는 그때 어렸으니까 배 밑에 타고 아버지하고 형님은 배 위쪽에 탔어요. 그러니까 8월 22일 출항한 이후로 침몰할 때까지 같은 배에 탔어도 따로따로 타고 왔죠. 갑자기 “육지가 가까이 왔다, 육지가 보인다” 라는 소리가 들려서 배에 밑에 있었던 내가 육지를 구경하기 위해서 배 위로 올라오려고 하니까 여동생이 따라오려고 하는 거 따라오지 못하게 했어요. 만약에 그때 여동생이 나 따라왔으면 혹시 살았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어머니가 위험하니까 올라가지 말아라 하는 거 어머니 말 듣지 않고 갑판 위로 올라왔어요.

◇ 김현정> 나오신 거군요.

◆ 장영도>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겠죠.

◇ 김현정> 그렇게 되네요.

◆ 장영도> 그리고 갑판 위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냥 펑 하는 소리가 났어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배가 그냥, 그 큰 배가 두 동강으로 딱 쪼개졌어요. 그런데 만약에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서 배가 파손됐다면 앉아 있던 내가 앞이나 뒤로 넘어져야죠. 그런데 물로 딱 떨어졌어요. 그리고 모든 살아나온 증인들 말에 의하면 물기둥을 봤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 김현정> 없습니까?

◆ 장영도> 그것은 결국 무엇인가 하면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서 폭파한 것이 아니고 배 내부에서 폭파시켰다고 하는 것이 증명이 되는 거죠.

◇ 김현정> 내부 폭발로 보인다 이 말씀이시고. 그거 말고도 사실은 내부 폭발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배가 폭발하기 전에 배에 탔던 일본인 승무원들 중에 고위층은 작은 배를 타고 이미 떠났었다면서요?

◆ 장영도> 맞습니다. 그것은 고위층이 누군지는 잘 몰라요. 갑판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 구명보트가 내려와요. 구명보트가 내려와서 구명보트에 사람이 몇이 타고 구명보트가 막 모선을 출발하자마자 펑 하고 터졌어요.

◇ 김현정> 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우키시마호를 인양을 합니다. 수년 뒤에 인양을 하는데 수년 뒤에 인양을 하고 나서 보니까 배의 모양이 밖에서부터 뭔가에 의해 공격 당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이렇게 펼쳐져 있는 모양. 이 모양들을 봤을 때도 내부 폭발임을 의심하게 하는 이랬다는 증언들도 있더라고요. 게다가 바로 그걸 다 없애버렸어요. 파편들을 없애버려서 지금은 사실은 남아있지도 않은 이런 상황. 아무튼 그 당시 폭발이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됐을 텐데 그 장면도 기억나십니까?

◆ 장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나죠.

◇ 김현정> 어땠습니까?

◆ 장영도> 폭발함과 동시에 살기 위해서 배 밑에서 갑판으로 다 올라올 거 아닙니까? 왜냐하면 폭발과 동시에 바로 침몰한 것은 아니니까. 보니까 이제 갑판 위에 그야말로 참 개미떼처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갑판에 있었는데 그 갑판이 배가 한가운데로 딱 잘라지니까 배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판에 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배가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뒤집어지면 다 죽으니까 물에 다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배가 파손되면서 등유가 한 10cm 정도로 두껍게 깔렸어요.

◇ 김현정> 기름이.

◆ 장영도> 그럼과 동시에 사람은 사람대로, 짐은 짐대로 등유 깔려 있는 바다에서 그냥 말처럼 아비규환 그대로죠.

◇ 김현정> 그렇네요.

◆ 장영도> 그러니까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한번 물에 빠졌다가 올라오면 얼굴에 등유가 묻어서.

◇ 김현정> 기름 범벅.

◆ 장영도>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고.

◇ 김현정>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

◆ 장영도> 서로 또 엉켜가지고 수영 칠 수 있는 사람이나 수영 못 치는 사람들이나 서로 잡고 엉켜가지고는 뛰어내렸던 사람들은 거의 즉사했어요. 그 광경을 제가 지금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기름이 다 유출이 돼서 시커먼 기름이 10cm 두께라고 지금 기억하세요. 그 정도로 돼 있는 곳에 사람들이 일제히 갑판에서 뛰어내리니까 서로 머리 누르고 그 위로 올라서고 한 번 바다에 빠졌다 얼굴 들면 기름범벅이 되어 있어서 눈도 못 뜨고 이러면서 익사한 사람들.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육지까지 오셨습니까?

◆ 장영도> 배가 기우려고 하는 그 순간 다 뛰어내리니까 나도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딱 잡아요. 보니까 이제 아버지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뒤에서 나를 보고 뛰어내리면 죽는다, 서로 엉켜가지고 죽는다. 그러니까 그냥 죽어도 여기 가만히 있자 하고 아버지가 잡고 있어서 뛰어내리지 못했는데 그런데 그 무렵에 일본 사람들이 소위 노 젓는, 조그만 고기 잡는 배 있잖아요. 동네 사람들이 노 젓는 배.

◇ 김현정> 어민들이.

◆ 장영도> 거기 타서 살아남았어요.

◇ 김현정> 세상에, 그러면 아버님하고 우리 선생님하고.

◆ 장영도> 저하고 아버지하고 둘이만 살아남았어요.

◇ 김현정> 둘 살아남고 동생하고 어머니 소식은 모르고.

◆ 장영도> 전혀 찾지 못하고 그러고 이제 한 이틀 지난 이후에 배에서 침몰했던 짐이나 혹은 시체가 해변가로 떠내려온 것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가서 일일이 시체도 찾는다고 시체를 갖다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어머니를 찾고 다녔던 그것을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찾지 못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해서 우키시마호에서 돌아가신 분이 한 2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지금 알려져 있는데 일본이 발표한 건 겨우 524명입니다. 우리 생존자들이 주장하는 것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게다가 배를 인양한 것도 8년이나 지난 뒤에. 그것도 인양하자마자 고철로 팔아 넘깁니다. 지금 남아 있는 증거도 없습니다. 블랙박스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뭔가를 밝히기 위해서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가셨었다면서요.

◆ 장영도> 맞습니다.

◇ 김현정> 거기에 탑승자로써 마음에 짚이는 게 있으실 텐데 이게 누구 짓이라고 생각하세요.

◆ 장영도> 일본에서 주장하는 524명만이 죽었다고 해도 대재난 사고죠, 그렇죠?

◇ 김현정> 대형 사고죠.

◆ 장영도> 그런데도 당시 우키시마호 사건 증언에 대한 보도는 전 일본의 많은 신문, 일본의 라디오 단 한 마디, 단 한 글자도 발표가 안 됐어요. 그런데 저희 선친께서 부산으로 상륙하자마자 이 사실을 고발을 했어요.

◇ 김현정> 그게 증언이군요, 최초 증언.

◆ 장영도> 거기에 아버지가 증언한 내용이 처음으로 기사화돼서 발표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이 어떤 저의가 있으니까 이것을, 매스컴을 통제한 것이지.

◇ 김현정> 숨기지 않았겠느냐.

◆ 장영도> 그 저의가 업었다고 하면 이 큰 재난사고를 갖다가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미군의 기뢰였다면 더더욱 보도를 했었을 텐데. 그걸 숨길 이유가 없는 것인데.

◆ 장영도> 일본에서는 보도 자료를,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 아니네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여러분. 우키시마호 사건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고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 이 세상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또 곧 영화도 개봉이 됩니다. 이러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 이 문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할아버님, 이렇게 생생하게 증언하실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시더라고요. 건강 잘 지키시고요.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왜 우리 가족은 그런 죽음을 맞아야 했는지 이게 알려지기 위해서라도 건강하십시오.

◆ 장영도>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 장영도> 수고하세요.

◇ 김현정> 13살에 우키시마호에 탑승했었던 생존자입니다. 이제 이렇게 생생하게 증언하실 수 있는 분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계신 분 장영도 옹이었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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