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 부하직원 일 안해 괴로운 상사..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 된다?

김기찬 입력 2019. 8. 18. 05:01 수정 2019. 8. 1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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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한달..아직도 이게 헷갈린다
지난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담은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시행되자마자 문화방송(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진정서를 내는 등 산업현장 곳곳에서 괴롭힘 사례가 폭로됐다. 회사 차원에서 괴롭힘이 자행되고 해당 조직 직원들은 모른 체하며 방조한 의혹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과연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주장도 있다.
서울 상암 MBC 앞 조형물,.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자 서울고용노동청에 1호 진정을 했다. [중앙포토]

고용노동부가 법 시행에 맞춰 산업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매뉴얼까지 내놨지만, 여전히 일선에선 "헷갈린다"는 지적이 많다.

박정연 노무사(노무법인 마로 대표)는 "괴롭힘은 조직문화 차원의 문제인데, 업종도 다르고 회사 분위기도 다른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법으로 규율하는 데서 여러 문제가 불거진다"며 "향후 행정해석이나 판례로 정리하겠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을 하면서 강의안 자체를 사전에 조율하는 경우가 잦다. '아는 게 약'이 아니라 조직의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병'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산업현장에서 아리송해 하는 괴롭힘 방지 현안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Q : 괴롭힘 피해자가 징계 대신 부서이동과 같은 격리 조치만 해달라고 한다. 이럴 경우 조사없이 종결해도 되나.
A : "법 조문과 고용부가 만든 매뉴얼의 내용이 다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에선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사 의무를 부여한 셈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5월에 낸 대응 매뉴얼에는 '행위자로부터 분리만을 원하거나 행위자의 사과 등 합의 종결을 원하는 경우 조사를 생략하거나 약식조사로 정식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근로기준법과 배치된다. 인사담당 실무자로선 난감할 노릇이다.

법조계에선 이 경우 괴롭힘 행위의 수위나 재발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조사와 징계절차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괴롭힘의 행위가 조직에 해를 끼치거나 형법상 폭행에 해당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 또는 피해자가 많다면 회사의 조직적인 개입이 필요해서다. 추후 법적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상응한 조처를 하는 것이 좋다."

Q : 부하 직원의 업무 미이행 등으로 상사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도 괴롭힘일까.
A : "부하 직원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생기는 상사의 스트레스는 노동법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부하직원은 괴롭힘의 판단 근거인 직장 내 우위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가 부하 직원이 가진 전문지식이나 조직 내의 구성원 속성상 부하 직원과 집단을 이뤄 '관계상 우위'에 있는 경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위 '왕따'나 '무시' 같은 내부 역학관계상 관계의 우위가 작용하고 있다면 부하 직원들에 의한 상사에 대한 괴롭힘도 인정될 수 있다.

이런 관계의 우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수적 우위, 연령·학벌·성별·출신지·인종 등 인적 속성상 우위, 정규직 여부, 근속연수나 전문지식 같은 업무역량의 우위 등이다. 노조나 직장협의회를 통한 압박도 괴롭힘이 될 수 있다."

Q : 직장 내 괴롭힘을 취업규칙에 반영할 때 불이익 변경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나.
A :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근로조건 등의 조항을 넣을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근로자의 권익이 취업규칙 변경으로 침해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모든 회사는 취업규칙에 이를 명시해야 한다. 그러나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다.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징계규정을 새로 추가할 경우 근로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과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물론 기존 취업규칙에 괴롭힘과 관련한 징계사유가 이미 존재한다면 동의절차는 필요 없다."

Q : 법 시행 이전에 벌어진 괴롭힘을 문제 삼는다. 괴롭힘도 소급 적용되는가.
A : "노동법의 시효는 대체로 3년이다. 임금 계산을 잘못해 추가분을 청구할 경우에도 3년 치에 대해 지급을 요구할 수 있다. 괴롭힘 방지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 그래서 3년 전의 사안까지 모두 문제 삼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데 소급 적용이 가능해지면 예전에 무심코 했던 임원이나 상사의 말이 발목을 잡아 느닷없이 회사가 분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괴롭힘 방지는 개정 근로기준법의 시행일 이후부터 적용하게 돼 있다."

Q : 사용자가 괴롭힌 행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사용자를 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A : "괴롭힘 방지법의 기본 취지는 조직문화 개선이다.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 것도 향후 자율적으로 조직문화를 바꾸라는 취지에서다. 즉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렸다.

그렇다고 사용자가 방관만 해서는 곤란하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충분한 조사나 공정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보호 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의 책임을 질 수 있어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노무법인 마로의 대표인 박정연 노무사가 도움을 줬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2월, 5월, 7월 세 차례에 걸쳐 낸 매뉴얼을 비롯해 각 기업의 괴롭힘 방지 교육, 세미나 등에서 나온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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