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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 팔레스타인人 쫓겨난 집터에 나비만 날아드네

김양균 입력 2019.08.15. 15:25 수정 2019.08.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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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의 현장보고] 팔레스타인 르포.. 분리된 삶, 부서진 꿈①

[편집자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한 복판, 베들레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지역 모처. 무슬림의 저녁 기도를 알리는 이국적 음률이 아련했다. 수십여 년 간의 갈등이 수일간의 기록에 담길 리 만무하겠지만, 부산을 떨어볼 뿐. 연재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전반부는 오랜 세월 탄압과 차별을 받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이며, 후반부는 이팔 갈등이 초래한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동의 인권침해 및 보건의료 실태이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로부터 온 이방인은 또 다른 세계의 분쟁지역을 기록하며 묻는다. 일상화된 폭력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취재는 엔지오 사단법인 아디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팔레스타인=분쟁지역’으로 인식한다. ‘분리장벽’이 상징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자행된 지 70여년. 그간 각종 미디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분쟁’으로써 공격을 바라본 까닭이다. 때문에 우리의 눈에 팔레스타인은 그저 ‘못살 놈의 땅’과 다름없다.  

‘못살 놈의 땅’,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은 신문지상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각종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거주의 자유나 교육받을 권리, 마실 물조차 제한된, 그래서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그 원인을 그들을 가둔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 이스라엘의 만행으로 여긴다. 현장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의 분노가 오롯이 이스라엘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치밀한 옭죔과 공격을 감안하면, 못살 놈의 땅이란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틀린 나머지 반은 무엇일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떠났다. 

◇ 과거 번화 온데 간데 적막·긴장만

“잠시 후 저희 비행기는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13일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중국 베이징과 우루무치를 지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건너, 이란의 테헤란 상공을 날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오후 9시께(현지시각) 도착했다. 비행기가 멈춰서고 휴대전화를 켜자마자 날아온 문자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서안지구는 특별여행주의보(철수권고) 발령….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지속, 위험지역 방문자제, 다중밀집지역 신변안전 유의.” 

기내가 부산해졌다. 성지순례를 위한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기자도 이들처럼 여행자를 가장해 이곳에 왔다.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은 입국 심사가 염려되었지만, 입국 대기열이 붐빈 탓에 비교적 수월한 심사를 받고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로 이동했다.  

이튿날 헤브론을 방문했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 남부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고대로부터 번성해 온 도시다. 팔레스타인 최대 도시이자,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이지만,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다. 헤브론 올드시티는 적막함과 긴장감이 함께 들어 기묘함마저 느껴졌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이스라엘 정착촌이 갈등의 진원지다.

지난 1997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정부는 ‘헤브론 조약’을 맺고, 헤브론을 ‘H1’과 ‘H2’의 두 지역으로 나눴다. H1은 팔레스타인 구역, H2는 이스라엘인 구역이다. 구도심지와 이브라힘 사원은 H2에 포함시켰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팔레스타인 주민은 12만 명이었던데 반해 유대인 정착민은 450명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인 구역조차 팔레스타인 거주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피점령지에 점령국 주민 이주는 제4차 제네바 협약에 반하는 불법행위이다. 때문에 헤브론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 내 곳곳에 조성됐거나, 진행 중인 이스라엘인 지역은 ‘불법 정착촌’으로 불리운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그들의 뿌리인 ‘아브라함의 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원 거주민인 팔레스타인인에게 재산권 증명을 요구, 이를 증명치 못하면 재산을 몰수했다. 재산 증명을 위해서는 적잖은 비용과 까다로운 과정, 시일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애당초 거주민을 몰아내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주장이다. 

이곳의 이스라엘 정착민은 극단주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자체 무장도 가능하다. 동행한 아디의 이동화 국제활동가는 “활동가에게조차 침을 뱉고 위협하는 등 정착민의 폭력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H2 지역에는 이스라엘군이 주둔해 있다. 군도 이곳의 긴장도를 끌어올리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본격적인 팔레스타인 지역 진입로부터 인적이 한산해졌다. 허름한 차림의 청소년이 다가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었다. 대꾸하자 이내 그는 아랍어로 무어라 떠들며 손을 내밀었다. 말 속에 “헝그리”, “헬프” 등으로 짐작컨대 적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적선을 위해서든, 물건을 팔기위해서든 도처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은 퍽 호의적이었다. 촬영 중인 기자를 보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아이들도 부지기수.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통행로는 다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다. 전통시장 곳곳 H2로 이어지는 통로는 모두 봉쇄돼 있었다. 누군가 페인트로 다음처럼 써놓았다. “Make love, Not walls.” 흡사 폭격이 있었던 듯 부서진 건물이 도처에 즐비했다. 아무렇게나 쌓인 쓰레기는 악취를 풍겼다. 이날은 ‘이드 알 아드하’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드 알 아드하는 무슬림이 성지순례 이후 갖는 사흘간의 축제기간이다. 시장에서 축제의 흥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오가 가까워 태양은 작열하는데, 시장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뚫린 천장을 철조망과 판넬 따위로 막아둔 까닭이다. 2002년부터 이스라엘 정착촌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전에 1층은 상인들이, 2~3층은 이스라엘인이 거주했다. 팔레스타인 상인과 행인을 겨냥해 각종 오물을 투척하며 위협하는 통에 천정을 막아둔 것이었다. 녹슨 철조망을 뚫은 햇빛에 먼지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 터전 지키는 이유, 저항의 의미로도

H1을 관통해 다시 H2를 지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 나왔다. 회전 철문을 통해 이스라엘 구역으로 이동하자 기관총을 멘 군인이 출입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척에 ‘알이브라힘모스크’가 있었다. 이곳은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모두의 성지다. 이곳은 아담·이브, 아브라함·사라, 이삭·레베카, 야곱·레아의 매장지로 알려져 있다. 

군인이 기자 일행에게 손짓을 하며 사원 출입을 허락했다. 기자보다 먼저 도착한 한 무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 명씩 신분증 확인을 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사원 내부도 일부 막혀 있었다. 과거 한 유대교도가 기도 중인 팔레스타인인을 향해 총기를 무차별 난사,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취해진 조치라고 했다.

“저기 보이는 선물상점은 팔레스타인인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나가라’는 요구를 받고 있지만 저항하기 위해 끝까지 터전에 머무는 것이죠.” 사원 앞의 자그마한 상점을 가리키며 이 활동가가 설명했다. 

이날 H2 지역에는 전 세계에서 온 유태인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전 세계 유태인 커뮤니티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무리지어 이곳을 방문한다. 그들 주위로 수십 명의 군인이 보였다. ‘보호’를 위해서다. 앞선 팔레스타인 전통시장을 방문할 때도 여행객보다 더 많은 군인이 이스라엘 그들은 호위한다. 흰 모자를 쓰고 “어메이징”을 연발하는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자니, 불어 억양이 섞인 한 남성이 다가와 위협적인 어조로 “NO”라고 말했다. 개의치 않자 무어라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떴다. 

이곳에는 여전히 일부 팔레스타인 원 거주민이 산다. 앞선 기념품 상점 주인처럼 터전을 지키는 것은 이들에게 주거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의미다. 그날 거주민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도처에 널린 텅 빈 건물은 관리되지 않고 방치돼 있었다. 주인 잃은 집터에는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잡초 사이로 핀 들꽃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황량한 H2 지역을 관통해 철문을 나오자, 갑자기 사방에서 온갖 소음이 날아들었다. 각종 상점과 인파, 차량으로 가득한 팔레스타인 지역이었다. 몇 발자국 걷다 돌아보니 두터운 철문과 돌로 지어진 사격 초소가 위압적이었다. 그 너머의 적막은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헤브론=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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