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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철학자 김형석 "불행한 경험, 손해 아닙니다"

입력 2019.08.20. 15:28
옛글 모은 에세이 2권 출간.."젊은이들 외국 진출해야"
"진보·보수 갈등 넘어 열린 사회 지향하길"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 김형석 교수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설가온에서 열린 신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8.20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20년에 출생했으니 한국 나이로 꼭 100세다. 하지만 올해에만 강연을 150회 남짓 다닐 정도로 기력이 왕성하다. 간혹 TV에 나와 행복론을 설파하기도 한다. 그는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김 교수가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글을 모은 에세이집 2권을 잇달아 펴냈다. 열림원이 출간한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와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다. 부제에는 '젊은 세대와 나누고 싶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열림원이 20일 종로구 한 식당에서 마련한 간담회에서 김 교수는 "정치적인 이야기나 시대에 속한 문제에 관한 글은 빨리 사라지는데, 인간 문제나 윤리에 대한 글은 세월이 지나도 남았다"고 말했다.

평안도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조치(上智)대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이후 중앙중학교 교사를 거쳐 연세대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 교수는 중학생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1년간 학교를 쉬었다. 당시 신사참배 요구를 함께 거절한 인물이 '별 헤는 밤'을 쓴 시인 윤동주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학교에 다니지 못한 기간에 도서관에서 많은 문학서와 철학서를 읽었다고 했다.

"아침 9시에 가서 오후 5시까지 혼자서 독서를 했어요. 생각해 보면 그 1년이 제게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에 돌아가 수업을 듣는데, 인식론 같은 부분은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안다고 속으로 생각했죠. 불행한 경험을 겪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고 봅니다. 고통스럽게 살면 삶이 달라집니다."

그는 자신이 명문장가로 꼽힌 비결도, 수필가로 이름을 날린 이유도 1년간의 독서에 있다고 강조했다.

불행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조언은 책에도 실었다. "인간은 올라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퇴락하는 과정에서는 불행과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라거나 "우리 인간의 일생은 큰 강을 건너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문장은 여러 번 곱씹을수록 의미가 커진다.

김형석 신간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설가온에서 열린 신간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8.20 jin90@yna.co.kr

철학적 고뇌의 과정을 거치며 젊은 세대와 마음과 사상의 대화를 나눴다고 자부한 그는 지난 100년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 젊은이들의 생활 여건이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책임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회가 연결돼서 있는 것 같다"며 "사회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 남쪽과 북쪽에 다리가 1개라면 강을 건너려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10개라면 쉽게 건널 수 있다"며 "우리는 모두 국가고시 같은 시험에만 매달려 다리가 하나라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기성세대 잘못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국제감각이 없는 지도자는 탈출구가 없다"며 젊은이들이 시야를 넓혀 외국에 진출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국사회 안팎에서 심화하는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자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인들이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전통이 혼재된 데서 오는 혼란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갈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정당에 들어간 사람은 정당과 정권을 위한 판단을 많이 한다"며 좌우 양극단에 선 사람들이 손을 잡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세계사적으로 20세기 중반까지는 냉전 때문에 적대 가치가 사회를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에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평등좌파는 사라져 진보가 됐고,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보수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좌파와 우파가 사라져 진보와 보수가 공존한다. 상대가치가 함께 존재한다"며 한반도는 냉전 체제가 존속하고 북한은 가치 공존이 불가능한 형편이어서 남한에서도 정치적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학생 운동권 세력이 청와대에도 가고 노동운동에도 참여하지만, 아직은 선진사회의 진보는 아니다"라면서 보수 진영에 대해서도 "뿌리가 없고, 통일된 가치관이나 사상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1세기에는 이념 갈등을 넘어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중 어느 쪽으로 갈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원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기독교 신앙을 수용했다는 김 교수는 한국 개신교가 정신이 아니라 교회와 교리에만 매몰됐다는 비판도 했다. 그는 "기독교가 교회를 위해 시작하고 교회를 위해 끝나면 생명력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100명이 일하면 그 목적도 100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일하는 목적은 하나더라고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자는 것이지요. 정치가는 국민 행복을 위해 일하고, 교사는 제자 행복을 위해 가르치고, 의사는 환자 행복을 위해 진료하는 것 아닐까요.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믿고 인간애가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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