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면 당한다] ① '007 저리 가라'..첨단장비 동원 보이스피싱

입력 2019. 8. 20. 11:45 수정 2019. 8. 2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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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앱에 공문서까지..갈수록 더 교묘하고 치밀
역할 나눠 진짜같이..알고 보면 모두 사기단 일원
보이스피싱 (PG) [제작 정연주] 일러스트

[※ 편집자 주 = 지난해 전국적으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집계된 것만 4천억원이 넘습니다. 피해자는 무려 5만명에 육박합니다. 경찰과 금융감독원은 물론 금융기관까지 보이스피싱 예방에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매일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피해자가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설마 내가 당하겠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누구라도 당할 수 있습니다. 단 한 건의 피해라도 예방하자는 취지로 갈수록 더 교묘하고 치밀해지는 보이스피싱 사기단 범행 수법과 전문가가 말하는 대처 방법을 소개하는 3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직장인 김진수(가명·43) 씨는 최근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메시지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식당에서 15만원을 결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놀란 김 씨는 신용카드 도용을 의심하며 문자메시지에 있는 카드사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한 김 씨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자신 명의로 된 신용카드에서 수천만원을 사용한 내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고객센터 직원은 "누군가 명의를 도용해 카드와 통장을 발급받아 사용하는 것 같다"며 수사를 통해 밝혀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카드사가 직접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줬다.

다음날 김 씨는 발신 번호가 서울 지역 번호 '02'로 시작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그는 "김 씨 명의의 대포통장이 있고, 이 통장이 사기 범죄에 이용돼 피해자가 300명에 달한다"며 그동안 자신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 검사를 연결해 줬고 A 검사는 "용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휴대전화 해킹 이력을 검사해야 한다"며 검찰이 개발했다는 팀뷰어 응용 프로그램(앱)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검사 명함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의 날인이 찍힌 수사협조의뢰 공문을 보내며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절대로 주민등록번호나 계좌 비밀번호를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보이스피싱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 씨는 A 검사가 보내 준 앱을 휴대폰에 설치했다.

A 검사는 다시 김 씨에게 전화해 팀뷰어로 입수한 휴대전화 내 개인정보와 실제 정보를 비교하며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는 검찰 로고가 뜬 카카오톡 대화방에 초대해 개인정보를 캐물었다.

김 씨가 머뭇거리자 A 검사는 의심나는 게 있으면 서울중앙지검 대표번호로 전화해 자신을 찾으라고 말했고, 검사를 믿지 못하면 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김씨가 서울중앙지검 대표번호로 전화해 A 검사를 바꿔 달라고 하니 조금 전 자신과 통화하던 A 검사가 전화를 받았다.

A 검사는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가 잦은데 참 잘했다"며 수사에 협조하면 사기범도 잡고 자신이 받는 혐의도 벗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누명을 벗기 위해 A 검사에게 통장과 카드 비밀번호 등을 알려줬다.

이어 A 검사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계좌에 있는 예금을 안전한 계좌로 옮길 것을 제안했고, 1시간 뒤 금융감독원 신분증을 목에 건 남성이 찾아왔다.

김 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으로 위장한 남성이 가르쳐 준 계좌로 자신이 가진 모든 계좌의 돈 3억7천만원을 이체했다.

하지만 돈을 이체한 다음 날 김 씨는 이 모든 게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10여년 이상 모은 돈을 날리는 데는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보이스피싱 (PG) [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경찰 조사 결과 카드사 고객센터 직원부터 검찰 수사관,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까지 모두 사기단의 일원이었다.

카드 사용 내역이 담긴 문자메시지는 물론 검사가 보내준 수사협조의뢰 공문 등도 모두 가짜였다.

휴대전화 해킹 이력 검사를 위해 설치한 팀뷰어 프로그램은 사기단이 김 씨의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사기단의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카드사 고객센터 직원부터 금융감독원 직원까지 철저하게 역할을 나누는 것은 물론 이들은 검사장 날인이 찍힌 수사협조의뢰 공문까지 제작했다. 악성코드를 이용해 피해자의 확인 전화마저 자신들이 받도록 하는 기술력도 보유했다.

여기에 피해자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하고 치밀하게 진화하면서 방심하는 순간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김현정 대전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공통으로 내가 당할 줄 몰랐다거나 보이스피싱인 줄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며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정보를 묻지 않고, 수사를 위해 앱을 깔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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