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막는 '제로에너지 건축'

주영재 기자 입력 2019. 8. 1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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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건물의 냉난방 전기사용 줄여야 온실가스 줄고 도시의 더위도 식혀

서울 노원구의 에너지제로주택 ‘노원이지하우스’의 102동 외관에 태양광 패널이 붙어 있다. / 주영재 기자

“우리는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를 1.5도 낮춰야 하는 신기후체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이고 생활하는 건물에서 가능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지름길입니다.” 지난 8월 14일 오후 2시, 36도에 육박한 찜통더위 속에 찾은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노원이지(EZ)센터. 2017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제로에너지 주택단지 ‘노원 이지하우스’의 홍보관인 이곳에서 제로에너지 리더 홍순화씨가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일이 왜 중요한지 강조하며 안내를 시작했다.

홍씨는 외단열 방식부터 3중 창호, 열교(열이 빠져나가는 길) 차단기술, 열차단 블라인드 등 이지하우스에 적용된 단열·기밀 기술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기존 주택은 단열재가 콘크리트 벽 안쪽에 있어서 바깥 온도 변화에 따라 콘크리트가 수축·팽창해 금이 가거나 결로가 생깁니다. 반면 제로에너지 주택은 콘크리트가 외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단열재가 감싸고 있어서 냉난방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열회수형 환기장치를 특히 강조했다. “겨울철(여름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오염된 공기도 나가지만 안의 열기(냉기)도 같이 빠져나갑니다. 추워서(더워서) 보일러(에어컨)를 켜면 또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죠. 그래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때 나가는 공기와 섞이면서 열을 교환해주는 열회수형 환기장치는 패시브 하우스에서는 ‘심장’이라고 할 정도로 필수적입니다.” 열회수형 환기장치와 지열(지하 160m에서 끌어올린 15도C의 물)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 덕분에 에어컨 등을 가동하지 않아도 겨울철 20도, 여름철 26도의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 내년부터 단계적 의무화

홍씨의 설명대로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일은 지구온난화를 막는 관건이다. 지구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2%에 불과하지만 전체 탄소 배출량의 80%가 여기서 나온다. 도시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건물에 쓰인다. 서울시의 경우 전력 사용량의 83%가 건물에 쓰인다. 이는 서울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56.8%에 이른다.

더위는 에어컨 사용을 늘리고 이는 다시 지구온난화를 재촉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이 ‘제로에너지 건축’이다. ‘제로’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단열·기밀 성능을 강화해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패시브 기술’(이것만 잘해도 냉난방 에너지를 최대 60% 이상 줄일 수 있다)과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액티브 기술’을 적용해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과 생산량의 차이를 최소화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제로에너지 건축 인증제도에 따르면, 이때 그 차이가 ‘제로(0)’가 될 경우 즉 건물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양과 생산하는 양이 같아 에너지 자립률 100%를 달성할 경우 1등급을 받게 된다. 20% 이상~40% 미만일 경우 가장 낮은 5등급을 받는다. 냉난방·온수·조명·환기 외에 건축적으로 절감하기 어려운 취사·콘센트 에너지는 소비량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다. 1등급을 받은 이지하우스의 경우 에너지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더 많으면 일부를 콘센트·취사 에너지에 사용하거나 한전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입주를 시작한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 아파트는 국내 최초의 고층형 제로에너지 공동주택이다. 5등급을 받았는데 기존 공동주택 대비 약 절반 정도로 에너지 소비량을 줄였다. 취득세·용적률(전체 대지면적 대비 바닥면적의 합산 비율) 완화 등 지원책으로 분양가를 주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제로에너지를 위한 공사비는 표준건축물 대비 10~20% 정도 더 든다. 하지만 도심의 경우 땅값이 비싸 공동주택의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정철 현대건설 디지털건설팀장은 “용적률을 5% 추가로 허용받으면서 대형 평형을 늘려 공사비가 늘어난 만큼을 충당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공공기관 발주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제로에너지 조건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1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제로에너지 건축은 2020년 연면적 1000㎡ 이상의 공공건축물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2030년에는 연면적 500㎡ 이상의 모든 건축물로 확대된다. 국토교통부 녹색건축과 관계자는 “공공부문이 선도해서 제로에너지 시장을 확산하고, 2025년부터 민간에 도입될 때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양산기술 개발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더위 식히는 ‘기술’들 속속 현장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도시의 더위를 식히려면 건물의 단열 성능을 높이는 것과 함께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의 경우 센강에서 끌어올린 찬물을 지하 파이프로 보내 루브르 박물관 냉방 등에 활용하고 있다. 심홍석 에너지공단 건물에너지실 과장은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타워도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지열은 안정성과 위험관리 차원에서 비용이 많이 들어 태양광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차양 일체형 창호와 ‘ㄴ’ 자 형태로 만들어져 반사되는 태양빛을 재활용하는 구조의 ‘양반사 다기능 태양광 패널’의 현장 적용 시험을 진행 중이다. 500~1000가구 규모의 공동주택을 1등급으로 만들기 위한 기본설계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조동우 박사는 “기존 패시브 기술과 액티브 기술을 기본적으로 달성하고 옥상은 물론 각 세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1등급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제로에너지를 확대하는 흐름은 강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제로에너지 건물을 2020년부터 의무화하겠다고 선언했고, 독일은 공공부문에서 ‘플러스 에너지’ 건물까지 시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세종스마트시티와 부산의 에코델타시티 등이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시 공간의 한계 때문에 공원이나 자전거 도로 위, 도로 방음벽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울 마포도서관의 경우 벽면에 일반 벽면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질감의 벽면 일체형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주목받는 공간은 옥상이다. 서울시는 2017년 ‘태양의 도시, 서울’을 선언하고 공공건물 옥상이나 가구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2022년까지 원전 1기 설비용량인 1기가와트(GW)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8월 13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혁신파크포럼’에서 ‘태양광발전 기반 소규모 분산자원 거래 실증’ 사업을 소개한 서울에너지연구소 신인재 책임연구원은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유럽옥상네트워크’가 꾸려져 지역주민들이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만든 전기를 거래하는 커뮤니티가 많이 만들어졌다”며 “태양광 발전 확대 외에 도심 복사열을 차단하는 가로수나 녹지도 최대한 많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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