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히로히토 일왕, 반성 표명하려다 무산"

김청중 2019. 8. 1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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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범 중 한 명으로 지목되는 히로히토(裕仁·사진) 일왕이 1952년 주권 회복 시 전쟁에 대한 반성과 회한을 표시하려 했으나 내각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히로히토 일왕은 1952년 5월 독립회복식에서 대(對)국민 메시지로 전쟁에 대한 강한 반성을 표명하려고 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다지마 마치지(田島道治) 초대 궁내청 장관의 배알기(拜謁記)를 인용해 1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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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언론 "1952년 대국민 메시지 준비 요시다 내각 반대로 포함 안 돼"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중 한 명으로 지목되는 히로히토(裕仁·사진) 일왕이 1952년 주권 회복 시 전쟁에 대한 반성과 회한을 표시하려 했으나 내각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히로히토 일왕은 1952년 5월 독립회복식에서 대(對)국민 메시지로 전쟁에 대한 강한 반성을 표명하려고 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다지마 마치지(田島道治) 초대 궁내청 장관의 배알기(拜謁記)를 인용해 18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대국민 메시지 초안 작성이 본격화한 1952년 1월 11일 히로히토 일왕은 “나는 어떻게든 반성이라는 글자를 (메시지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히로히토 일왕은 전쟁 반성 메시지가 궁내청 내부 검토 과정에서 삭제된 뒤 전쟁을 회한하는 내용을 넣으려 했으나 이 또한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정권의 반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2차 대전 패전 후 미국 점령하에 들어간 일본은 1951년 9월 체결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이듬해 4월 발효되면서 주권을 회복했다. 1948년 일본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국내청 장관에 취임한 다지마 전 장관은 취임 다음 해부터 5년 가까이 히로히토 일왕의 발언 내용을 배알기 형태로 남겼다.

히로히토 일왕은 전쟁 반성을 시도했으나 진심인지는 의문시된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재무장을 강조한 발언도 했기 때문이다. 1952년 2월11일 “헌법 개정에 편승해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부분은 다루지 않고 군비에 대해서만 공명정대하고 당당하게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이다. 히로히토 일왕은 이런 생각을 총리에게 직접 전하려 했으나 다지마 전 장관은 “헌법상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최근의 전쟁에서 일본은 침략자로 불렸다. 그건 금구(禁句·금지된 말)”라고 만류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감안할 때 그의 반성은 아시아·태평양 민중을 침략과 전쟁의 참화에 빠트린 것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는 패전이라는 전쟁 결과에 대한 반성이었을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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