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 일왕, 패전 7년 뒤 재군비·개헌 필요성 언급(종합)

입력 2019. 8. 19. 14:49 수정 2019. 8. 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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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조약 직후인 1952년 '개헌' 거론..NHK 보도 배경 주목
히로히토 "군비에 대해 개헌 필요..침략 있는 이상 군대 필요" 밝혀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할 당시 항복을 선언했던 히로히토(裕仁·1901~1989년) 일왕이 패전 후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재군비와 개헌의 필요성에 의욕을 보였다는 사실이 당시 일본 정부 인사의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이 기록에는 또한 히로히토 일왕이 1952년 5월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축하행사 때 이전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명하려 했으나, 내각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증언도 담겨 있다.

NHK는 18일 초대 궁내청(왕실 담당 부처) 장관 다지마 미치지(田島道治)가 히로히토 일왕과의 대화를 기록한 '배알기(拜謁記)'의 내용을 공개했다. 다지마는 1948년부터 5년간 궁내청 장관을 맡았는데, 배알기에 600회, 300시간에 걸쳐 히로히토 일왕과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조인 후 불과 5개월이 지난 1952년 2월 히로히토 일왕은 "헌법개정에 편승해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부분은 다루지 않고 군비에 대해서만 공명정대하게 당당히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5월에는 "재군비에 의해 군벌이 다시 대두하는 것은 절대 싫지만, 침략을 받을 위협이 있는 이상 방위적인 새로운 군비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히로히토(裕仁·1901~1989년) 일왕
1945년 9월 27일 맥아더와 함께 포즈를 취한 히로히토 일왕 [일본 위키백과 캡처]

히로히토 일왕은 그 전인 같은 해 3월에도 "경찰도, 의사도, 병원도 없는 세상이 이상적이지만, 병이 있는 이상 의사가 필요하고 난폭자가 있는 이상 의사가 필요하다"면서 "침략이 없는 세상이면 무장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침략이 인간사회에 있는 이상 군대는 부득이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은 히로히토 일왕이 1948년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범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일왕의 자리를 유지한 뒤 불과 4년 뒤에 나왔다.

패전 후 점령국인 미국의 입김으로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불가'가 명시된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히로히토 일왕은 일찌감치 이를 바꿀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배알기'에 따르면 히로히토 일왕은 재군비와 헌법개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당시 총리에게 전하려 하기도 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NHK는 18일 초대 궁내청(왕실 담당 부처) 장관 다지마 마치지가 히로히토 일왕과의 대화를 기록한 '배알기(拜謁記)' 내용을 공개했다. 사진은 공개된 배알기.

다지마 장관은 이에 대해 "헌법상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최근의 전쟁에서 일본은 침략자로 불렸다. 그건 금구(禁句·금지된 말)다"라고 말했다.

NHK의 이런 보도는 공교롭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후 첫 개헌을 통해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나왔다. NHK는 아베 정권에 유리한 보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불가가 명시된 헌법 9조(평화헌법 조항)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에 성공한 뒤, 9조의 기존 조항을 손보는 개헌을 다시 하는 '2단계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가능국'으로 변신시키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자위대 사열식 참석한 日아베 총리 작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이타마 현의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이번에 공개된 '배알기'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를 기념해 1952년 5월 열린 '일본 독립 회복' 축하 행사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일제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후회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려 했지만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 당시 총리의 반대로 해당 언급이 인사말에서 빠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히로히토 일왕은 1952년 1월과 2월에 걸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기념 행사의 발언에 대해 "나는 아무래도 반성이라는 글자를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군도, 정부도, 국민도 모두가 하극상이나 군부의 전횡을 놓친 것을 반성해 나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넣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 전 일본 총리.

이에 대해 요시다 당시 총리는 "전쟁을 시작했다는 책임을 인정할 위험이 있다. 이제 (일왕이) 전쟁이라든가, 패전이라든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요시다 당시 총리의 뜻이 관철돼 히로히토 일왕이 당시 일본 국민을 상대로 읽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기념행사 때의 발언에는 전쟁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내용이 삭제됐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또 "군부 기세를 누구도 막지 못했다. 도조 내각(태평양전쟁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 총리 내각) 때는 이미 병이 진행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는 취지로 본인의 전쟁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도 남겼다.

parksj@yna.co.kr,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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