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격 방어 쉽지만 방사능 위험..러 '원자력 추진 미사일'의 두 얼굴

이정호 기자 2019. 8. 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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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시험 도중 폭발 사고 ‘신형 순항미사일’ 원리 알아보니
ㆍ포물선 궤적 없어 요격 미사일 회피 가능·장거리 이동 목표 타격
ㆍ열로 데운 액체수소 분사해 추진력…“추락 땐 방사능 피해 우려”

지난해 3월 공개된 러시아 원자력 추진 미사일 ‘9M730 부레베스트닉’ 발사 장면. 러시아 정부 제공

지난 8일 러시아에서 한 신형 무기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러시아 북부 아르한겔스크주의 해군훈련장에서 미사일 엔진이 시험 도중 폭발했다. 사망자가 7명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폭발 지역 주변에서 일반적인 사고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 일어났다. 방사능 수치가 높아진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해당 지역에서 평상시의 20배까지 방사능 수치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즉각 이번 사고가 방사성물질과 관련 있는 무기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2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당국을 인용해 러시아의 폭발 사고가 신형 원자력 추진 순항미사일 ‘9M730 부레베스트닉’, 서방 세계에서 쓰이는 명칭으로는 ‘SSC-X-9 스카이폴’ 시제품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보통 핵미사일이라고 하면 탄두에 원자폭탄이 실린 미사일을 지칭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원자력 추진’ 미사일은 하늘로 날려보내는 로켓의 힘을 원자력에서 얻는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이다.

현대 미사일은 화약을 기초로 한 고체연료나 등유 같은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무엇이 됐든 화학연료를 산소와 섞어 태울 때 나오는 힘으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원리이다. 이런 추진 방식은 미사일이 처음 개발된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원자력 추진 미사일은 다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러시아 미사일은 탑재한 원자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로 데운 액체수소를 분사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에너지 가운데 열을 중점적으로 쓴다고 해서 ‘열핵 추진(Nuclear Thermal Propulsion)’ 방식이라고 부른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로 물을 데워 수증기를 만든 뒤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원자력발전과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 유사하다.

러시아가 원자로의 힘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미사일을 개발한 이유는 뭘까.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지구 어디든지 도달할 수 있다”며 원자력 추진 미사일의 특성을 자랑했다. 일단 비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지금보다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보통의 탄도미사일은 적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대기권을 뚫고 높은 고도까지 치솟은 뒤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낙하한다. 상승하는 고도와 방향을 관찰하면 어느 지점으로 미사일이 떨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다. 세계 각국이 운용하는 미사일방어(MD) 체계도 기본적으로 이런 포물선 궤적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하지만 원자력 추진 미사일은 포물선 궤적을 그리지 않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화학 로켓을 써 일단 우주 공간까지 상승한 뒤 원자력 기관을 점화하고는 돌연 하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게 기본 개념이다. 목표가 되는 세력은 이 미사일을 레이더로 감시하거나 방어미사일로 요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보통의 화학 로켓이라면 연료가 금방 떨어져 이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움직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자력을 쓰면 달라진다.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이 수년간 연료 보급 없이 운항할 수 있는 것처럼 원자력 추진 미사일도 비행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핵물질을 통해 일반 미사일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얻을 수 있다. 적의 배후 여기저기를 장시간 동안 비행하다 허점을 노려 목표지점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미 일부 우주탐사선에서는 원자력을 통해 전기를 생성해 쓰고 있다”며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미사일에 원자력 추진 기관을 탑재하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에선 “미국 등 다른 나라도 기본 개념과 제작 능력은 이미 갖춘 것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 왜 이런 미사일이 이제야 등장한 걸까. 바로 방사능 위험 때문이다. 정상적인 비행을 하면 다행이지만 사고로 추락한다면 자국이나 제3국, 민간인에게 예기치 못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방사능 피해는 생물 유전자에 이상을 초래해 중장기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선뜻 실용화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폭발 사고가 난 지역의 시 당국은 13일에야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며 소개령을 내렸다.

현재 미국 정보당국은 이번 사고가 러시아의 원자력 추진 미사일 개발을 지연시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새로운 군비경쟁의 무대에 원자력 추진 미사일이 도화선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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