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조국 맞나" "솔직히 재수없다" 2030세대 등돌린다

하준호 2019. 8. 20. 11: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던 조국이 아냐.”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조 후보자의 지지층으로 분류됐던 20·30대 사이에서 도는 말이다. 조 후보자가 과거 서울대 교수 시절에 썼던 책, 언론 기고·인터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과는 상반된 내용의 의혹과 논란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높은 도덕성과 언행일치를 강조해 온 386 진보 인사도 결국 50대 기득권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한 건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때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 만큼 반(反)자본주의적 성향의 진보적 학자였던 조 후보자와 그의 가족이 전 재산 56억원보다 큰 규모의 사모펀드(총 출자금 74억5000만원)에 10억5000만원을 납입한 사실, 조 후보자는 누구보다 평등이란 가치를 강조해왔는데 그의 자녀들은 특목고에 진학해 미국 유학을 떠나는 등 전형적인 부유층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는 논란 등이 기름을 부었다. 최근 불거진 조 후보자 딸(28)의 장학금 특혜 논란과 고등학생 시절 대학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 논란 등은 이들이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좋아했던 교수님의 이중성”=서울 여의도에서 일하는 이모(28)씨는 “자유한국당은 대놓고 구리고, 더불어민주당은 뒤로 구리다는 걸 증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회계사인 이씨는 “개인이 얼마를 투자했든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인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조 후보자에게 이중적인 모습이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대학 시절 진보주의자를 자처했던 그는 “도덕적 우월성이란 가치를 가진 진보가 예전에는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검증에 들어가니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과는 다른 모습이 드러나 실망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대 교수이던 2011년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중앙포토]
서울 광화문에서 보험업에 종사하는 유모(28)씨도 최근 조 후보자 관련 논란을 보도한 기사·칼럼 등을 보이며 “그도 ‘기득권 아저씨’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씨는 “그동안 조 후보자가 쓴 SNS 글을 보면서 말이 가볍게 느껴졌는데,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기회주의자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진보의 탈을 쓴 귀공자 같다”고도 했다. 지난 19일 조 후보자 딸의 대학원 장학금 특혜 논란을 보도한 기사에는 “누리는 것 다 누리고 깨끗한 척 하는 것” “촛불 들었던 내 손을 찍어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다른 학생들도 포기하려 하면 다 장학금을 주는 것이냐”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낙마 안 되지만, 솔직히 재수 없어요”=각종 의혹 제기에도 조 후보자를 적극 옹호하고 있는 민주당 안에서도 젊은 보좌진들 사이에선 조용히 조 후보자에 대한 반감(反感)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한 초선의원 보좌진인 A(31)씨는 “자기는 좋은 것 다 가졌으면서, 남은 가지면 안 된다고 하는 모습은 솔직히 재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진보라고 하는 이들이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우는데, 왜 자기가 비판하던 것을 똑같이 갖고 있는지,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의아스럽다”고 덧붙였다.

2017년 4월 27일 경기도 성남시 야탑역 광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 유세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가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왼쪽)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뉴시스]
한 중진의원 보좌진인 B(32)씨는 “조 후보자가 낙마하면 정권 차원의 큰 타격이라 당 입장에서는 무조건 밀어야 한다”면서도 “조 후보자 개인만 놓고 보면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모두가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고 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 보좌진인 C(27)씨는 조 후보자의 두 자녀가 모두 특목고(외국어고)에 진학한 것에 대해 “아버지로서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앞뒤가 다르고 말을 바꾸는 사람을 어떻게 법무부 장관으로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 후보자가 2014년 자신의 저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에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은 원래 취지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며 비판적 의견을 밝힌 점을 지적하면서다. C씨는 “조 후보자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최근 조 후보자와 그의 가족에 제기되는 여러 논란이 사실이라면, 이 정부 모토와는 달리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도 불공정’했던 것”이라며 “결국 정의롭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까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