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김구는 보수우파..좌파가 교란한 정체성 복원하라

박보균 입력 2019.08.15. 00:03 수정 2019.08.1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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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게으른 현대사 접근 탓에
'김구의 역사 매력' 좌파가 낚아채
극좌파, 그걸 '이승만 비난'에 활용
보수는 백범의 상징자산 되찾아야

8·15 광복절 긴급 명령, 김구의 진실을 찾아서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기념관’ 전시실에 걸려 있는 김구 초상화(박학성 화백, 2002년 작). [사진 박보균 대기자]
김구는 장엄하다. 그 서사적 풍경은 독보적이다. 거기에 항일독립·통일·자유·민주주의·민족주의가 그려져 있다. 그것들은 김구의 상징과 이미지로 작동한다. 화폭에 시대의 비원(悲願)이 담겼다. 민족의 한(恨)도 서린다. 김구는 그렇게 역사를 연출했다.

김구는 역사를 기록했다. 『백범일지(白凡逸志)』는 압도적이다. 항일독립사는 그 자서전을 우회할 수 없다. 그는 김일성을 만났다. 1948년 4~5월 평양 남북정치협상 때다. 그는 언론에도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내가 평양을 떠나는 날 金日成氏(김일성씨)다려
「오늘 曹先生(조선생)을 다리고 가고 싶으니 갓히 가게 해주구려!」

햇더니, 김일성씨는 우스면서
「아! 제 마음이야 얼마든지 갓히 가게 해드리고 싶습니다마는 어듸 제가 무슨 권한이 있어요? 주둔군 당국의 양해가 있어야 됨니다」

하였다. 나는
「그대들의 권한이 그뿐인가? 그래서야 어듸 自主政權<자주정권>인가?」

하며 농담하엿다.” 이 내용은 잡지 『삼천리』(1948년 9월호)의 ‘김구 선생 회견기’다. (도진순 주해 『백범어록』)

‘씨, 그대들’ 표현이 돋보인다. 김일성은 38선 이북의 권력을 장악했다. 주둔군(소련군)은 김일성을 조종했다. ‘조선생’은 조만식(曺晩植). 그는 반탁(反託, 신탁통치 반대)을 외치다 구금됐다.

김구의 기억은 절묘한 폭로다. 김일성의 응수는 능청맞으면서 초라하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은 무오류(無誤謬)의 전지전능이다. ‘위대한 수령’의 한심한 처지가 기록되다니. 그 기사는 잊히거나 은폐됐다. 그 증언은 극렬 좌파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김구는 공산주의자들을 경멸했다. 그의 반공·반탁은 우파적 가치다. 그 깃발은 우남(雩南) 이승만과 함께 들었다. 그것은 경험의 산물이다.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주석 시절이다. 공산주의 계열은 그를 괴롭혔다. 그는 그것을 ‘좌익 소아병자의 파괴 행동’으로 회고했다. 임정은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다.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김구의 보수·우파적 통찰은 ‘자유’에서 선명하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백범일지』)

해방정국의 신탁통치 반대 전국 집회에서 연설하는 김구 선생. [사진 박보균 대기자]
그는 단언했다.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북한은 소련의 위성국가로 출발했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자유’를 회피한다. 학교 교과서에서 실감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지고 있다. 그 생략은 김구 이념에 대한 모욕적 도발이다.

김구의 제단은 풍요롭다. 보수·진보, 좌·우파 모두가 찾는다. 현장은 좌파 사람들로 붐빈다. 김구 서거 70주년 추도식(6월 26일)도 그랬다. 거기에 ‘여운형 숭배자’들도 참석했다. 여운형은 해방정국에서 임정을 헐뜯었다. “임정은 파벌 싸움에다 무능무위한 사람들뿐, 임정은 안전지대로 몸을 피하고.” 그들의 김구 추앙에는 어색한 위선이 엿보인다.

추도식에 ‘김원봉 추앙자’도 있다. 김원봉의 의열단 독립운동은 뚜렷하다. 그는 장기간 임정을 깔아뭉갰다. 그는 6·25 남침 대열에 섰다. 거짓 소문이 퍼져 있다. “일제가 김원봉(100만원)에게 김구 선생(60만원)보다 높은 수배 현상금을 걸었다.” 이 중 ‘김구 60만원 수배’만 사실이다.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김형오(전 국회의장) 회장의 정리는 명쾌하다. “우리 연구팀에서 사료들을 추적하고 뒤졌다. 김원봉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100만원 현상금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 현상수배는 긴장과 호기심을 낳는다. 그 이야기는 영악한 가짜 뉴스다. 문재인 정부의 ‘김원봉 찬가’는 끈질기다.

김구의 신념은 “통일 없이 독립 없다”다. 그것은 본능적 절규다. 접근 자세는 용의주도했다. 그의 ‘화평통일(和平統一)의 길’은 이렇다. “우리가 남북협상을 하자는 것은 공산주의자로 하여금 민주정치 제도를 접수하고, 또한 폭력으로서 이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보기 위한 것이다.” 새한민보(1949년 7월)에 실린 김구의 유고(遺稿)다. (도진순 『백범어록』)

백범은 허술한 통일지상주의를 배격한다. 그 방식은 좌파의 무턱댄 ‘우리 민족끼리’를 거부한다. 김구는 민족주의의 원형이다. 그 지평은 개방이다.

김구의 시야에 진보·좌파적 이념은 거슬린다. 하지만 좌파 진영 사람들은 백범에게 몰려간다. 왜 그럴까. 광복회 출신 이성운(전직 교사)씨는 이렇게 진단한다. “우파 대다수의 역사의식이 치열하지 못하고 게으른 탓에 백범을 좌파에게 빼앗겼다. 1류 좌파의 존경심은 순수한 데가 있지만, 3류 극좌파는 역사전쟁에서 백범을 이용하고 있다.”

좌파는 김구의 매력적인 상징 자산에 주목했다. 김구의 언어는 울림이다. 좌파는 그 말의 영향력에 착안했다. 좌파세력은 그것을 낚아채고 소비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극렬 좌파의 현대사 교란은 집요하다. 목표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해체, 주류(主流) 역사관의 교체다. 초점은 ‘이승만 망가뜨리기’다. 이승만의 승부수는 반공과 단정(單政·단독정부)이다. 1946년 초반 북한은 김일성 체제로 평정됐다. 사실상 북한의 선(先) 단정 수립이다. 이승만은 결심했다. “남한이라도 소련의 공산화 음모·야욕에서 벗어나야 한다(46년 6월 정읍).” 이승만의 정부 수립(48년 8월 15일)은 불가피한 결단이다. 그것은 위대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극좌 역사가들은 그것을 반(反)민족·반통일로 꾸민다. 이를 위해 ‘단정 거부의 김구’를 투입한다. 그것으로 이승만에 대한 환멸을 지어낸다. 친일파 논란도 왜곡이다. 이승만 정부의 첫 내각은 항일지도자들로 채웠다. 이시영(부통령)·이범석(국무총리)은 임정 출신이다. 공산주의 경력의 조봉암(농림장관)도 독립투사다.

김구는 남북한 양쪽의 단정 움직임에 저항했다. 그 완강함에 유연함을 섞었다. 1947년 12월 1일, 그의 성명은 획기적이다. “소련의 방해가 제거되기까지 북한 의석을 남겨놓고 선거하는 조건이면 이승만 박사의 단독정부론과 내 의견은 같은 것이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백범전문가다. 그의 묘사는 긴박하다. “마침내 백범은 이승만과의 합작의 길로 들어서고. 우익 진영의 합동작업이 본격화될 기세였다. 그러나 하루 사이(12월 2일)에 결정적 장애물이 등장했다.”

그것은 한민당 중진 장덕수 암살사건이다. 그 반전(反轉)은 역사의 시기심인가. 두 사람의 합작은 무산됐다. 미 군정의 경찰은 김구를 암살 배후로 의심했다. 김구는 억울했고 분개했다.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후부터 공세적인 단정 반대 성명이 나왔다. 49년 백범의 비극적 죽음은 분노를 일으킨다. 이승만 정권 내 극단 충성분자들 소행이다.

과격 좌파의 현대사 비교 프레임은 ‘김구 찬양, 이승만 매도’다. 우파의 반응은 대체로 단순, 반사적이다. 그 방식은 ‘김구의 단정 반대 비판, 이승만의 우월성 부각’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극좌파의 교묘한 함정에 갇힌다. 두 사람 사이의 미움은 커진다. 극좌가 노리는 반목의 악순환에 빠진다.

이승만과 김구는 애증(愛憎)의 관계다. 그중 ‘형님, 아우님’으로서의 협력이 대부분이다. 손세일의 ‘두 명의 건국 아버지론’(『이승만과 김구』)은 인상적인 결말이다. “두 위인의 공통점이 대한민국 건국의 바탕이다. 그것은 항일독립, 반공반탁, 보수우파 민족주의, 기독교 믿음이다.”

김구에 대한 존경은 좌우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그의 이념적 정체성은 어수선하다. 신복룡(전 건국대 석좌교수) 박사의 제안은 정곡을 찌른다. “진실로 김구를 숭모하는 사람이라면 자칭 진보라는 좌파들로부터 김구를 구출해야 한다.” (『해방정국의 풍경』)

자유 우파는 김구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김구의 말과 상징, 어젠다를 탈환해야 한다. 보수는 김구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정돈해야 한다. 그것으로 이승만과 김구의 역사적 화해가 이뤄진다. 그런 전략적 투지가 역사전쟁의 승리를 보장한다. 그것이 2019년 8·15 광복절의 긴급 명령이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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