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정유라·토마토..조국의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송윤경 기자 2019. 8. 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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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이 외고 재학 시절 ‘2주 인턴’ 후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고, 이듬해에 수시전형으로 고려대에 입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평소 ‘소신발언’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조 후보자는 그동안 SNS와 저서 등을 통해 학벌만능주의 등을 줄곧 비판해 왔다.

조 후보자의 딸이 다녔던 ‘한영외고’는 현재 트위터의 검색어 1, 2위를 다투고 있다. ‘조국 딸’이란 단어 역시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에 내내 자리잡고 있다. 공정한 사회를 강조해 왔던 그의 지론과는 이질적인 딸의 진학과정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조 후보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과거 발언을 정리했다. 학벌에 대한 그의 발언은 주로 고교 평준화 정책 필요성 등이 주를 이루지만 스스로 딸을 외고에 보낸 사실을 고백하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실천’을 할 것인지 다짐한 대목도 나온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발언 저격했던 조국

10대 청소년 시절에 받은 학교 성적의 결과가 이후 인생 전체를 옭아매는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 중학교 졸업 시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에 입학하지 못하면 ‘1차 패배자’, 고교 졸업시 ‘SKY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2차 패배자’로 아이들을 몰고 가는 사회가 어찌 정상이란 말인가.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조국 지음, 다산북스)

나는 그래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준화정책이 폐지되어 과거처럼 명문고가 전면 부활한다면 대학과 사회는 음으로 양으로 명문고 출신만 우대할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성적이 대학, 심지어 대학 졸업 이후의 삶까지 결정하게 돠면 지금보다 훨씬 더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일이 발생할 것이고 고교 입시 전쟁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격화될 것이다. 연고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강한 힘을 갖는 연고가 또 하나 생길 것이다. ‘이종교배’가 ‘동종교배’보다 우월하듯이,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계급, 계층, 집단 출신의 사람을 알고 사귀고 부대껴야 한다.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은 원래 취지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조 후보자는 성적지상주의, 학벌만능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해 왔다. 특히 트위터에서는 정유라씨의 발언을 저격하면서 부모의 자본으로 ‘출세’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이런 기조가 과거 정부의 ‘철학’이었다고 비판했다.

조국 후보자 트위터 캡처

조 후보자는 자신의 책에서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했다고도 썼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물론 여기에서의 공부는 학교 공부다. 그러면 나는 경험한 것에 비추어 바로 답하곤 한다. “아이가 꾸준히 흥미를 보이는 것 중에서 소질 있는 것을 발견하세요. 그리고 그걸 하도록 밀어주세요. 학교 공부가 아니라 운동, 그림, 춤, 노래라 하더라도.”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나아가 그는 “SKY 대학에 가라는 지상명령” 등 성공과 안정을 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언급하고 “다양한 개성의 개인들을 스펙으로 줄세우는 것은 참으로 야만적이지 않는가” 라면서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중·고교생에게는 학교 성적을 잘 받아서 ‘SKY 대학’에 가라는 지상 명령이 떨어진다. 대학생에게는 공무원 채용 시험이나 대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니 허튼 것에 눈돌리지 말라고 말한다. 그 코스를 벗어나는 것은 낙오자가 되어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이라는 위협도 뒤따른다. (중략) 정답을 맞추는 식으로 똑같은 모습의 인재상을 요구하면 정작 뛰어난 인재는 파묻히고 만다. 레고 블록의 인형조차 똑같은 듯해도 제각각 다른 옷과 색깔을 갖고 있는데, 다양한 개성의 개인들을 스펙으로 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야만적이지 않는가?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중략) 우리 세대의 학창시절 또한 성적 우월주의가 팽배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사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논문에 엄격했던 ‘학자’ 조국

조국 트위터 캡처

법학자였던 조 후보자는 논문에 대한 소신도 밝힌 바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직업적 학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논문 수준은 다르다”고 하면서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논문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면서 학계의 반성을 촉구했다.

조국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준비단 측은 20일 “후보자의 딸은 00외고에 다니던 중 소위 학부형 인턴쉽 프로그램(학교와 전문가인 학부형이 협력하여 학생들의 전문성 함양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멀리까지 매일 오가며 프로젝트의 실험에 적극 참여하여 경험한 실험과정 등을 영어로 완성하는데 기여하는 등 노력한 끝에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6~7페이지 짜리 영어논문을 완성하였고, 해당 교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후보자의 딸이 학교가 마련한 정당한 인턴쉽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하여 평가를 받은 점에 대하여 억측과 오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 후보자 딸의 논문 확인 책임이 있는 단국대는 이날 “연구논문 확인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음을 사과한다”면서 “부당한 논문저자의 표시를 중심으로 연구윤리위원회를 금주 내 개최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사안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소 자신을 ‘학인’(공부하는 사람)으로 칭했던 조 후보자는 과연 이 논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소신과 실천의 괴리 고백하기도

조 후보자는 저서를 통해 뜻대로 실천하는 삶의 어려움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조국 지음, 21세기 북스, 2010년 출간)라는 저서의 ‘당장 ’토마토‘는 못되더라도’라는 챕터의 글에서다.

그는 대학시절 선배들로부터 종종 들은 말을 인용한다. “겉만 빨갛고 속은 하얀 사과가 되지 말고, 겉도 속도 빨간 토마토가 돼라.” 조 후보자는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분들 중에서 겉과 속이 똑같이 빨갛게 된 ‘토마토’ 같은 훌륭한 분들이 있지만 지금도 필자는 ‘사과’와 ‘토마토’의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음을 직시한다”고 적었다.

특히 “자식문제로 가면 더 어려워진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필자의 경우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이가 한국 학교의 경쟁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여 힘들어 하다가 외국어고등학교 국제반에 입학했기에 자식을 외국에 보내는 사람들의 결정을 쉽게 비난하지 못한다.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조 후보자는 자신의 딸이 외고에 입학한 이유가 “한국 학교의 경쟁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여 힘들어”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딸은 이 학교에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반고 학생들은 넘보지 못할 스펙(학회 게재 의학논문 제1저자)을 쌓았다.

조 후보자는 자신처럼 아이를 특목고에 보낸 진보인사들이 받는 “야유와 비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너는 온몸으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면서 왜 입으로는 그런 얘기를 떠드니? 그냥 조용히 있지 그래” 예컨대, 2007년 대선 시기 정동영 후보는 큰 아들이 미국 사립고등학교 유학을 갔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으로부터 비난받았고 2010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후보, 전교조 지부장 출신 장휘국 광주시 교육감 후보는 아들이 특목고에 다닌다는 이유로 반대파로부터 비난 받았다.

그는 이어 ‘그러면 진보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고 자문한 뒤 작은 실천들을 다짐했다.

두가지를 해보자. 첫째, 개인적 갈등을 줄여줄 제도를 도입하도록 힘을 모으자. (중략) 외고가 대입 명문학교가 아니라 원래의 취지인 외국어 특성화 학교로 돌아가도록 만들자. 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대학 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제도를 도입하자. (중략)

둘째, ‘사과’ 같은 개인의 삶을 직시하면서도 서서히 한 걸음 한 걸음 ‘토마토’ 같은 삶을 향한 조그만 실천을 해보자. (중략) 자녀의 학원 하나를 줄이자. (중략)

언행일치, 지행합일을 이루는 ‘토마토’가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토마토’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떠랴. 각성과 추구,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의미 있지 않으랴. 여전히 ‘사과’ 같은 필자로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 시인의 격려에 위로를 얻으며, 흔들림 속에서도 ‘줄기를 곧게’ 세우고 ‘꽃잎 따뜻하게’ 피우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그가 이 글을 쓴 시점은 2010년이다. 그의 딸은 2005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했다. 그뒤 2007년 한영외고에 입학했다. 그의 딸이 대한병리학회에 게재된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된 시점은 2009년. 이듬해에 조 후보자의 딸은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에 합격한다.

“‘사과’ 같은 개인의 삶을 직시하면서도 서서히 한 걸음, 한 걸 음 ‘토마토 같은 삶을 향한 조그만 실천을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예컨대 텀블러를 가방에 챙겨넣자, 자녀의 학원 하나를 줄이자” 등의 실천 목록을 써 내려갔던 조 후보자. 그는 지금 텀블러는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자녀의 학원 하나를 줄이자”와 같은 수준의 노력은 했을까.

조 후보자는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언행일치, 지행합일을 이루는 토마토가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토마토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떠랴. 각성과 추구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의미 있지 않으랴.”

자녀의 진학 문제와 관련해, 그의 표현대로 ‘사과’의 길 또한 걸었던 조국 후보자는 시민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송윤경·최민지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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