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톺아보기] 생계형 적합업종 대신 상생협약으로 쏠리는 무게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추진됐지만
외려 '상생협약'에 시선 쏠리고 있어
'최후의 수단'으로 기능할거란 분석도
지난해까지 대한제과협회 등에서 제과점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생계형 적합업종에 들어서는 대신 대·중견기업과의 상생협약을 도모하는 소상공인 단체가 더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올해 초 음식점업이 상생협약을 체결한 선례가 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애초에 생계형 적합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대체할 거라는 기대가 나왔던 것과는 다르게 양상이 흘러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상생협약이 사실상 기존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대체하고 생계형 적합업종은 소상공인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는 쪽으로 ‘이원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지난 2016년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성택 당시 중기중앙회장은 2016년 2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2017년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됐던 품목들이 만료되기 시작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진출을 막아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2011년 동반위에서 제조업 82개 업종을 지정하면서 시작됐는데 최대 유효기간이 6년입니다. 이에 2017년에만 총 49개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안으로 나온 게 ‘생계형 적합업종’이었습니다.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소상공인 업종에 한해서라도 적합업종 제도를 법제화해 ‘골목상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2016년 말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법제화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대기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에 진출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매출의 30%까지 이행강제금을 내도록 한 게 이훈 의원안의 골자였습니다.
◇‘100대 국정과제’로 꼽혔지만···난항 끝에 법제화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더욱 힘이 실리게 됩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을 거론하며 2017년 내에 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이 ‘중소기업 중심 경제’와 ‘공정경제’를 구현할 핵심 정책과제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법제화는 난항의 연속이었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국정감사와 인사청문회 일정으로 인해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말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훈 의원안에 반대해 별도로 법안을 발의하면서 협상은 더 꼬여갔습니다. 대기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진출을 차단한다는 취지는 똑같았지만 이훈 의원안엔 나와 있는 ‘이행강제금 부과 조항’이 빠진 게 특징이었습니다. 그나마 동반위에서 2017년 8월에 당해 만료 예정이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47개 품목을 한시적으로 1년 연장하며 ‘무더기 적합업종 해제’ 사태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2018년 4월 서울 국회의사당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어 12일엔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소상공인 500여명을 모아 대대적으로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최 회장은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업형태는 달라질 수 있고 대기업들이 골목으로 다 들어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회에선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핵심 쟁점은 ‘이행강제금 부과 여부’였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이행강제금 30% 부과’라는 원안에서 한 발 물러나 매출액의 10%를 매기는 중기부의 안을 수용하기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한국당 측에선 “특별법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이행강제금까지 매기는 건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행강제금을 매출액의 ‘5%’만 매기는 걸로 합의하면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5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됩니다.
◇예상보다 흥행 부진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난해 12월 정부 국무회의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시행령을 의결하며 생계형 적합업종은 본격 시행되기 시작합니다.
기존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강제성’입니다. 생계형 적합업종에는 5년간 대기업의 사업 진출과 확장이 금지됩니다. 위반 시엔 2년 이하 징역과 최대 1억5,000만원의 벌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사업 진출을 통해 벌어들인 매출의 5%는 이행강제금으로 내야 하죠. 또한 기존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중소기업’의 보호·육성을 강조한 반면 생계형 적합업종은 이를 ‘소상공인’에 한정지은 게 특징입니다. 3년 전 중소기업계에서 요구하던 ‘법제화’가 받아들여진 결과입니다.
기존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포함돼 있던 품목이 총 100여개 이상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입니다. 물론 ‘소상공인 업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품목이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16년 이훈 의원이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을 발의할 당시만 해도 중소기업계와 민주당 측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중 30~40개 정도라도 법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을 고려하면 생계형 적합업종이 예상보다 적은 업종을 포섭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더구나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품목은 동반위의 검토를 거친 후 중기부 산하 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지정될 수 있습니다. 15개 품목이 모두 생계형 적합업종이 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 것입니다. 현재 동반위가 중기부에 추천한 품목은 모두 4개입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생계형 적합업종이 최종적으로 20개를 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습니다.
◇의외의 혜택 본 ‘상생협약’ 이처럼 예상보다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품목이 적을 거란 의견이 나오는 것은 ‘상생협약’ 때문입니다. 우선 생계형 적합업종보다는 상생협약이 좀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달리 생계형 적합업종에선 동반위와 중기부 심의위원회를 모두 거쳐야 합니다. ‘법’으로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는 만큼 절차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려면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더구나 이처럼 심사과정이 강화하다 보니 소상공인 단체 입장에서도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무산될 경우 ‘퇴로’가 없어진다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상공인 업종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점업이 상생협약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는 해석이 제기됩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움에 처한 음식점업계 입장에서도 생계형 적합업종을 통해 대기업에 칸막이를 치는 것보단 대기업과의 상생을 통해 협의체를 모색하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최후의 수단’으로서 생계형 적합업종이 갖는 위력은 여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서경펠로)는 “소상공인들이 직접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는 대신, 이를 협상 카드로 삼아 대기업을 압박해 좀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익성 회장도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가치 있는 제도”라고 평가했습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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