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야 고향으로..국내 징용자 118명의 '한'

양현승 2019. 8. 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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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일제 강점기 해외로 강제 징용됐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법원의 배상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국내 징용 피해자들은 여론이나 도움의 손길이 적습니다.

'옥매 광산' 징용 피해자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더욱 그런데요.

양현승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전남 해남군의 바닷가 선착장.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광물창고가 여전히 건재해 있습니다.

건물 뒤편 옥매산에서 파낸 명반석을 일본행 배에 싣기 전 거쳤던 곳입니다.

[박철희/옥매광산 희생자 유족회장] "이 건물 자체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광석을 착취한 수난의 역사가 담겨있는 건물이잖아요."

명반석은 군수품에 쓰이는 알루미늄의 재료.

옥매산에 매장된 명반석 채취에는 최대 1천 명 넘는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됐습니다.

1945년 봄에는 제주로 끌려가 진지를 건설하는 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해 8월,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지만 배는 화재로 침몰했고, 일본군이 구조를 외면하면서 220여 명 가운데 118명이 수장됐습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진상규명은 74년째 길이 없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유명을 달리해 이제 90대 할아버지 1명만 남았습니다.

해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배상 판결을 받고 있는데도, 국내 강제 징용에 대해선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게 피해자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박철희/옥매광산 희생자 유족회장]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도 회복해야 하고 사죄도 받아야 하는데, 우리 유족 입장에서는 누구한테 받아야 할 지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한 마디로."

옥매광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추모시설은 지역민들이 십시일반 세운 이 조형물이 전부입니다.

피해자 후손들은, 배상은 제쳐두고라도, 일제가 옥매산에 남긴 광물창고 같은 현장을 근대 문화재로 지정해 적어도 "잊지는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유지여서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MBC뉴스 양현승입니다.

(영상취재: 고재필(목포))

양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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