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홍콩.."중국군 진입하면 한국 광주항쟁 재연"

박성훈 2019. 8.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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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중국 개입설 속 내일 대규모 시위 예고
불안한 눈빛 여대생 "중국 들어오면 자유 사라져"
시위대 휩쓴 홍콩 공항엔 승객 외엔 전면 출입금지
중국 선전에 집결한 중국 군용 차량. 선전과 홍콩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연합뉴스,구글]

중국의 무력개입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홍콩. 홍콩과 10분 거리라는 중국 선전(深圳) 스포츠센터엔 군용차량 수백대가 들어와 있다. 선전은 홍콩과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최접경지다. 두 지역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선전만(深圳湾)대교다. 선전 스포츠센터에서 다리까지는 불과 3.3㎞떨어져 있다.
16일 선전만대교. 4.4km 길이 다리만 건너면 곧바로 중국이다 [박성훈 기자]

16일 오후, 선전만 대교로 향했다. 총 길이 4.77㎞. 시속 60㎞로 달린 택시는 5분 만에 홍콩을 지나 중국에 도착했다.
홍콩-중국 최접경지 선전만출입국사무소. 차량이 검문을 받고 있다. [박성훈 기자]

이곳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려면 선전만출입국사무소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곳을 오가는 중국인과 홍콩인들을 만났다. 너도 나도 중국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했다. 중국 정부의 개입은 홍콩인들에겐 ‘파국’이나 다름없다는 불안감이 숨겨져 있었다.

홍콩에서 선전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40대 남성은 검문소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시위대 여부를 확인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 개입 여부에 대해 묻자 “중국이 홍콩에 군대를 보내진 않을 것이다. 만약 중국군이 진압하러 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한국 광주항쟁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삼성에서 일한 적이 있어 한국을 잘 안다면서다. “중국군이 들어올 가능성은 낮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고도 말했다.

박성훈 기자

또 다른 홍콩인 링씨는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현재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는 50대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열망을 표출하는 시위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링씨도 “중국 개입 가능성은 낮다.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 정부가 개입하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입국 사무소를 오가는 중국인들은 대체로 답변을 피했다. 20대 한 남성은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밝힌 뒤 현 상황에 대한 중국인들의 판단을 묻자 미안하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관광객인 50대 여성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려 하자 일행인 남성이 다가와 “정치엔 관심없다”며 함께 사라졌다.


“중국 개입하면 전쟁 상황 될 것”

취재에 응한 중국인 장(张)씨가 소신껏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부의 입장과 국민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면서도 “중국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장씨는 “그렇게 되면 중국 군대와 홍콩 시민이랑 싸우게 될 것”이라며 “전쟁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천안문 사태를 ‘6ㆍ4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는 “6ㆍ4 사건'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중국인의 시각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군이 선전에 있는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당연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2시간 후 중국 선전과 홍콩이 맞닿아 있는 홍콩 웨스트카오룽 고속철역(西九龍高鐵站). 이곳 역시 시위대가 중국인들에게 홍콩 상황을 알리겠다며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이날은 일단 조용했다. 고속철 역사의 직원은 “검문 등 특이점은 현재 없다”고 했다.

중국-홍콩 접경지, 웨스트카오룽 고속철역 [박성훈 기자]

오는 18일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경찰의 무력 진압과 시위대의 강경 대응이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면서 이날 시위는 홍콩 사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개입 여부도 판가름날 수 있다. 그래서 폭풍전야의 홍콩은 겉으론 평화로운 분위기지만 내부에선 강한 불안감도 감지되고 있었다. 시내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시위대의 주장과 시위 필요성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불안하다”며 “사태가 더 심각해져 만에 하나 중국 중앙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체제가 무너진다. 홍콩에서 자유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은 현재 홍콩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홍콩행 승객 계속 줄고 귀국편은 만석”

앞서 16일 오전 8시 인천발 홍콩행 대한항공 KE603편. 기내가 휑하다.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인데 좌석이 텅 비었다.

16일 오전 인천발 홍콩행 대한항공 기내. 좌석이 텅 비어 있다[박성훈 기자]

이코노미 좌석 수는 총 244석. 한 승무원은 이날 66명(27%)이 탔다고 했다. 그는 “어제도 80% 정도가 탔다. 원래 이 시간대가 늘 만석이었는데 갈수록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홍콩에서 출발해 인천으로 들어오는 항공편은 만석이라고 한다. 11주째 이어지는 시위의 여파다. 관광객의 불안감이 반영되고 있었다.


홍콩 국제공항 반쪽짜리 평화

홍콩 국제공항은 표면적으론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경찰은 많지 않았다. 시위대도 물론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반쪽짜리 평화였다.

위는 지난 8월 12일 홍콩 공항. 시위로 인해 수백 편의 항공편이 결항됐다. 아래는 16일 오후 홍콩 공항 모습. [로이터=연합, 박성훈 기자]

공항 외부에서 출국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공항 경찰들은 한 명 한 명 모두 여권과 비행 예약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공항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니면 공항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줄서 있는 사람들. 항공권 예약 서류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박성훈 기자]

공항에 지인을 마중나온 홍콩 시민들조차 공항 내에 들어갈 수 없다. 홍콩 공항 내에는 오로지 항공기 이착륙 승객만 있었다. 공항 경찰은 “2일 전부터 새로 시행된 조치”라며 “불편하더라도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인을 마중 온 시민들도 공항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박성훈 기자]

공항 외부에서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통로 4개 중 2개도 진입금지다. 양쪽 끝 진출입로가 막혔다.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기자와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관계자 역시 공항 내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공항 주차장까지 나가 만날 수 있었다. 홍콩 공항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다.
홍콩 공항 출국장 통로 4곳 중 2곳이 여전히 폐쇄중이다[박성훈 기자]

한편, 18일 집회 주최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홍콩 경찰이 집회는 허가했으나 행진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거리 행진을 진행할 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으며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집회 측이 거리 행진을 강행할 경우 또 한번 대규모 충돌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홍콩 반정부 시위 상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홍콩=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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